- ‘마스터’ 이병헌, ‘역시’ 연기의 마스터 [씨네리뷰]
- 입력 2016. 12.21. 00:42:05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이번 수사 완벽히 해서 썩어버린 머리 잘라낸다.”
경찰청장 직속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은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사기사건의 주인공인 진현필(이병헌)을 잡는데 사활을 건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이 벌이는 대결은 영화의 핵심이고 묘미다. 조 단위 사기 사건을 벌이는 희대의 사기범인 진회장(진현필)이 활개를 칠 수 있는 건, 그가 단지 설득하는 타고난 기술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뒤에는 든든한 비호 세력이 존재하고 그는 그들을 통해 경찰 수사망을 피한다. 이 같은 영화 속 이야기는 현실과 닮아 짙은 씁쓸함을 남긴다.
‘마스터’가 21일 개봉된다. 영화는 당초 픽션의 느낌으로 시작했지만 영화보다 놀라운 현 시국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범죄오락영화로 변모됐다. 현실에서의 답답함을 영화를 통해 해소하고 오락적 재미를 느낀다는 점에 집중했다. 다수의 범죄오락액션영화에 포함된 잔혹한 장면은 피하고 경쾌하고 리듬감 있게 풀어냈다. 아울러 금융사기를 다루면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지능적 심리적 대치를 보여준다.
화려한 언변, 사람을 현혹하는 재능, 정관계를 넘나드는 인맥으로 수만 명 회원에게 사기를 치며 승승장구해 온 원네트워크 진회장(이병헌). 반년 동안 그를 추적해온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은 진회장의 최측근인 박장군(김우빈)을 압박한다. 원네트워크를 키워 온 브레인 박장군은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을 감지하자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진회장은 물론 그의 뒤에 숨은 권력까지 모조리 잡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가는 재명, 오히려 이 기회를 틈타 돈도 챙기고 경찰의 압박에서도 벗어날 계획을 세우는 장군. 하지만 진회장은 간부 중에 배신자가 있음을 눈치채고, 새로운 플랜을 가동하는데… 이들 가운데 목적을 달성하는 이는 누가될까.
‘마스터’는 지난 2013년 ‘감시자들’로 관객 수 550만을 기록한 조의석 감독의 두 번째 범죄오락액션영화다. ‘감시자들’에서 감시반이라는 소재로 서울에서 펼쳐지는 추적과 액션을 감각적으로 담아내 호평을 받은 그가 이번엔 ‘마스터’를 통해 지능범죄수사대와 희대의 사기범, 그리고 그의 브레인이 속고 속이며 추격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을 참고한 그는 역사가 반복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이들을 진회장 캐릭터에 녹여내고 장부, 해외도피, 사면 등의 일련의 패턴을 현실에서 차용했다.
그는 3년 전 영화를 기획하고 이후 각본을 쓸 때만 해도 현 시국을 예상치 못했기에 영화의 결말이 판타지라 여겼다. 하지만 현 시국에서 보면 정의감으로 집요하게 진회장을 좇는 그의 모습은 지금의 국민과 다를 바 없다. 영화에서 김재명은 자신을 ‘미친 사람’이라 말하지만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 범죄를 저지른 인물을 좇는다는 게 더 이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기형적 사회가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가 됐고 그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이를 기쁘게 생각함을 밝히기도 했다. 사기꾼을 좇는 데 있어 집요한 모습을 보이는 김재명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비현실적 인물로 보이던 사회에서 현실적 인물로 보이도록 바뀐 교차점에 있는 이 시기에 영화는 현실 세태를 한 번 더 꼬집고 보다 희망적인 사회로 감으로서 더 이상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을 적극 반영한 영화로 보이게 한다.
정성스레 찍은 듯한 극 초반의 연설 신은 화려하고 역동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보는 재미를 준다. 강렬함과 경쾌함을 오가는 음악은 극을 리듬감 있게 완성한다. 바쁘게 울려 퍼지는 타악기는 극의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애쓰는 것 같지만 장면 자체보단 음악이 긴장감을 조성하려 한다는 느낌을 준다.
김재명과 진회장은 각각 사회의 정의와 악을 대변한다. 정의감 넘치는 인물 김재명, 사기를 치는 것이 일상인 진회장. 두 캐릭터의 속성은 공감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영화의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토리에서부터 카메라 음악까지 모두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통일하고 스토리든 인물이든 잔인하거나 한없이 어둡고 진지하기보단 무겁게 건드리지 않는 점이 눈에 띈다. 중간중간 슬쩍 유머코드로 양념도 쳤다.
‘놈놈놈’ 이후 8년 만에 악역을 맡은 이병헌은 희대의 사기꾼 진회장을 연기한다. 그는 악쓰거나 행동으로 보여주기보단 그만의 카리스마로 차분하고 서늘한 느낌의 악을 느끼게 한다. 필리핀식 영어 발음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똑 부러진 연기를 보여주는 그는 직접 아이디어를 낸 애드리브를 통해 웃음도 담당한다. 강렬한 존재감으로 극 전체를 끌고 가는 느낌이 강하다. 지능범죄수사대 경위 신젬마를 연기한 엄지원과 원네트워크 홍보이사 김엄마를 연기한 진경 역시 각각 탄탄한 연기력으로 극을 받쳐준다. 황변호사를 연기한 오달수는 극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오락성이 강하다. 머리 아픈 현실은 잊고 오락적인 영화로 즐길 수 있다는 면에선 나쁘지 않다. 아쉽게도 인물의 감정에 관객이 이입하거나 공감을 할 부분은 적다. 후반부 액션과 카 체이싱 장면은 공들여 찍은 만큼 볼만하다. 다만,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진다는 건 함축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영화의 결말이 ‘사이다’로 끝나는 건 관객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반면 전체적으로 화려한 이 영화가 어딘지 허전한 느낌을 주는 건 결정적 ‘한 방’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후반의 통장 신 등 마치 현대판 홍길동을 보는 듯한 장면은 판타지적 요소가 강하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가볍고 경쾌한 것을 추구하면서도 그 안에서 진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터다.
러닝타임 143분. 15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hs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