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교사’ 열등감, 파국으로 치닫다 [씨네리뷰]
- 입력 2016. 12.26. 18:20:48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그만 징징대. 역겨워.”
계약직 여교사 효주(김하늘)는 부당하고 불평등한 대우를 참고 쏟아지는 일을 견디면서 밥을 삼켜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또 다시 무신경하고 배려 없는 남편으로 인해 밥을 씹어 삼킨다. 사방에서 목을 조여 오는 계약직 여교사의 일상은 애써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녀를 조금씩 벼랑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폭발하는 순간, 파국으로 치닫는다.
올해 하와이 국제영화제 스포트라이트 온 코리아 섹션에 초청된 ‘여교사’(감독 김태용, 제작 Film K·김태용)가 다음 달 4일 개봉된다. 스포트라이트 온 코리아 섹션은 매년 한국에서 크게 흥행에 성공한 화제작과 함께 기대되는 신작들이 초청되는 섹션이다. 특히 김하늘의 연기에 대한 호평과 최근 김기덕 감독의 ‘그물’에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김원근의 무용특기생인 고등학생으로의 변신으로 기대를 모은다.
효주는 정교사의 꿈을 품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만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이 치고 들어오자 몹시 거슬려한다. 기억조차 없지만 학교 후배라며 다가오는 혜영이 불편하게 느껴지던 중 우연히 임시 담임이 된 반에서 눈여겨보던 무용특기생 재하(이원근)와 혜영의 관계를 알게 되고 처음으로 이길 수 있는 패를 가진 것 같은 효주는 다 가진 혜영에게서 단 하나를 뺏으려 한다.
‘여교사’는 ‘교사와 제자의 위험한 삼각관계’라는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 열등감 질투 등 인간의 심리를 담았다. 비정규직 문제, 부와 권력을 둘러싼 부정부패 등이 소재로 사용된다. 많은 작품에서 흔히 그렇듯 배우자의 무신경은 정신적 육체적 외도의 복선이 된다. 비정규직 교사로서 여러 의미로 매일을 아슬아슬하게 보내는 그녀는 밥과 함께 현실의 치사함을 삼킨다. 그렇게 매일 차별과 굴욕을 맛보면서도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낸다.
집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글을 쓴다며 세월을 흘려보고 소파와 한 몸이 된 채 자신을 맞는 남편에게선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밖에서 하루 종일 사투를 벌인 그녀에게 무능하고 게으르게 비치는 남편은 그저 견뎌야할 또 다른 대상일 뿐이다.
한 발짝 물러날 곳이 없는 빡빡한 현실. 그 안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그녀에게 어느 날 나타난 재하는 작은 숨구멍과도 같이 느껴질 것이다. 재하의 존재는 살기 위해 본능적 몸부림을 치는 효주에게 작은 일상의 파괴를 가져오고 이후 열등감과 질투로 똘똘 뭉쳐 충격적 결말에 이른다. 감정과 자존감을 버리고 사는 효주 앞에 나타난 재하는 실은 사랑이라기보다 소유에 가까운 존재로 느껴진다.
무신경과 무관심 속에 살아가던 그녀 앞에 나타나 작은 관심을 보여준 소년은 마음속으로나마 자신의 것으로 다가오고 짙은 애정이 아니라도 별 상관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 영역에 모든 것을 가지고도 자신의 것을 빼앗은 존재가 손을 뻗었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것은 더 이상 가치 여부를 따지지 않고 무작정 자신이 손에 쥐고 있어야 할, 자신의 것이 되어야할 것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이 것을 빼앗길 것 같은 순간 질투는 더 이상 무엇에 대한 질투인지도 알 수 없게 될 만큼 맹목적으로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것으로 변한다.
카메라의 흔들림은 효주의 격한 감정을 표현한다. 라틴, 탱고, 일렉트로닉한 사운드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를 반영한다. 가수 알리의 목소리로 듣는 엔딩곡은 매혹적인 느낌으로 감정의 여운을 이어간다.
18년차 배우 김하늘은 지금까지의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며 오롯이 극을 끌어간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삶에 지쳐 무기력한 모습, 공허한 눈빛에서 느껴지는 동공의 떨림 등 섬세한 연기로 표현한 예민함이 빚어내는 긴장감은 영화가 시작되면서 끝날 때 까지 그녀가 극을 끌어가는 동력이다. 재하를 연기한 이원근 역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가면 같은 얼굴, 묘한 눈빛으로 영악한 고등학생의 모습을 적절히 표현했다. 정규직 여교사 혜영을 연기한 유인영은 의도하지 않지만 상처를 주는, 얄미움과 순수함이 공존하는 모습에 때로는 도발적인 모습 까지 다양한 면을 보인다.
전작 ‘거인’을 통해 생존에 속아 성장을 포기하는 주인공을 묘사한 김태용 감독은 ‘여교사’의 효주를 통해, 생존을 위해 욕망을 포기하고 열등감에 속아 폭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교사’는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한 이가 자신의 말에 속아 넘어지는 모습, 그 속내를 감추고 싶지만 끝내 들키고 마는데서 오는 수치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다소 뜬금없는 전개로 이어지는 듯 보이지만 상처가 갖는 폭발력이 광기로 까지 이어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러닝타임 96분. 청소년 관람불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