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상감독 김정원, 영화 속 캐릭터의 가려진 ‘인생사 탐색’ [인터뷰②]
- 입력 2017. 01.02. 17:38:56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영화의상은 시나리오 안에서 존재하지만, 관객과의 공감을 끌어내는데 시나리오 밖의 이야기가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
영화의상감독 김정원
드라마와 달리 16, 20부작의 긴 전개가 아닌 길어야 두 시간을 조금 넘는 영화 시간은 인물들에 대해 세세한 정보를 제공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은 짧은 시간동안 극 중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 흥분하고 좌절하는 유사한 감정 기복을 겪는다.
이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끌어내는 것이 대사와 사건 전개상에서 제거된 캐릭터의 인생사 즉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를 극의 흐름을 깨지 않으면서 은밀하게 드러내는 의상이 주는 함축이다.
김정원 의상감독은 “영화 속 캐릭터가 극 중 상황뿐 아니라 ‘어떤 배경을 가지고 여기에 있구나’를 보여줄 수 있는 의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구나’ 하는 뒷 배경 즉 극 중 인물의 인생사가 보이는 의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라며 의상과 의상을 입는 사람에 대해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김 감독의 이 같은 영화의상감독으로서 신념은 비슷한 중장년층의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 ‘로봇소리’(2016년 1월)와 ‘즐거운 인생’(2007년 9월) 속 캐릭터에서도 드러난다.
실종된 딸을 찾는 ‘로봇소리’ 아버지 해관(이성민), ‘즐거운 인생’ 중년 밴드 기영(정진영) 성우(김윤석) 혁수(김상호)는 소모적이고 극악한 현대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한 중년들이지만 각각의 전혀 다른 인생사가 의상을 통해 은밀하고 따뜻하게 그려진다.
김정원 감독은 “‘로봇소리’도 해관 이성민의 의상에서 그런 ‘뒤’를 설명해주려고 했습니다”라며 “‘즐거운 인생’ 역시 대학 때 록밴드를 하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았죠. 같은 선상이면서도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온 그런 걸 보여주는 이야기였잖아요”라며 의상을 통해 이런 각기 다른 사람의 삶이 녹아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영화 '즐거운 인생'
백수 기영의 족히 십년은 넘게 입었을 법한 후줄근한 티셔츠, 택배에 대리운전까지 24시간을 쪼개가며 일하는 성우의 고단한 24시간을 아침과 저녁이 다른 의상, 아이들이 두고 간 의상을 대충 주어 입은 듯 보이는 기러기 아빠 현수의 나이에 맞지 않는 티셔츠는 ‘즐거운 인생’ 속 즐겁지 않는 중년의 고난사가 담겨 있다.
해관의 언뜻 노숙자처럼 보이는 닳고 닳은 헤진 옷들은 1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해관의 시간은 딸이 실종된 지점에서 멈춰있다. 김 감독은 시간의 멈춤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의상과 10년의 시간이 그대로 전달되는 닳아빠짐으로 표현했다.영화 '로봇소리'
김정원 감독에게 흥행성적보다 앞서는 것이 이런 극 중 인물의 인생사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녹아났느냐다. 김 감독은 누적 관객 수 1130만을 넘기며 흥행순위 역대 11위를 기록한 재난영화 ‘해운대’(2009년 7월)에 대해 의상으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극 중 인물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영화 '해운대'
“횟집 주인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영화 작업이 끝나고 더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죠”라며 재난 영화 특성상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각자의 이야기들을 풀어내지 못했음을 토로했다.
이처럼 영화 속 인물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그들의 인생사를 풀어헤치고 다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김정원 감독 역시 ‘리얼리티’와 ‘영화 속 리얼리티’ 사이에서 한참 고민할 때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김 감독은 “당시 신보경 미술감독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죠. 예를 들어 학교 교장 선생님이라면 교장 선생님이 ‘입을 수도 있는’과 ‘이렇게 입을 수 있지’의 차이. 즉 ‘저렇게 입으면 당연히 교장선생님이지’ 하는 경계선에서 ‘이렇게 입을 수도 있지’와 다른 사람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정형화된 이미지 사이에서 교차점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라며 영화 속 리얼리티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리얼리티의 거리를 극복하는 과정이 영화의상 작업을 할 때 항상 안가고 가야 할 딜레마임을 밝혔다.
영화의상 감독으로서 그녀의 이 같은 끊임없는 고민은 영화마다 각기 다른 리얼리티와 자신만의 미학적 시각을 절충해 따스하게 녹여냈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인생이 정말 소중했어요. 극 중 인물 마다 애착이 강한 거 같긴 해요. 그것만 생각하다보면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이죠”라는 말은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되는 김정원 감독만의 영화의상 작업의 신념을 오롯이 드러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로봇소리’ ‘즐거운 인생’ ‘해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