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킹’ 정우성, 데뷔 24년차의 첫 검사 연기 “부당함 전하며 쾌감 느꼈죠” [인터뷰]
- 입력 2017. 01.18. 17:43:56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영화가) 재미있고 통쾌하고 발란스가 좋아요. 영화에 모가 생기면 덜컥거리는데 모든 배우 한 명 한 명 어색함 없이 ‘더 킹’이라는 하나의 세계관 앞에서 하모니를 이뤄요.”
18일 ‘더 킹’(감독 한재림, 제작 우주필름)이 개봉되고 예매율 1위에 등극, 좋은 평을 받고 있다. 18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모처에서 만난 정우성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막연히 영화가 잘 되길 바랐을 뿐 순위에 연연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반응이 좋을 거라고) 예상한 건 아니다. 잘 되길 바란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꼭 1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영화마다 가진 특성이 있는데 그게 잘 나오면 된다고 생각한다.”
‘더 킹’은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나게 살고 싶었던 태수(조인성)가 대한민국을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정우성)을 만나 세상의 왕으로 올라서기 위해 펼치는 이야기를 다룬다. 정우성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권력 설계자 한강식을 연기했다.
지난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해 데뷔 23년 차 배우인 그이지만 후배인 조인성의 분량이 단연 많은, 조인성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영화에 출연했다. 메인이 아닌 배역도 마다치 않은 것에 대해 그의 생각을 물었다.
“‘감시자들’(2013)의 제임스도 메인이 아니었다. 영화를 하다 보면 같이 했을 때 하나의 완성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더 킹’도 한강식을 (연기)함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충분한 몫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 롤에서 내가 주인공이고 정우성스러운’ 걸 표현했을 때 그게 캐릭터를 위한 거다. ‘정우성스러운 것’은 그 안에 나를 투영하는 거다. 나니까 나처럼 보여야 한다는 거다.”
그에게 완성된 영화를 본 만족도를 묻자 금세 “만족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만족한다. VIP 시사회까지 끝났는데 동료들의 반응을 듣는 것 역시 작업을 끝낸 후의 재미다. 한강식이 신마다 보이는 그 사람이 가진 성격의 결이 다양하다. 그렇기에 여러 신을 두루두루 이야기해주더라.”
극 중 그가 커피를 마시는 신에서 보여준 표정은 이른바 ‘인생 연기’라는 평이 나오기도 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다.
“글쎄. 그 표정은 한강식의 내면의 치졸함을 담기 위해 지은 거다. 그런 게 잘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웃음)”
‘더 킹’에는 여러 대통령의 실제 얼굴이 등장한다. 배우가 아닌 실제 대통령의 얼굴을 넣는 등 과함하게 정치인을 비판하는 작품에 출연하는 것에 있어 고민은 없었을까.
“고민은 안 됐다. 오히려 시국이 이렇게 돌아가지 않을 때 기획한 영화고 그때 읽은 시나리오다. 당시 감독님의 패기·용기가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현실을 빗대 판타지를 보여줄 수 있지만 다분히 현실을 보여주는 게 영화이기도 하고 그런 걸 용기 있게 보여주는 자세도 필요하니까. 어찌 보면 씁쓸한 질문이다. 현직 대통령의 사진을 쓴다는 게 걸릴 게 없으면 자연스러운 거다. 그런 것의 사용을 그쪽에서 자제시켰기에 알아서 조심한 게 한국의 근대사인데, 표현이란 건 자유로워야 한다.”
그는 한강식을 연기했지만 권력 검사의 행동에 대해선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력 구조 안에서 잘못된 선택이 불러오는 결과의 위험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해 안 됐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 환경에 연약할 수밖에 없잖나. 각자의 정당성, 직업의식, 도덕성이라 할 수도 있는데 정당성을 잃기도 쉽고 타협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눈 감고 귀 막고 그런 걸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 그 사회는 썩은 사회다. 그런 선택에 대한 물음, '더 킹'에선 그게 검사란 직업으로 나온다. 권력구조에 나오는 사람들의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주는 거다.”
부패한 권력을 대표하는 한강식을 연기한 그에게 현실에서의 시국의 흐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영화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걱정은 없었다. 시국은 시국, 영화는 영화다. (현실에서) 스타들이 자꾸 나온다. 영화를 홍보해준다고 생각은 했다. 빗대어질 순 있다. 국민으로서 느끼는 감정이 크다. 영화라는 게 개봉할 때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어떻게 보면 ‘더 킹’이 던지는 본질적 질문으로 인해 의식과 질문이 깨어나 바람직한 타이밍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극 중 굿판이 벌어지는 장면은 현실에서의 정치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정치인들이 무속인들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시국과 관련해 정치인이 무속신앙에 크게 의존하는 모습은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그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만 해도 현실과 떨어졌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풍자잖나. 주변을 보면 개인적인 사연과 사정으로 점집에 가기도 하지 않나. 사적인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아니라 공적인 마음을 가져야 할 사람이 사적인 것에 마음을 덧대어 무속적 답을 바란다는 게 엄청난 희화화다. 종종 그런 경우도 있다고 한다.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나’하는 것보다 진지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비웃을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영화의 펜트하우스 신은 권력의 상징이자 영화의 큰 볼거리다.
“워낙 많은 배우가 함께 하니까. 우리는 준비된 안무에 충실하면 되는 건데 안무 없이 그 분위기에서 연기하는 주변 배우들이 피로도가 크다. 배성우 씨 같은 경우 초반부터 분위기를 잡는 연기를 시작하며 공헌을 했다. 큰 세트에 많은 배우와 소품을 들여 사흘 이상 촬영을 했다. 나 스스로는 ‘한강식스럽게’ 열심히 하자는 단순한 목표를 가졌다. 나보단 다른 배우들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검사 역할을 맡은 그는 첫 검사 역부터 부도덕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런 캐릭터를 맡아 연기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을 분더러 쾌감도 느꼈다고.
“만족했다. 정의로운 모습을 연기하는 것도 쾌감이 있지만 내가 미워하는 대상을 스스로 투영해 내 관점을 공유한다는 것 역시 큰 쾌감이 있다. 이상하게 어렵지 않더라.(웃음) 그 인물이 내포한 부당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공인으로서 정치적인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을 경계하는 이들도 있다. 이와 관련, 정우성은 자신이 기성세대가 되어가며 젊은 세대에게 느끼는 미안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실 안정된 사회에서는 배우라는 사람들이 자기의 정치적 이야기를 하는 걸 기피해야 한다. 직업의 본분이란 게 있잖나. 발언에 대해 온전한 캐릭터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발언이란 건 정치하는 사람처럼 좌우를 나눠 어느 쪽이 맞다, 아니다인데 내가 이야기 하는 건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 하는 거다.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것 같다. 젊은 세대를 보면 ‘저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해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선배이자 윗사람으로서 무슨 고민을 하는지 생각한다. 많은 기성세대가 자기 주머니만 챙기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극 중 자자의 ‘버스 안에서’, 클론의 ‘난’ 등을 부르고 군무를 추는 장면은 큰 재미를 준다. “여전히 군무를 기억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잊었다”며 웃었다.
“짧고 굵게 연습하고 촬영할 때 쓰니 그걸 기억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수라’ 일정 때문에 혼자 따로 연습했다. 내가 가장 잘한다는 믿음으로 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어떻게 받아들였나. 춤을 보여줘야 한다는 단순 목적이 아니었다.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은 놀 때도 더 격렬히 논다. 그런 맥락에서 열심히 했다.”
이번 영화에서 그에게 가장 강렬하게 가 닿은 장면을 묻자 조인성이 연기한 장면을 꼽으며 그의 연기를 칭찬했다. 영화 자체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것 역시 짚었다.
“태수가 쓰러지고 자기의 선택에 대한 숙제 아닌 숙제를 담은 독백이 흘러가는데 소름 끼치게 잘한다. 우리는 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해 맞는지 안 맞는지, 내가 만약 이상한 감정을 실었으면 찜찜한 감정, 후회, 상대에 대한 미안함 등의 감정이 있을 텐데 개인이 가지는 그런 작은 감정을 영화 안에서 커다란 선택이란 대주제로 표현한다. 객관적으로 이 영화는 영화라 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정우성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 사이에서도 우상 같은 존재다. 배우 후배들도 당연히 그를 보며 배우의 꿈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조인성 역시 그런 경우다. 이런 후배들을 보며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물었다.
“후배라기보단 현장에서 동료다. 그들이 나를 동경했던 마음이 있기에 그들로 인해 내가 더 바람직한 선배가 되려는 노력이 있는 거다. 그들은 나를 동경해 그 자리에 있겠지만 나는 그들 때문에 그들을 동경하면서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회사의 대표로서 회사를 끌어가는 것이 배우 활동 보다 고충이 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 대중은 회사 대표가 정우성 이정재인 점에 대해 ‘근무환경이 좋다’는 진담 반 농담 반의 반응을 내놓기도 한다.
“직원 관리가 힘들다기보다는 배우라는 직업은 캐릭터에 대해 고민만 하면 되는데, 회사는 식구들이 있으니 그 식구들이 일할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정우성 이정재이기에 근무환경이 좋다? 그건 아니다. 근무환경이란 게 그 사무실 안의 기운인데 매일 우리 둘이 앉아있을 수 없다. 전문경영인은 따로 있다. 실질적인 회사의 업무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에게 가치관을 지키려 노력했고 그게 대표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유다.”
45살. 나이가 믿기지 않는 미모의 그에게 중년의 배우로서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 궁금했다.
“어떻게 보여야 하겠다기보다는 좋은 선배가 돼야겠다는 게 또 다른 목표다. 후배들이 있기에 후배들을 동경하며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좋은 선배가 돼야겠다는 노력, 그게 뭔지는 모른다. 그런 걸 위해 하루하루 나아가야 하는 게 내가 나이를 잘 먹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
정우성과 함께 작업한 배우들은 입을 모아 그의 배려심·젠틀함·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에 대해 칭찬한다. 이런 그의 행동에 대해 그는 자신의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했다.
“원래 성격이었다. 워낙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혼자 세상에 나왔다. 미래가 불확실했지만 막연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다. 현장에 있을 때 모두 소중했고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액션 팀 같은 경우 위험한 데 관심을 못 받고 있는 걸 보고 관심을 갖는 등 함께 하고 나누는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그는 이른바 ‘스타병’이란 걸 겪어본 적 없이 잘 흘러갔다. ‘더 큰 스타’보다는 ‘더 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 다운 말이 인상 깊다.
“그게 뭔지 모른다. 그게 뭔지 모르고 지나간 게 다행이다. 더 큰 사람이 되어야지 더 큰 스타가 돼야겠다는 건 아니었다. ‘대인’이라는 말이 있는데 대인이 되는 게 쉽지는 않다.”
영화의 결말에 대해 “한강식이 무서운 행동을 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그는 '더 킹' 이란 영화가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까.
“어떤 영화는 사랑에 대한 낭만을, 어떤 영화는 의식에 대해 질문을 하는데 '더 킹'이 의식에 대한 질문을 던져요. 그런 질문에 충분히 답할 수 있다고 자부해요. 기성세대가 바꾼 세상은 없어요. 새로운 세대가 바꿨죠. 지금이 그런 타이밍이에요. 한 인간으로서 보자면 우리는 지는 해에요. 지는 해는 떠오르는 햇빛이 찬란할 수 있게 서포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