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킹’ 한재림 감독 “전작 ‘관상’과 달리 비틀고 싶은 갈증 있었다” [인터뷰②]
- 입력 2017. 01.25. 14:33:21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관상’은 관객의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역사와 운명 앞에서의 나약한 한 인간을 다루는, 비극적 결말의 카타르시스를 그리는 정공법적 영화에요. ‘더 킹’은 비틀고 싶은 갈증이 있었어요. 재미있어 하며 만들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면서 영화를 만들어서 (관객 수에) 그렇게 욕심은 안내요. 어느 정도 수고한 사람들이 보람이 느껴지는 영화였으면 하죠.”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모처에서 영화 ‘더 킹’(제작 우주필름)의 각본 연출을 맡은 한재림 감독(43)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전작 ‘관상’(2013)으로 관객 913만 명 이상을 동원했다. ‘더 킹’이 전작만큼의 관객수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지만 정작 영화를 만든 한 감독은 “큰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는 무려 두 달 만에 탈고했다. 6개월 동안 머릿속으로 구상을 해 놓은 덕이다. 부패 권력을 풍자하는 재미에 신나게 써내려갔다. 그렇게 완성된 시나리오를 통해 잘못된 선택은 그것이 비록 사소할지라도 큰 비극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빨리, 재미있게 썼다. 구상은 6개월 정도 했다. 6개월 동안은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주인공 등 인물 구상과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했다. 쓴 건 두 달 정도다. 정말 빨리 썼다. 남을 비틀고 풍자하는 게 재미있지 않나. 개봉 뒤 ‘더 풍자할 수 있지 않나’ 하는 반응이 있다. (시나리오를 쓸) 당시에는 ‘세다’는 평이 있었다. 사람들이 아는 내용도 많고 마당놀이처럼 서민의 애환과 풍자를 담았다. 마당놀이에서 왕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춤추고 울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것을 통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며 위로를 받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데 이것도 이 시국에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다시 확인하고 웃으면서 우리에게 힘이 있다고 느끼고 나쁜 선택이 얼마나 큰 비극을 만드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현 시국이 아니었다면 표현이 세다는 평을 받을지도 몰랐을 이 영화는 통쾌한 풍자로 시국의 흐름에 맞아떨어진다는 평을 받는다. 한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만 해도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과감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화가 개봉된 지금, 오히려 ‘더 할 수 있지 않았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상황은 변했다.
“지난 2015년에 탈고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서거 등이 다 들어있었다. 그런 걸 시국 때문에 빼야 할지 고민했다. 오히려 그거야말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겠더라. ‘오롯이 내가 이야기하고 싶던 걸 이야기하자’고 생각했다. 10년 후 봐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들려면 드라마적 요소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여야 한다. 좋은 영화는 그렇잖나. 10년 후에 봐도 감정이 느껴져야 한다.”
그는 ‘정치적 이야기가 너무 많지는 않을까’를 고민했다. 뉴스에서 본 것들을 영화에서도 보는 것에 대해 관객의 피로도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정치 이야기가 많으니까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를 또 봐야 하나’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사실 현대사는 배경이다. ‘포레스트 검프’(1994)에서 미국의 주요 역사를 검프 가 지나간다. ‘포레스트 검프’를 통해 한 나라인 미국을 상징해 보여주잖나. 그런 이야기였기에, ‘포레스트 컴프’를 보며 미국 역사를 쭉 훑었지만 그의 삶을 통해 얻는 게 있듯 태수(조인성)의 삶을 통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망에 의해 어떤 결과,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게 쌓이면 역사인 거고. 우리나라의 역사 부조리가 갑자기 이런 게 아니다. 지금 터진 모든 게 군부독재·비리 등을 묻고 묻으며 왔을 때 생긴 비리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취재 과정에서 그는 법조계 종사자들을 만났다. 영화 속 캐릭터와 같은 정치검사를 만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법조인에게 가상의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검사 등 법조인들의 이야기를 좀 많이 들었다. 그분들은 대부분 정치검사가 아니다. 그분들(정치검사)은 너무 높은 분들이라 만날 수도 없다. 검사들이 대부분 이런(영화와 같은) 일을 겪지 못했기에 그분들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수사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없다고 하더라. 그런 부탁을 하게 되면 소문도 나고 평판이 안 좋아지기에 그런 일은 잘 하지 않는다고. 설사 그런 전화를 받아도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들었다. ‘선배가 찾아와 무릎을 꿇으면?’하고 질문을 했더니 ‘정말 놀라고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라고 했다. 그런 것에 눈감는 게 작은 선택 같지만 큰 결과를 불러온다. 그런 게 현대적·개인적 비극이 된다. 영화는 거의 허구적 이야기다. 취재를 통해 만들었다고 하기보다는 이런 흠을 가진 사람들이 잘 못된 선택을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취재는 가상의 질문에 답한 이야기였기에 팩트에 대한 취재는 아니다. 책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거였다.”
한 감독은 영화를 통해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정치’가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라 말했다.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아닌 옳고 그름을 생각한다. 그걸 직설적으로 표현한 게 그렇게 느껴지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예전엔 코미디로 풍자를 편하게 했다. 이게 그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게 그렇게 (금기시) 됐다. 마음 자체가 당연해야하는 것 아닌가.”
권력을 상징하는 펜드하우스를 보여주는 장면은 영화에서 큰 볼거리다. 어두운 룸살롱이 아닌 펜트하우스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화려하게 즐기는 영화 속 권력자들. 펜트하우스와 그곳의 사람들은 관객의 입장에서 화려하고 보는 재미가 있다.
“그 지점이 기존 영화와 다르게 가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보통 지하 룸살롱으로 들어가고 천박하고 자극적인 걸 볼 거다. 그러면 동화되지 않고 객관화될 것 같다. 내 의도는, 관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승해서 멋있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권력의 단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권력자를 따라 재미있게 웃고 가는 것 말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엘리베이터 밑에서 죽 올라가게 해서 펜트하우스라는 권력상징의 공간을 태수의 시각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때문에 길게 일체화해서 찍고, 한강식을 등장시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어려웠지만)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찍은 거다.”
한 감독은 펜트하우스라는 화려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노래와 군무를 통해 부패한 권력을 풍자하고자 했다. 대중가요에 맞춘 기가 막힌 군무는 감독의 의도대로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군무를 통해 우스꽝스러운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양복을 입고 멀쩡한 사람들이 최신 유행 댄스를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재미있고 웃겼다.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이 ‘길라임’하는 것처럼 그들(부패 권력층)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웃잖나.”
박태수 한강식, 두 인물을 놓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모델로 한 것 아니냐’는 말이 많이 나왔다. 앞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우성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듯 직접 시나리오를 쓴 한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당시 우병우를 전혀 알지 못했으며 김기춘의 경우 이름만 들었음을 밝혔다.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우병우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김기춘이라는 이름만 들었지 관심이 없었다. 다만, 사람의 감정은 비슷한 것 같다. 작은 욕망 때문에 신념을 버릴 때가 있다. 나는 사회적으로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은 큰 영향을 ‘사회적으로’ 끼친다. ‘보편타당한 이야기구나’ 생각이 드는 거지 무대가 표본이 된 건 아니다.”
극 중 정치인이 무당을 찾고 굿을 하는 등의 장면이 최근 뉴스를 통해 본 현실과 맞닿아 있는 지점에 대해선 한 감독 역시 ‘설마’하는 마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사실임이 드러나 놀랐다고.
“웃으라고 만든 거다. ‘정치인들이 중요한 순간 점쟁이에게 가더라’는 이야기가 있잖나. ‘설마’ 하고 안 그랬으면 하는 마음인데, (사실이라면) 얼마나 웃길까 했는데 실제 이런 사건이 있어 안타깝고 놀랐다.”
‘더 킹’은 범죄드라마이고 부패한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무겁게 다루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이 같은 장르와 소재에 대해 관객이 예상하고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권력자를 객관화시키는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태수의 선택에 대한 후회를 못 느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진 자의 시선으로 이걸 보면 객관화가 된다. 클론의 ‘난’,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부르고 춤을 추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태수가 위기에 빠졌을 때 절실함을 주고 싶었기에 그런 방법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는 ‘더 킹’을 세상에 내놓고 여느 감독들이 그렇듯 아쉬움을 느꼈다고. 그럼에도 ‘이번엔 잘 나올 것 같아서’라는 기대가 그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한다.
“부족하다. 어느 감독도 ‘이건 괜찮은 것 같다’ 하면 거짓말이다. 자신감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일 거다. 많은 걸 포기하는 작업이잖나. 더 잘 쓰고 싶고 촬영·편집도 더 잘 나와야하는데 늘 아쉬움만 남는다. 영화를 개봉하고 다시 안 보는데 또 새로운 작업을 하는 이유는 ‘이번 엔 잘 나올 것 같아서’다.(웃음)”
‘더 킹’에는 제법 많은 카메오가 등장한다. 특히 목포 ‘들개파’의 보스 김응수를 연기한 김의성은 대사가 단 한 마디에 불과하다. 그를 캐스팅한 이유를 들었다.
“일단 워낙 존경하고 좋아한다. 그분의 삶 자체와 신념을 좋아하고 응원해서 당연히 (작업)하고 싶은 배우였다. 이번 영화에서 맡은 역할 아니면 정치인 같은 것 밖에 (배역이) 없는데 정치인 같은 건 좀 하셨고 이번에 새롭게 한강식의 포스와의 이면이 되는 아우라를 가진 배우가 김의성 선배라 생각했다. 이 역할이 더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해 흔쾌히 승낙하셨다. 잘 해주셔서 (캐릭터가) 강렬히 드러난다.”
‘연애의 목적’(2005) ‘관상’에 이어 ‘더 킹’으로 로맨틱 코미디, 사극, 범죄 드라마 등 다양한 행보를 보이는 그가 감독으로서 추구하는 방향은 어떤 것일까.
“제가 재미있고 관객이 재미있어할 거라고 예상되는 걸 하고 싶어요. 보통 좋은 감독은 자기의 장르를 개척하고 업그레이드해요. 전 한 장르를 계속 하는 게 지루하더라고요. 금방 싫증을 내는 사람이라 (전작을) 사극을 하니 이런 걸(‘더 킹’을) 하게 된거죠. 나중엔 긴장감 있고 묵직한 영화를 하고 싶어요. 관객에 뭔가를 던지고 저 또한 뭔가 계속해나가고 싶어요. 제가 재미없으면 못 해요. 멜로도 하고 싶긴 한데 텔레비전 (드라마)도 다양하게 변주해서 하는데 시청자가 충분히 공감하기에 영화에서 그 이상으로 보여주기가 힘들어요. 관객 눈높이도 높고. 드라마 ‘도깨비’도 신선하고 재미있잖아요. 그런 것과 영화는 다른 분야이긴 한 것 같아요. 배우들도 사람 사는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더라고요. 화려한 액션 같은 것도 재미있지만 감정을 보여주는 보람도 느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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