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정우·강하늘의 연기X시의 적절한 일침 [씨네리뷰]
입력 2017. 02.02. 20:48:58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내민, 누군가의 전 재산이 든 흰 봉투. 오만 원 만원 천원, 꼬깃꼬깃 알록달록한 지폐가 흰 봉투 밖으로 고개를 내민 순간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이라면 비록 속세에 물든 이라 해도 아직은 정의를 입에 올릴 수 있는 변호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목격자에서 살인범으로, 누명을 쓴 한 청년은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세상으로 돌아온다. 지난 2000년 실제 벌어진, 영화 같은 실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 바로 그 이야기다.

지난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경, 전북 익산 약촌 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12차례 칼에 찔린 채 무참히 살해당한다. 경찰은 이 사건의 열쇠가 되는 목격자를 살인범으로 둔갑시키고 강압수사를 통해 증거 없는 자백을 받아낸다. 이 목격자는 동네 다방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소년. 그는 사건 현장 주변에서 한 남자가 뛰어가는 것을 봤다고 진술한 뒤 용의자가 돼 수사를 받고 살인범으로 몰린다. 탐사보도 프로그램, 뉴스 등 방송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내 이 사건은 국민적 공분을 샀지만 경찰 검찰 법원은 모르쇠로 일관, 현재까지도 이 사건은 재판 진행 중에 있다.

김태윤 감독은 이 사건을 재해석해 ‘재심’(제작 이디오플랜)이라는 영화를 탄생시켰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10대 소년 현우(강하늘)는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10년을 보낸다. 돈도 빽도 없이 빚만 쌓인 변호사 준영은 거대 로펌 대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료 변론 봉사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현우의 사건을 알게 된 그는 이 사건이 명예와 유명세를 얻기 위한 좋은 기회임을 직감한다. 실제로 현우를 만난 그는 다시 한번 정의감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현우는 준영의 도움을 받아 다시 한번 세상을 믿어보려 한다.

김태윤 감독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살해 현장 목격자인 소년이 용의자가 된 과정을 영화화했다. 사건을 취재하던 한 기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영화는 억울한 희생양이 된 한 청년의 사연을 통해 공권력 남용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설사 그것이 아주 작은 결정과 행동이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만들어내는 파장은 엄청날 수 있다.

극 중 경찰은 경찰이라기보다 조직폭력배에 가깝다. 오히려 조직폭력배가 경찰보다 인간적으로 그려질 정도다. 사건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보여주는 도를 넘은 강압수사, 억울한 국민보다는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보는 경찰 검찰 법원의 비도덕적·비인간적 모습을 통해 공권력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시국과 맞물려 시의적절한 일침이다.

영화는 사건 자체가 주는 슬픔이 반영된 듯 전반적으로 슬픔을 깔아두고 진행된다. 잔잔하게 깔린 음악은 극의 몰입도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정서를 자극한다. 배경이 되는 어촌 마을 풍경은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결정적 ‘한방’이 없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영화보다 영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과하지 않게 풀어냈다.

쎄씨봉’(2015)에서 한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정우·강하늘은 세 번째 실화 영화 출연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정우는 ‘쎄씨봉’ ‘히말라야’(2015), 강하늘 은 ‘쎄씨봉’ ‘동주’(2016)에 이어 ‘재심’이 세 번째 실화 영화다.

이번 영화에서 강하늘은 단연 돋보인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실감과 보는 재미를 동시에 주는 연기를 보여주는 그는 전라도 사투리 역시 큰 이질감 없이 구사한다. 정우는 극의 중심축으로서 관객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감독의 의도 대로 미운 행동을 해도 밉지 않은 면모를 보이는 그는 색깔 있는 연기로 영화가 너무 무겁거나 어둡지 않게 희석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인물의 심리에 대한 설명에 부분적 공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인물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와 공감을 방해한다. 준영은 정의감보단 돈을 따라 움직이는 세속적인 변호사다. 그런 그가 갑자기 현우의 억울함에 공감하고 누명을 쓰게 된 과정에 개입한 경찰과 검찰을 비판한다. 관객은 준영의 심리를 타고 이야기를 따라가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벽을 마주한 듯한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해야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지만 현우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결심하는 결정적 장면에서 주인공의 심리 변화에 대한 연기적 혹은 상황적 설명의 부재로 급격히 세속적 검사에서 정의로운 검사로 변화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가 현우의 편에 설 이유가 되는 요소는 존재한다. 사회의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경찰 검찰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힘없는 한 소년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극악무도한 일을 벌인 것에 대한 인간적 분노일수도, 엘리트적 길을 걸어오지 않았던 그가 본 현우의 처지에 대한 공감일 수도 있다. 지방대학 중퇴에 돈도 빽도 없이 사법고시만 패스하면 탄탄대로가 펼쳐지리라 믿었던 그의 현재의 상황은 과거 억울한 누명을 쓴 것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현우의 처지와 닮은 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그가 느낀 동질감이 현우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을 더 강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여러 요소가 복합적인 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관객이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은 영화의 설명이 부족했음을 증명한다. 이야기를 명확히 볼 수 없도록 가로막는 부분적인 공백은 스토리의 연결을 매끄럽지 못하게 한다.

준영의 연수원 동기이자 거대 로펌 변호사 창환이 돌변하는 이유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것 역시 이해가 어렵다. 그의 선택이 생뚱맞게 보이는 것은 그의 심리 변화나 선택의 배경에 대한 설명 부족으로 인한 것이다. 인물의 행동이 좋든 나쁘든 그의 선택에 대한 타당성이 전제되어야 그의 선행 또는 악행의 이유를 파악하고 그 나름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다. 오는 16일 개봉. 러닝타임 119분. 15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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