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작된 도시’ 예상치 못한 전개, 상상력이 빛나는 범죄 액션 [씨네리뷰]
- 입력 2017. 02.06. 01:02:11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눈을 떠보니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져 있다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모든 상황이 자신을 살인범이라 가리키고 온 세상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면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돌파할 수 있을까. 절벽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는, 희망 없는 현실에서도 끝내 헤쳐나가는 용기를 보여주는 이는 다름 아닌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다.
게임과 현실을 오가는, 구분이 모호한 두 세계의 이야기는 현실을 비유한다. 믿기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현실, 현실과 무서울 정도로 닮아가는 가상세계는 오히려 현실적이기에 별다른 이질감을 주지 않는다.
권유(지창욱)는 게임 세계 속에서는 완벽한 리더지만 현실에서는 평범한 백수다. 어느 날 피시방에서 우연히 휴대폰을 찾아 달라는 낯선 여자의 전화를 받은 뒤 영문도 모른 채 그녀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린다. 모든 증거는 짜 맞춘 듯 권유를 범인이라 가리키고, 아무도 그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는 가운데 권유의 게임 멤버이자 초보 해커인 여울(심은경)은 이 모든 것이 단 3분 16초 동안 누군가에 의해 완벽하게 조작됐음을 알게 된다. 특수효과 전문 데몰리션(안재홍)을 비롯해 게임 멤버가 모두 모여 자신들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사건의 실체를 추적해나가기 시작하고 조작된 세상에 맞서기 위해 나선다.
영화는 초반부터 액션 장면으로 시작한다. 웅장한 음악과 지나치게 멋있어 보이려는 인물을 통해 모든 것을 과장한다. 결국 이것은 초라한, 혹은 ‘별 볼 일 없는’ 현실과의 대조를 선명하게 한다. 극명한 차이를 보이던 두 세계는 어느 순간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된 세계에서 혼란을 겪는 주인공은 이전에는 하찮게 여겨졌다 할지라도 위기를 맞은 순간 저력을 발휘한다. 이는 도입부 내레이션으로 처리된 시에서 말하는 내용과 오버랩된다.
모두의 눈에 쓸모없는 썩은 나무처럼 보일지라도 그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는 나무일 수도 있다. 결국에는 하늘을 찌를 듯 쭉 뻗은 가지를 뽐내는 나무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한심한 젊은 백수라 할지라도 실은 그 속에는 자신도 몰랐던 가능성을 지녔을 수 있다. 마치 누구라도 절망할 상황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주인공처럼.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개, 휘몰아치는 액션은 관객을 집중하게 한다. 뻔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곳곳에 숨은 충격적인 전개는 틈틈이 관객을 놀라게 한다. 박광현 감독은 게임 만화 현실을 오가는 이야기로 새로움을 지향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이룬다. 현실 판타지 유머가 공존하는 이 영화는 박 감독의 전작인 ‘웰컴 투 동막골(2005)’을 떠오르게 한다.
주인공인 권유를 비롯한 그의 팀은 평범한 이들이 기득권에 맞서 반격하는 모습으로 통쾌함을 선사한다. 감독은 ‘누구나 살인자로 조작될 수 있는 도시’가 있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스토리뿐 아니라 비주얼 적으로도 신선함을 보이고자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비슷한 영화에 피로감을 느낀, 새로운 것에 대한 관대함을 지닌 관객이라면 반길 만 하다.
지창욱은 액션에 익숙한 배우라는 느낌을 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능숙한 액션을 보여준다. 스크린 첫 주연이지만 원톱으로서 큰 부족함 없는 모습으로 무난히 신고식을 치른듯하다.
게임 속에서 권대장이라는 ID를 사용하는 권유 역을 맡은 그는 게임에서는 완벽한 리더, 현실에서는 평범한 백수의 모습을 연기한다. 심은경은 옆 사람과도 전화로만 대화하는 대인기피증이지만 탁월한 해킹 실력을 지닌 여울 역을 맡았다. 그녀의 어눌한 말투와 어딘지 어두운 느낌이 배역에 잘 어울린다. 안재홍은 게임에서 프로 스나이퍼로 활약하며 현실에서는 특수효과 말단 스태프인 데몰리션 역을 맡았다. 순수하고 실수를 연발하는 귀여운 모습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오정세는 국선변호사 민천상 역을 맡아 어눌함을 넘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독특한 캐릭터로 특히 많은 활약을 펼치는 그의 캐릭터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교도소를 통제하는 권력자 마덕수 역을 맡은 김상호 역시 개성 있는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물에 기대어가는 영화는 관객을 배우의 연기에 집중하게 한다. ‘조작된 도시’는 감독이 스토리와 연출로 이끌어간다. 이야기와 시각적 효과 모두 그 독특함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방향을 알 수 없는 전개는 반전으로 놀라움을 자아내고 비주얼의 신선함이 보는 재미를 준다. 덕분에 두 시간이 조금 넘는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임 속 팀원의 현실 세계 속 끈끈한 우정은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현실이 아닌 영화이기에 감안하고 볼 수 있는 정도다.
감독은 대놓고 현실과 게임을 오가는 이야기를 만들었기에 이 외에도 많은 판타지적 요소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으로 인해 비난받을 여지는 적다. 심지어 쌀알이 나오는 장면 등에서는 환상적인 요소를 은유적인 의미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은유적인 요소라는 점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작은 요소가 의미하는 것들이나 평범한 이들이 무언가를 해낸다는 내용이 던지는 메시지 등은 선명하지 않다. 유사한 영화가 많은 가운데 새로운 것에 도전한 것은 관객에게 반가운 일이다. 다만 현실성이 부족한 만화적 이야기를 기피하는 관객이라면 기호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핸디캡이 공존한다. 오는 9일 개봉. 러닝타임 126분. 15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