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글라이더’ 이병헌 “‘달콤한 인생’처럼 남자의 심리·감정 좇는 영화” [인터뷰]
- 입력 2017. 02.20. 13:45:33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이 영화가 가진 전체적 감성과 무드가 좋았어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모처에서 만난 배우 이병헌은 영화 ‘싱글라이더’(감독 이주영, 제작 퍼펙트스톰필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번지점프를 하다’ 이후 16년 만에 보여주는 감성 연기가 배우 입장에서도, 관객 입장에서도 반가울 터다.
‘밀정’에 이은 워너브라더스의 두 번째 한국 영화 배급작인 ‘싱글라이더’는 증권회사 지점장으로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한 가장이 부실채권 사건 이후 가족을 찾아 호주로 사라지면서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요즘 내 영화들을 본 관객들이 블록버스터, 액션 위주로 봐 왔다. 못 보던 캐릭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전부터 따져본다면 이런 감성의 영화를 한 적이 있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이런 감성의 영화를 선호한다. 보는 이들의 입장에선 선이 굵은 액션을 좋아할 수 있지만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선 이런 작은 감정을 표현하고 따라가는 게 난 재미있다. 요즘 내 영화들을 본 관객들이 블록버스터, 액션 위주로 봐 왔기에 못 보던 캐릭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전부터 따져본다면 이런 감성의 영화를 한 적이 있다. 액션도 좋아하는데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이런 감성의 영화를 선호한다. 보는 이들의 입장에선 선이 굵은 액션을 좋아할 수 있지만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작은 감정을 표현하고 따라가는 게 난 재미있다.”
한동안 블록버스터, 액션 등 화려하고 선 굵은 연기를 보여주던 그는 예전에도 물론 감성 연기를 보여줬기에 감성 연기를 하는 데 있어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단지 디테일한 감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
“이런 영화는 디테일한 감성을 놓치면 안 된다. 액션 같은 경우 디테일을 놓치더라도 크게 그것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지만 이런 영화는 그런 감성을 놓치고 간다면 정말 큰 걸 놓치고 가는 것이기에 아무래도 좀 더 신경을 쓰게 된다.”
화려한 볼거리보단 캐릭터의 심리와 감정 변화로 진행되는 감성 영화이기 때문에 흥행에 관한 부담이 있지는 않을까.
“영화 제작사·배급사 쪽에 미안한 애기지만(웃음) 부담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어떻게 영화마다 흥행하겠나. 숫자로 영화를 평가하는 현실이 되긴 했지만 그게 꼭 좋은 건 아니라고 예전부터 생각했다. 이번 영화를 선택했을 때도 ‘또 한 번의 천만 영화가 탄생하겠다’고는 1%도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이 영화가 잘못 돼서 평은 좋으나 관객이 들지 않는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또 선택할 거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좋았다.”
그는 극의 90% 이상 출연하며 유감없이 연기를 보여준다. 오랜만에 감성 연기를 보여줄 기회를 맞은 그는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펼칠 기회를 만나 좋지 않았느냐”고 묻자 역량을 펼친 건 시나리오를 쓴 감독이며 자신은 단지 남자의 미세한 감정을 쫓아가는 영화를 좋아할 뿐이라고 밝혔다.
“역량을 마음껏 펼치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글을 내가 쓴 건 아니니까. 한 남자의 심리와 미세한 감정을 쫓아가는 영화다. 그런 측면에서 ‘달콤한 인생’과 비슷하다. 영화가 찾는 재미가 다를 수 있지만 그런 측면에서 내가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작품에서 인물을 연기할 땐 배역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증권회사 지점장 강재훈을 연기한 이병헌은 그는 캐릭터의 어떤 점에 공감했을까.
“재훈이 회사에서 일적으로 벼랑 끝에 섰을 때 누군가와 맞서 싸우거나 그걸 이겨내 보려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지 않고 굉장히 무기력하게 나온다. 결과적으로 고객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호주로 무작정 도피하듯 간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문제에 대한 그의 태도는 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누군가가 내게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묻더라. ‘나의 경우 재훈이처럼 했을 것 같다’고 했다. 10년 전 나라면 어떨지 모르겠다. 사람의 성격이 변하는 것 같다. 내려놓고 초월하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쉽게 포기하는 것일 수 있지만 오히려 상황 앞에 기운이 빠질 수 있는 것 같다. 난 너무나 감정 이입이 됐다. 재훈의 태도에 공감이 갔다.”
영화를 찍기 전부터 그는 캐릭터의 행동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감독과 의논을 거쳤다. 설정이 확실해야 확신을 갖고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일 터다.
“(극 초반) 재훈의 선택에 따른 부분에 대해 영화를 찍기 전부터, 그리고 찍으면서도 감독님과 계속 이야기했다. 난 재훈이 선택한 것 같지 않다. 기분에 따라가다 보니 순간적으로 영화에서와 같은 선택을 할까 하는 순간도 있었을 테지만 그게 최종적 결론은 아니었을 거다. 그의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사소한 감정을 표현 못 할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연기를 했다. 선명하게 표현하지 않은 부분은 촉이 빠른 관객이라면 아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는 했다.”
많은 배우들이 대부분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를 택한다. 그 역시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영화를 택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는 것.
“살다 보면 많은 감정의 경험을 하잖나. 재훈의 입장들이 너무 와 닿았고 너무 깊이 이해가 됐다. 너무 꼭 하고 싶다. 당연히 배우들이 하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될 때도 있잖나. 감독이 (배우) 두 명 중 한 사람을 고민하고 배역이 다른 배우에게 갔을 때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쿨하게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보통일 거다. 나 또한 그렇고. 그런데 이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갔다면 난 정말 아쉬웠을 거다. 작품이 정말 좋았다.”
‘싱글라이더’는 첫 장편 영화에 데뷔한 이주영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신인 감독과 함께 한다는 점에 대해 그는 어떻게 느끼는지 들었다.
“물론 입봉하는 분이기에 어떤 연출의 색깔을 가지고 있고 어떤 스타일일지 궁금하고 걱정되며 기대되는 부분이 있다. 계속 믿고 감독님을 의지한다. 이창동 감독님이 검수를 했다고 하지만 그런 힘들은 이 분이 정말 몇 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붙잡고 본인이 시나리오에 모든 걸 쏟았다. 난 시나리오가 정말 좋았기에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었다.”
극 중 재훈은 거의 웃지 않는다. 그는 왜 웃지 않을까.
“전체적인 재훈의 심리 상태와 그런 것들만 온전히 생각하며 연기했다. 웃음이 있을 만한 구석이 없다. 딱 한 번 치치 눈썹 때문에 살짝 웃는 장면이 있다. 아들 방에 몰래 갔을 때 아들 사진을 보며 살짝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다. 극 중 재훈의 심리와 상황으로 볼 때 웃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한다. 극 중 재훈이 스시를 고무 씹듯이 먹잖나. 아무 생각 없이 행하는, 살기 위해 꾸역꾸역 먹는 게 아니라 반복적인 일상이다. 먹는다기보다는 움직이는 거다. 그런 게 그의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재훈은 증권회사 지점장으로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한 가장이지만 부실채권 사건으로 모든 걸 잃고 가족을 찾아 호주로 간다. 중간에서 책임을 정면으로 맞게 되는 그의 모습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악행을 저지르는 다른 영화 속의 많은 인물과 대비돼 오히려 낯설기도 하다.
“재훈이 만약 그 모든 부실채권의 중심에 있는, 자기가 의도한 범죄의 일이라면 도주하고 피할 생각을 할 수 있다. 자신도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 정말 일반적이고 평범한 남자이기에 지점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반성을 당연히 할 거라 생각했다. 기업의 오너도 아니고 지점의 지점장일 뿐인 입장이잖나.”
한국 영화에서 드물게 대부분의 장면을 호주 로케이션으로 촬영, 호주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 오페라 하우스, 본다이 비치, 그레이트 오션 로드 등 아름다운 풍광을 담았다. 특히 하버 브릿지나 내부까지 촬영한 오페라 하우스가 등장하는 것은 한국 영화로는 최초여서 눈길을 끈다.
“몇 번 이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할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다 재미있을 수는 없죠. 하지만 어떤 관객에겐 인생영화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워너브러더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