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웅 “‘해빙’, 부담감에 악몽도 꿨다” [인터뷰③]
입력 2017. 03.08. 17:46:15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하나의 목적을 갖고 만난 사람들이에요. 목적의식을 갖고 자연스레 털어놓을 수 있죠. 작품을 하러 왔기에 모두 거기에 대해 이야기해요. 가장 중요한 건 술이고.(웃음)”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 모처에서 만난 조진웅은 동료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친해질 수 있는 계기에 대해 ‘같은 목적을 갖고 만났기 때문’이라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술자리’를 꼽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주연인 동시에 쉽지 않은 배역을 맡은 것에 대해선 고민이 있었음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승훈 캐릭터를 맡고 꿈을 꿨는데 내가 대사를 못 외우는 거다. 다른 영화인 것 같았는데 ‘빨리 안 하고 뭐 하느냐’고 하더라. 빨리 보는데 글자가 하나도 안 보였다. ‘연기력‧암기력에 문제가 있고 그만큼 준비가 안 돼 있다’며 ‘작품을 못하게 됐다’는 전화가 오고 그런 기사가 나왔다. 어느 순간 침대 하나만 남고 다 없어지더라. ‘잘됐다’고 중얼거리고 올라갈 의지가 없었다. 그만큼 이 영화가 압박감이 있었다.”

영화는 두 번의 경제 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전락을 중년 남성의 불안과 공포를 통해 보여준다. 그는 살인사건의 비밀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게 된 내시경 전문의 승훈 역을 맡았다.

“‘전락’이라고 감독님이 표현했다. 길을 가다 채여 넘어졌을 때 일어나야겠다는 의식이 들 정도의 아픔이 있을 거고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 수 있는 상황이 있겠구나 싶었다. 주변에서 그런 분들을 뵙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상황이 많잖나. 재생 불가능한 상황이 있었던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이게 가상의 현실이라 다행이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대입해 보면, 승훈이란 캐릭터는 내가 작업해 왔던 것과 다르다. (전작에서는) 제시적인 캐릭터가 많았다. 승훈은 그렇지 않다. 온전히 자기 속으로 들어가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하고, 아들과 만나야 하고, 정육식당에 가봐야 하고. ‘저건 뭐지?’ 하는 순간들이 엄습해 온다.”

승훈은 그가 전작에서 연기한 캐릭터들과 달랐다. 제시적인 캐릭터가 아니기에 감독과 상의해 가며 변주를 했고 그는 거기서 오는 재미를 느꼈다.

“승훈이란 캐릭터는, 충돌하고 재현적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캐릭터가 될 것 같았다. 감독님과 ‘더 들어가 보자’ 한 게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의식하지 않은 게 많았다. 의도하지 않은 데서 오는 변주, 그런데서 오는 신명이 있다. 얼마 전 시사회에서 보면서 ‘됐다. 좋았다’ 보다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잘 왔구나. 놓친 부분은 많이 없구나’ 했다. 쇼트마다의 ‘의도한 게 잘 나왔다’ 라고까지 말하긴 그렇지만 ‘장면이 잘 이뤄졌구나’ 싶었다. 의도한 건데 정말 맵게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극 중 승훈이 우리 사회의 전락을 보여줬다면 배우 조진웅에게 있어 ‘힘들 때’는 언제일까.

“작업이 해결이 안 될 때가 가장 힘들다. 작업할 때만큼은 세상없이 재미있다. 연극할 때 무명이 길어 힘든 건 모르겠다. 힘들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힘든 건 캐릭터가 풀리지 않고 연출도 안 풀릴 때다. 그럴 땐 매일 집에 가서 숙제하는 기분이다. ‘10억 줄 테니 풀어 달라’고 해서 준비해 오고 싶을 만큼 힘들고 괴롭다. 그러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기 최면을 건다.”

무명 시절에 대한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는 조진웅. 그가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이유는 ‘풍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늘 즐거운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학교에서, 친구 집에서, 단칸방에서 살아도 연기와 함께하며 즐거움을 느꼈다는 그는 행복하던 대학 시절을 회상했다.

“돈이 없을 땐 단칸방에서 살고 친구 집에 얹혀살았다가 대학 다닐 땐 극단에서도 살고 학교는 기자재실이 내 집이었다. 그곳에 사는 게 내게 가장 경제적인 일이었다. 버스 탈 일 없이 (일어나) 바로 연습하고 강의실도 바로 위였다. 행복했다. 중간중간 엠티도 가고 술도 마시고 놀고. 엠티 가는 걸 좋아했다. 재미있게 살았다. 대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연극을 하고 공연만 보면 됐다. 매일 ‘쫑파티’ 하고. 학교 극단과 외부 극단을 오가며 연극제 준비도 하고 다른 재미있는 작품이 있으면 잠깐하고 오고 그랬다. 표준어를 쓸 줄 알고 해서 대극장에 무조건 서야 했다. 1학년 때부터 불려 다녔다. 공연에 계속 있어야 했는데 많이 할 때 가장 학점이 높았다. 일주일 이상 가만히 있던 적은 없다. 내겐 그게 전부였다. 우리 극단이 젊은 20대 초중반으로 모노톤으로 연극을 많이 만들었다. 대부분 창작극인데 정말 피 튀기게 설전을 벌였다. 몇 명이 앉아서 하는데 공부를 하지 않거나 자료를 준비하지 않으면 열 시간 이상을 가만히 앉아있어야 했다. 말 한마디라도 하려면 도서관에 가서 본인 몫을 준비하고 참석해야 했다. 포스터 붙이다 던지던 시절, 그게 전부였다. 매일 연극놀이를 하면서 지내왔다. 그게 가장 큰 자양분이 되는데. 지금도 가끔 그 이야기를 한다.”

‘해빙’에서 호흡을 맞춘 김대명은 조진웅의 작품을 거의 모두 찾아봤을 정도로 그의 팬이다. 조진웅 역시 ‘미생’을 통해 김대명의 팬이 됐다. 중간에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는 김대명을 칭찬하며 오래 함께 가고 싶다는 말로 진심을 전했다.

“새로운 배우들과 협연하는 건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다. 신구 선생님은 정말 우리가 잘 아는 선배님으로 그 연배에 우리보다 강하게 에너지를 나타내면서 해 오시는 건데 정말 닮아야 하는, 의무적으로 존경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김대명은 ‘미생’을 보면서 일찌감치 팬이 됐다. 보이스가 여성적 이미지에 굉장히 잘 어울리고 그렇기에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할까 싶었다. 전화 목소리는 정말 듣기 그렇긴 한데 매번 명절마다 전화가 온다. 고마운데(웃음) 명물인 것 같다. 호흡이, 템포가 굉장히 독특하다. 차지다고나 할까? 호흡이 차져서 내가 재미있다. 그러다 눈을 보면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도둑놈이 도둑놈이라 안 하잖나. 만나오며 느낀 건, 굉장히 선하다. 그런 선한 건 형이지만 배워야 할 것 같다. 오래 같이 가고 싶은 배우다.”

‘사냥’ ‘아가씨’에 이어 ‘해빙’까지. 최근 유독 스릴러에 많이 등장한 그는 장르 보다는 작품 자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이번 영화에 출연하게 됐음을 밝혔다. 캐릭터가 연기하기 까다로운 만큼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해빙’을 읽으며 ‘어떻게 풀어질까?’가 첫 번째였다. 지질한 건 아는데, 어떻게 자기가 그걸 모를 수 있나. 집에서 연습했는데 안 풀리더라. 감독님에게 ‘뵙고 싶다’고 하고 만나서 잠깐 사이에 설명을 들었는데 논리적으로 쉽지 않았다. 감독님이 뜬금없는 장면에서 시작해 본질적 이미지로 설명했다. 소통이 되고 있지는 않은데 ‘이성적’이 아닌, 가슴으로 오더라. 내가 받아서 나오는 대답도 ‘리딩을 하며 구체화 되는 과정이 생겨 갈 수 있겠다’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겠다’는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책이 다 설명하고 있었는데 굳이 뜬구름 잡는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이걸 이렇게 관객에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작업할 땐 모르는 상황이었다. 기술 시사를 겁나서 못 갔다. 보고 온 친구에게 물었는데 ‘나쁘지 않다’고 했다.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언론시사회 때 봤는데 ‘완성했구나’ 싶었다. 이 작업은 의미가 다른 게, 마냥 ‘예쁘게 봐 달라’고도, ‘막 보라’고 함부로 취급할 수도 없다. 정말 소중한데 전작인 ‘끝까지 간다’의 경우 ‘보든지 말든지, 안 보면 손해’였다. ‘해빙’은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아이다. 어떤 자식이 소중하지 않겠냐만 독특하고 소중하다.”

‘주연’에 대한 부담감도 느낀다는 그는 지난해 ‘사냥’에서 쌍둥이 역할을 맡아 1인 2역을 소화했다. 그는 이와 관련된 댓글을 확인했다며 만회할 기회를 노리고 있음을 밝혔다. ‘아가씨’에서도 ‘남자배우는 거들뿐’이라는 댓글을 확인했다는 그는 “하정우와 정말 신명 나게 찍었는데 거들지 몰랐다”며 웃었다.

“‘사냥’에서 1인 2역을 한 것에 관한 댓글을 봤는데 ‘조진웅 그럴 수 있나. 난 널 믿었는데’라고 하더라고요. 신경 안 쓴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고 다시 보여주면 되니까요. 만회할 테니 기다리세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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