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 이청아 “미연, 아쉬움-충격-측은함 느낀 인물” [인터뷰①]
입력 2017. 03.09. 16:14:29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미연이라는 인물은 처세에 능하다 해야 할까. 결정적 상황에서 미연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요. 그 상황에서 쉬운 선택을 했다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지난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팔판동 모처에서 이청아(34)를 만나 영화 ‘해빙’(감독 이수연, 제작 위더스필름)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변두리 개인병원 간호조무사 미연 역을 맡은 그녀는 영화 속 반전의 순간,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을 연기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이렇게 풀릴지 몰랐다는 점과 승훈의 시점에 관한 게 골격이었다. 영화 전체를 보고 우리 영화의 마지막 신이 그렇게 짠할 줄 몰랐다. 시나리오를 보며 그렇게 불쌍하다고 생각 못 했다. 성근(김대명)이 정노인(신구)의 행동에 놀라는 신이 정말 좋았다. 감독님의 연륜이라면 연륜이다. 의지가 보이는 신이라 생각한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김대명은) 블랙박스에 있는걸 한참 지켜보는 것처럼 연기 같지 않게, 신구 선생님도 악한 것도 동정표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 부자와 관련된 진실이 드러나는 그 장면 하나만으로 그렇게 측은할 수 있는지, 그 전에 오히려 승훈(조진웅)이 불쌍해진다고 생각했는데 블랙박스 장면에서는 순간 승훈도 정노인도 성근도 불쌍하고.”

그녀는 극 중 모든 인물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고. 이는 두 번의 경제 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전락을 중년 남성의 불안과 공포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감독의 의도와 맥락을 같이한다.

“우리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 처럼 불쌍하다. 미연도 그래 봐야 더 나아질게 없다. 여전히 똑같이 이어질 것이지만 승훈은 잘 나가다 정신까지 피폐해진다. 치매 노인을 모시고 사는 성근도 그렇다. 각 위치에서 현대인들에게 (느낄 수 있는) 측은함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감독님이 제작보고회 때 ‘도시도 하나의 캐릭터’라고 했다. 신·구도시가 공존하는 곳에서 일이 안 돼서 내려온 승훈과 그 외의 것들을 보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다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 도시가 한 번 더 생각나더라. 감독님이 (도시를) 왜 또 하나의 캐릭터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미연이란 인물을 연기한 입장에서 이청아는 캐릭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미연이란 인물을 만났을 땐 사실 수가 낮은 것 같기도 했다. ‘왜 저렇게 살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미연이라는 사람에 대한 측은함도 있었다. 어떤 좋은 선생님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부모님에게 큰 관심을 못 받았다고 생각한다. 간호조무사가 명품백을 들고 다닌다. 나는 내가 밑에 있어도 희망이나 꿈이 늘 있는데 감독님이 미연이란 인물에 대해 말할 때 ‘청아 씨는 더 좋은 위치로 갈 수 있다는 꿈이 있죠? 미연은 왜 못그럴까요?‘하고 묻더라. 내 입장에선 1~2천 만원이 미연처럼 주어진다면 그렇게 쓰고 싶지 않다. 더 행복해지는 것에 혹은 자기 계발에 쓸 것 같다. 감독님은 ‘그건 청아 씨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희망 없는 인물일 수 있다’고 했을때 좀 충격을 받았다. 현장에 가서도 그게 어떤 삶이고 그런 마음으로 살면 어떨지 많이 생각했다. 원장선생님과 승훈이 늘 어느 정도 친절함, 가식이 배어 있을 거다. 내 옆 수간호사님은 처음에 깐깐한 줄 알았는데 크게 데미지가 없었다. 그러니 자신보다 밑으로 보면서 실랑이를 하다 어느 정도 긴장감이 풀어졌다.”

실제 그녀도 주위에서 미연과 같은 면을 지닌 인물을 마주한 바 있다고. 실은 우리 주위에서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면을 지닌 미연은 관심 밖의 영역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승훈과의 관계 역시 그녀가 의도한 대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흘러갔다.

“친구가 내 말에 립스틱을 바르면서 대답만 한 적이 있다. ‘내 말을 안 듣느냐. 차라리 잠깐만’이라고 하라고 했다. 무성의함이랄까 자기 관심 이외의 것이 관심 밖인 것이 미연의 성격이라 생각했다. 어색한 사람과 있으면 침묵을 견디는 편이다. 미연 같은 경우엔 그 어색함을 어색하지 않은 것처럼 하려는 게 있다. 궁금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승훈을 그런 불편한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집중했다. 어떻게 보면 의미 없는 대화일 수도 있는데 서로 절대 안 친해 보일 수 있게, 너무 진심을 섞어도 안 되고 어떤 의도가 섞어져도 안 되고 모자라지도 차지도 않게 하려 노력했다. 감독님이 조절을 잘 해주셨다.”

앞서 그녀가 설명한 의도대로 극 중 미연은 승훈에게 다가가려 애쓰는 듯 아닌 듯 알쏭달쏭한 모습을 보인다. 이청아에게 승훈을 향한 미연의 감정에 관해 물었다.

“승훈이 자신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고 심지어 정육식당 2층에 산다는 걸 알고부터인 것 같다. 그전엔 별로 신경을 안 썼다. 잘나가 보일수록 덤벼야 하는 건데 너무 높을 땐 목표로 못 가는 거다. 조금 측은한 마음도 있다. 그 마음이 이해는 안 되지만 머리로 이해했다. 확신을 갖고 연기했는데 할수록 모호했다. 선배들과 연기를 하니 점점 더 미궁으로 빠졌다. 사실 내 역할이, 큰 ‘키(Key)’가 내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줄 몰랐다. 내 증언이 들어가며 확 판세가 뒤집히잖나. 영화에선 내가 느낀 놀라움보다 크더라. 증언하는 장면은 두 가지 버전으로 찍었다. 미연의 무성의한, 시니컬하고 짜증이 조금 있는 증언과 ‘너무 무서웠다’며 피해자인 척 하는 거였다. 감독님이 피해자인 척하는 버전을 썼더라. 적절했던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통해 미연을 만난 그녀는 과거의 친구의 행동을 이해하게 됐다. 한 인물을 연기하며 캐릭터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결과를 얻은 셈이다.

“매번 새 인물을 만나면 싫어하는 모습이 하나씩 사라져요. 미연이 자기는 세상이 아름다운데 사건을 키우잖아요. 악의 없이 과하던 친구에게 ‘너만 왜 즐겁냐?’고 했는데 이번 역할을 하고 나서 사과했어요. 내가 이 역할을 하고 나니 그게 이 사람이 상대가 불편할까 말을 먼저 걸어주고 그런 행동을 했던 걸 몰랐어요. 핍박 아닌 핍박을 했는데 그게 저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하니 달라 보였죠. 이해하다 보면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을 만났을 때 반갑더라고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