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은희 디자이너, 사람과 한복이 어우러지는 한 폭의 산수화 [인터뷰①]
- 입력 2017. 03.09. 17:26:20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어느새 판타지처럼 각인된 한복은 대중과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일상복도 예복도 아닌 모호한 지점에서 헤매고 있다.
'한은희 한복' 디자이너 한은희
‘한복의 대중화’ 슬로건 아래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하고 ‘한복 현대화’ 기치 아래 여러 분야 디자이너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지만, 대중과 벌어진 간극은 좁혀질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한복 대중화 현대화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2009년 결혼 소식을 알리고 배우가 아닌 아내와 엄마로 시간을 보내던 이영애가 2014년 SBS ‘이영애의 만찬’으로 다시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고 2017년 드디어 SBS ‘사임당 빛의 일기’가 방영되면서 그녀 만큼이나 화사하고 기품있는 색감의 곱디고운 한복이 화제가 됐다.
◆ 우리 문화 ‘한복’
이영애가 해외 일정 중에도 늘 챙긴 한복을 만든 ‘한은희 한복’ 오너 디자이너 한은희는 “한복은 우리 문화죠”라는 너무 당연하지만 당연함을 잊고 사는 이들에게 한복의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했다.SBS '사임당 빛의 일기' 이영애
그녀는 “한복은 우리 문화, 우리 문화 한복. 바로 제가 지향하는 바입니다”라며 문화를 이루는 요소로서 한복의 존재 가치를 강조했다.
한은희 디자이너가 만든 한복은 화폭에 담긴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산과 들, 꽃과 나비들의 소소한 사연들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사그라지지 않는 긴 생명력을 갖듯, 한복 역시 한은희의 손을 거쳐 한복을 입는 사람과 한복을 입고 가는 장소, 모든 것이 의미 있는 행적으로 어딘가에 기록되고 각인될 듯 신비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예상치 못한 단아한 선과 신비한 색감을 펼쳐내는 한은희 디자이너는 “사람들이 한복을 불편하다고 하죠. 맞아요. 불편해요. 그런데 저는 한복이 시골 툇마루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삶의 여유라고 생각해요”라며 치열한 삶 가운데 편하게 쉴 수 있는 ‘순간’이라는 추상적이지만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화두를 던졌다.
한복이 편하다고 애써 주장하지 않는 그녀는 자신 역시 때때로 한복이 불편할 때가 있음을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나 “한 번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속바지 속치마 다 갖춰 입고 외출해서 돌아오면 뿌듯해져요. 그런 마음이 한 번쯤은 다 있거든요”라며 한복이 일상이 될 수는 없지만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복장으로서 가치를 강조했다.
가까이하기 쉽지 않지만, 막상 한번 시도하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 한복이 가진 이 같은 장점은 ‘한은희 한복’만의 차별성이기도 하다.
◆ 고결한 선과 색의 미학 ‘한복’
한은희 한복은 결이 고운 선과 풍부한 색감으로 정의할 수 있다.'한은희 한복' 매장
수학을 전공하고 한복에 대한 궁금증으로 의상으로 전공을 바꾼 후 대학원에서 ‘한국의 포백척’ 즉 한국의 자로 석사 논문을 쓰기도 한 한은희 디자이너는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한복 패턴과 치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녀는 “사실 한복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패턴은 똑같고 사람은 다르니까, 같은 패턴으로 사람들을 다 다르게 표현해줘야 하니까, 정말 힘들어요”라며 한복에서 치수를 재서 입는 사람에게 맞는 최적의 패턴을 완성하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지만, 선의 완성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선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속옷이다.
한은희 디자이너는 “한복은 속옷에서 맵시를 결정해요. 속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실루엣이 달라지죠”라며 드라마에서 보이는 한복의 선이 나오기까지 속옷에 대한 수많은 연구와 시도가 있었음을 토로했다.
그녀는 “과거 왕비가 대례복을 입기 위해서 속옷만 7개를 입었다”며 사대부 반가의 역시 속옷을 갖춰 입어야 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처럼 치수를 재고 패턴을 완성하고 속옷을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화룡점정을 찍듯 이러한 모든 노력을 더욱 찬란하게 해주는 색 입히기가 남는다.
특히 색감은 ‘한은희 한복’이 여타 한복과 구분되는 다름의 요소이기도 하다.
한은희 디자이너는 티끌 없이 맑은 화사한 파스텔 톤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채도가 높은 색까지 색을 자유자재로 조합해 화사하면서도 기품 있고, 진중하면서도 어둡지 않은 ‘한은희 한복’만의 색감이 완성된다.
이 모든 색감이 천연염색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녀는 “천연염색으로 색을 내죠. 100% 천연염색을 하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사실 모든 옷을 천연염색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수학자여서 그런가, 100% 말에는 책임감이 느껴져서요.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이영애씨 한복 상당수가 100% 천연염색이지만, 일부 색을 내기 위해 매염제를 사용한 옷도 있습니다. 모든 옷이 100% 천연염색은 아니지만, 매염제를 사용한 옷조차도 천연염색이 밑바탕이죠”라며 미처 몰랐던 한복의 색과 천연염색의 무한한 표현력을 언급했다.
‘한은희 한복’은 인터넷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한은희’ 혹은 ‘한은희 한복’을 인터넷 검색창에 치면 홈페이지는커녕 블로그조차 찾을 수 없다. 간혹 이영애와 함께 찍은 몇 장의 사진만 돌아다닐 뿐 ‘한은희 한복’에 관한 공식적인 홍보채널이 없다.
그렇다고 한은희 디자이너가 세상과 담을 쌓고 있는 기인처럼 여긴다면 큰 오류에 빠지게 된다. 한은희 디자이너는 세상과 가장 근거리를,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에게 한복을 입히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뛰어난 소통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권광일 기자, SBS '사임당 빛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