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은희 디자이너, 한복으로 맺어진 인연 ‘이영애-사임당’ [인터뷰②]
- 입력 2017. 03.09. 17:46:11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한복 디자이너 한은희는 그녀의 레이블인 ‘한은희 한복’의 오너 디자이너임과 동시에 ‘이영애 한복’이라는 키워드로 대중에게 각인된 일명 스타 한복 디자이너다.
'한은희 한복' 디자이너 한은희
디자이너인 본인이 유명인이 되기도 했지만, 스타 마케팅에 공들이지 않았음에도 특유의 선과 색에서 우러나오는 기품으로 셀러브리티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입는 가치’와 ‘소장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이영애 첫 느낌 “참 예쁜 사람”
‘한은희 한복’과 이영애의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기획된 ‘한일, 한복과 기모노의 만남’이라는 패션쇼 메인 모델로 이영애가 결정되면서 첫 만남을 가졌다.
한은희 디자이너는 “당시 패션쇼의 콘셉트가 ‘여미는 옷, 푸는 옷’이었습니다. 처음에 쇼 할 때 이영애 씨가 혼자 책을 보면서 열심히 연습을 하더라고요. ‘참 예쁜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까 서로에게 신뢰감이 생긴 거죠”라며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인연이 시작됐음을 설명했다.
이어 “화보를 촬영할 때 미용실에서 몇 시간을 들여 하고 온 쪽 머리가 콘셉트와 맞지 않았는데 그 자리에서 풀어서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 싶었죠”라며 이영애의 프로 정신에 감복한 사연을 언급했다.
사실 이야기를 풀어내자면 끝도 없을 듯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에피소드는 지난 2월 18일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기원을 위한 ‘K-드라마 페스타 인 평창’에서 열린 ‘사임당 빛의 일기 갈라쇼’ 무대에서였다.
그녀는 “패션쇼 피날레에 무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쉽지 않았거든요. 무대 밑에서 웅크리고 있어야 하고 더욱이 한복은 치마가 폭이 넓어서 자칫 올라오다 걸리게 되면 예기치 않은 사고가 날 수도 있고. 거기다 그때 정말 추웠거든요. 쇼 진행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이영애씨가 못할 거 같다고 안절부절못하기에 제가 “그게 베스트다 싶으면 할걸” 딱 이 말만 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이영애 씨가 옷이 걸리지 않게 하느라 무대 밑에 웅크려서 정말 많이 연습했다고 하더라고요“라며 드라마뿐 아니라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국가 브랜드처럼 된 현재의 ‘이영애’가 있게 된 저력을 짐작하게 했다.
◆ 사임당과의 새 인연 “이영애 응원하는 나만의 방식”
이영애와 맺은 인연은 조선시대 역사에서 위대한 어머니이자 화가로 기록된 사임당으로 이어졌다.
이영애가 ‘사임당 빛의 일기’ 출연을 결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임당 역할을 맡은 박혜수와 이영애의 한복을 전담하게 됐다.
한은희 디자이너에게 사실 ‘사임당 빛의 일기’가 드라마 의상으로 참여한 첫 작품이 아니다. 역사의 오명이자 슬픈 기록으로 남아있는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다룬 KBS2 ‘명성황후’(2001년)와 야망과 욕망으로 물든 파란만장한 장희빈을 그린 KBS2 ‘장희빈’(2002년)에 참여한 이력 있다.
그러나 연상되듯 모두 조선시대를 산 남달랐던 운명의 여인들을 다루고 있지만, 명성황후와 장희빈이 달랐고 2017년 현재 방영되고 있는 사임당 역시 또 다른 선과 색으로 완성됐다.
한은희 디자이너는 “사임당이 오죽헌을 떠나 한양으로 올라오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 입었던 한복이 베이지색 마 저고리였는데. 남들 눈에는 잘 안 띌 수 있지만, 사임당의 반듯함을, 오죽헌을 떠나는 그녀의 심정을 전달하고 싶었거든요”라며 회상하는 모습에서 드라마 의상 작업을 하면서 옷이 아닌 스토리 속에 녹아드는 또 하나의 배역으로 접근하는 그녀만의 신념이 느껴졌다.
이런 느낌은 사실 섣부른 추측이 아니다. 한은희 디자이너는 사임당 속 이영애 한복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았다.
고급스러운 반가의에서 집안이 망해 종이 공방에서 유민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입는 작업복 즉 서민복, 그리고 화가로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달라지는 모습까지 과정 전체가 한은희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사실 서민복에서 좀 고민을 했다고 운을 뗀 그녀는 “무명옷은 손을 대지 말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느낌이 달라질까봐”라며 사임당과 이영애에 대해 그녀가 가진 책임감, 일종의 사명감을 짐작하게 했다.
전체 스토리 안에서 이영애가 등장하는 장면과 감정선을 따라 한복을 만들고 배치하는 한은희 디자이너는 “20회 한복을 만들기 위해서 1회부터 19회까지 한복 전체를 다 보면서 작업을 해요. 색을 보고 연결고리를 찾아 스토리가 잘 이어지게 하는 거죠”라며 주섬주섬 그녀가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 수첩에는 이영애가 나오는 장면 전체가 그녀의 손으로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놓치려 하지 않는 치밀함. 그 노력이 ‘사임당 빛의 일기’의 타이틀롤인 사임당 이영애에게 그대로 투영됐다.
한은희 디자이너는 “이영애 씨가 연기를 하면서 조금은 수월해질 수 있게 받쳐주고 싶었습니다. 이게 내가 이영애 씨를 응원하는 방식이고, 정말 열심히 하는 이영애 씨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응원의 메시지죠”라며 두 사람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으로 단단하게 얽힌 인연의 끈을 짐작하게 했다.
한은희 디자이너는 우아한 전통 복식으로만 한복을 기억하는 대중에게 한복이 가진 소박함에서 수려함까지, 한과 흥 그 사이에 놓은 수많은 정서를 각기 다른 선과 색으로 풀어내고, 입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뿐 아니라 그들과 공감과 소통을 이어간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권광일 기자, SBS '사임당 빛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