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W 2017 FW-OFF] 민주킴-웨어그레이, 문화를 입은 패션 여행기
- 입력 2017. 04.07. 18:07:48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패션은 예술과 산업 중간 영역에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예술과 근거리를 유지하되 소비산업으로서 상업성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
민주킴, 웨어 그레이
‘2017 FW 헤라서울패션위크’가 열리는 미래 도시를 연상하게 하는 자하 하디드의 작품, 동대문 소재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국내는 물관 해외에서도 한국 패션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부상했다. 그러나 수십 명의 디자이너 컬렉션을 한데 모아 놓으면서 패션의 필요충분 요건인 ‘개성’과 ‘정체성’을 흐트러뜨리는 역효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디자이너 김민주 ‘민주킴(MINJUKIM)’과 디자이너 임선옥 박소현 감선주 박미선 이재림이 뜻을 모은 ‘웨어 그레이(WEAR GREY)’는 을지로와 종로, 패션과는 거리를 둔 곳에서 전시를 진행했음에도 숨 막히게 돌아가는 서울패션위크 6일의 여정 가운데 쉬어가는 ‘여유’를 선사했다.
◆ ‘민주킴’, 악몽 속에서 빠져 들어간 ‘시공간의 이동’
민주킴은 지난 3월 30일 영화 ‘암살’ ‘밀정’에나 나올법한 일제 강점기 가옥을 연상하게 하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을지로 소재 ‘커피 한약방’에서 2017 FW 컬렉션을 전시했다.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보이는 카페 한약방은 타임슬립 터널로 빠져들어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간판이 있는 건물 맞은편으로 난 층계를 올라가면 3, 40년대쯤으로 보이는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에 민주킴의 옷들이 오랜 세월 그 장소에서 같이 세월을 지냈을 법한 모습으로 전시돼 숨을 멎게 했다.
누빔 소재로 만든 거대한 오브제 같은 민주킴의 옷들은 한국적인 듯 극히 이국적인 묘한 이중성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해외 문물이 물밀 듯 유입된 시대를 연상하게 해 공간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민주킴은 벨기에 앤트워프왕립예술학교에서 공부한 이력과 유수한 유럽 어워즈 수상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옷들이 의외로 ‘한국적’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디자이너 김민주는 “옷을 한국적이라고 평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런 의도로 접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마 제 삶에 녹아든 것이겠죠”라며 명쾌한 답변을 던졌다.
그러나 그녀의 옷들을 ‘한국적’이라는 범주에 묶는 순간 오류에 빠진다. 오브제에 가까운 스케일이 큰 실루엣과 속내를 궁금하게 하는 의미심장한 디테일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오브제처럼 독특한 셰이프와 추상화를 보는 듯한 패턴의 전개에 대해 그녀는 “개인적으로 악몽을 자주 꾸는데 어느 순간 이상하다 싶을 정도의 이미지를 보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스토리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라며 “사실 누빔 소재는 이불을 생각하고 연상한 것입니다. 포근한 이불 같지만 그래픽 같은 것들은 무서운 악몽 속에서 나오는 이미지들이죠”라고 이번 컬렉션에 담긴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민주킴 전시가 열리는 을지로 뒷골목 커피 한약방에는 힘들게 물어물어 찾아온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서울패션위크의 초대를 받고 온 바이어와 프레스들이 그녀와의 인연 혹은 ‘2013 H&M 디자인 어워즈’ 우승자이자 ‘LVMH 프라이즈’의 ‘2014 영 패션 디자이너’ 30인 중 한명으로 선정된 이력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 웨어 그레이, 작품이 되고 쉼터가 된 ‘미니멀리즘’
웨어 그레이는 3월 29일 패션쇼와 함께 29, 30일 양일간 갤러리들이 밀집한 종로구 통의동 소재 아름지기에서 전시를 열었다.
파츠파츠(PARTs PARTs) 임선옥을 중심으로 포스트 디셈버(POST DECEMBER) 박소현, 더캄(TheKam) 감선주, 기어3(GEAR3) 박미선, 12일리(12 ILI) 이재림 다섯 명이 모인 디자이너 그룹 ‘웨어 그레이’는 ‘그레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이 설명될 정도로 가볍지만 진중하게 풀어낸 옷 하나하나를 작품처럼 갤러리에 소중하게 담아냈다.
그룹 이름이 암시하듯 컬렉션의 베이스를 이룬 그레이는 옷뿐 아니라 그들이 지향하는 “KEEP EARTH. WEAR GREY. LESS LAUNDRY”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패션과는 뗄 수 없는 환경문제에서 출발한 웨어 그레이는 속에 담긴 그레이의 능동적인 정의로 위 세 가지 메시지를 설정했다.
섞인 색, 즉 혼색인 그레이는 다양한 문화의 교류, 집단 지성의 공유를 의미한다는 해석과 함께 흑백이라는 극단을 벗어난 폭넓음으로 의미를 확장했다. 따라서 이원적 세계관을 부정하고, 패션 디자이너가 새로움과 창의적인 주체로 바로서야 한다는 의도를 담았다.
아름지기와 그 공간을 채운 웨어 그레이 모두 극도로 제한된 미니멀로 공통분모를 이뤘다. 2017년 한국 서울의 미니멀리즘을 대변하는 듯한 이 전시는 디자이너는 물론 해외 프레스와 바이어들에게 ‘쉼’의 의미를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민주킴, 웨어그레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