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INU’ 이신우+윤종규, 한국 디자이너 레이블의 역사를 쓰다 [SFW OFF 인터뷰]
- 입력 2017. 04.10. 17:48:38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누구나가 가질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은 감성은 창의적 작업에서 필요충분 요건이지만, 패션은 감성 하나만으로 영원이 약속되는 파라다이스는 아니다.
디자이너 이신우 윤종규
패션 디자이너들은 ‘일회성 유행’에 의해 명운이 좌우되고 하루살이보다 못한 시간 안에 승부를 내야 하는 한시성 논리가 더 힘있게 작용되는 패션 생태계에서 매 순간 절체절명의 상황과 맞닥뜨려야 한다. 소위 천재적 감성을 가지고 있다면 한 고비는 조금은 쉽게 넘길 수 있지만, 거친 패션 생태계에서 ‘창의적’ 감성을 상품성 있게 녹여내야 하는 최종 결과까지가 디자이너의 임무다.
누군가는 수려한 고구려 문양으로, 누군가는 심플한 옷으로 기억하는, 이신우는 이름 하나에 수많은 이미지가 각인돼있다. 그러나 ‘신우’로 다시 무대에 선 이신우는 후배와의 작업을 당연하듯 해낼 정도로 시대를 가로지르는 ‘감성’과 ‘소통’을 갖춘 이 시대의 진정한 디자이너 면모를 보여줬다.
#1. 이신우+윤종규, 오랜 인연 같은 ‘만남’
여성복 ‘신우’만 자기 몫으로 남긴 채 여성복 ‘JOHN & 3:21’ 운영하는 오너 디자이너 윤종규에게 남성복 ‘신우 옴므’를 맡긴 이신우는 해외시장에서 가능할 법한 디자이너와 디자이너의 컬래버레이션으로 그녀의 타고난 승부사 기질을 다시 한 번 발휘했다.
여성복만 해온 윤종규를 남성복 파트너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고 패턴까지 할 수 있으면 된 거죠. 그런 사람 없어요”라며 유명세를 중시하는 요즘 패션가가가 꼭 되새겨야 할 현답을 내놨다.
디자이너 윤종규의 답은 묵직했다. “(이신우) 이름에 누가 되면 안 되니까”라며 말을 연 그는 “해외처럼 영원히 남는 디자이너 레이블이 우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브랜드를 만든 디자이너가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1 세대가 지나도 그 디자이너의 ‘오리지널리티’를 후배 디자이너가 계승해 나가는 그런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죠. 제가 (이신우) 선생님과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 영광이면서 동시에 후배 디자이너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지고 이런 것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며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나 이런 그의 진정성 있는 바람으로 모든 것을 해내기에는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윤종규 디자이너는 이신우 디자이너와 함께 하는 작업에 대해 “좋았죠. 완전히”라며 유쾌하게 답했으나 이내 “선생님 같은 분의 이름을 걸고 한다는 게 힘들었죠. 부담이라는 거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보름 동안 저녁만 금식하면서 작업을 했습니다”라며 자신과 사투를 벌였던 시간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이런 시간이 고통이 아닌 ‘행복’으로 그의 마음에 각인된 이유는 이신우 디자이너가 보여준 ‘디자이너 정신’ 때문이다.
이신우 디자이너는 “내가 이걸 쉽게 만들면 안 되는 데 라고 늘 생각하죠. 쉽게 멋있는 생각이 많이 나면 스스로 경계를 많이 해요. 치기로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겉멋이 들지 않으려고 노력하죠”라며 의외의 답변을 했다.
오랜 세월을 같이해 이제는 디자인 작업이 일상처럼 됐을 법한 디자이너에게서 들을 거라 생각지도 못한 ‘멋있는 생각과의 경계 긋기’는 디자이너 이신우가 오랜 세월이 흘러 그간 패션 소비층의 세대가 바뀌었음에도 ‘스타일리시 코드’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2. 이신우+윤종규, 모든 것을 해내는 ‘예술가’
이번 컬렉션에서 그녀가 보여준 라인은 세월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날선 감각과 세월 속에서 농익은 감성의 조율이 제대로 빛을 발했다.
이신우 디자이너는 “멋있는 거, 이거다 싶은 거는 한 번에 안하고 다음에 꺼내고, 또 꺼내고 하면서 여러 번 되짚어 봅니다. 마치 책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여러 번 읽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라며 ‘생각의 숙성’이 디자인 작업에서 꼭 필요한 단계임을 강조했다.
이런 그녀의 담금질은 서양화를 전공한 그녀의 이력과도 관련된다. 직선과 곡선의 자유로운 혼용 작업으로 완성된 ‘신우’의 라인은 예술가적 기질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번 작업에서는 디자인은 물론 패턴까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완성해 다른 어느 때보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그녀의 장인 정신은 같은 공간에서 작업한 윤종규에게도 그대로 전달됐다. 그 역시 한국미술협회회원으로 정기적으로 전시를 열기도 하는 그는 자신 역시 후배들에게 그림을 그릴 것을 권유한다며 디자인에 대해 같은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 같은 디자인에 대한 공감대가 녹록치 않은 작업과정이 ‘행복’으로 기억될 수 있게 했다. 디자이너 이신우와 윤종규 모두 별다른 의견 조율 없이 자연스럽게 교집합이 이뤄졌다고 밝힌 근간에는 이런 그림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조예가 있었다.
윤종규 디자이너는 “작업하면서 예쁘게 딱 나왔거든요. ‘예쁘게 나왔지만 다시 봐야 돼’ 계속 그러시더라고요. ‘쉽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쉽게 했던 게 평생 후회를 남을 수 있으니까’ 라는 말이 정말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라며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이처럼 그의 표정 하나하나는 패턴에서 디자인까지 모든 과정을 오롯이 스스로 해내면서 예술을 사랑하는 기질까지 같은 감성이 ‘통’하는 디자이너들의 조합이 결과물 뿐 아니라 과정까지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줬다.
#3. 이신우+윤종규, 레이블로 기억되는 ‘디자이너 삶’
여자 혹은 노장이 아닌 디자이너 이신우로 기억되는 그녀는 지난 몇 년간 디자인 작업을 하지 않았던 시간에 대해 “가장 편했던 순간”이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디자이너를 해야 되는 사람인가보다 다시 한 번 느꼈다”며 다시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털어놨다.
25년의 경력의 윤종규는 자신의 브랜드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는 2년차 오너 디자이너지만, 자신에게 첫 작업인 남성복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그는 “‘신우 옴므’를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너무 잘 알기에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었죠”라고 첫 순간 움찔했음을 토로했다. 그러나 “어깨너머로 선생님 작업을 보면서 저렇게 해야 하는 구나. 남성복은 처음이지만, ‘아’ 하면서 깨닫는 과정이 흥미로웠죠”라며 디자이너로서 대 선배에게 강한 에너지를 충전 받았음을 고백했다.
노장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이신우의 식지 않는 디자이너로서 생동감 넘치는 열정, 중진의 나이지만 아직도 디자이너로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길다고 말하는 윤종규의 열린 감성이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남긴 말은 따뜻하고도 의미심장했다.
이신우 디자이너는 “지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칠까봐, 지치면 포기할까봐. 포기 하지 말고 가라고, 지치지 말라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라며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애정 어린 말을 남겼다.
윤종규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로 제가 가진 행운은 ‘하나부터 열 가지를 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저 역시 후배들에게 ‘빨리 유명해지기보다 실력을 갖추고 차근차근 올라가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라며 선배로서 할 수 있는 진심을 담은 조언을 했다.
이신우와 윤종규는 2018 SS 시즌, 두 번째 컬래버레이션 작업 결과물을 내놓을 예정이다. 아직 남은 생이 길기에 디자이너로서 삶 역시도 아직 현재진행형임을 밝히는 각기 다른 세대의 두 디자이너가 현 시점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져 ‘신우’라는 레이블로 쏟아내는 결과물은 흥미진진하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권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