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신우, 76년 파리로 뛰어든 K패션 선구자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 [인터뷰]
- 입력 2017. 04.12. 10:46:55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한류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면서 패션 역시 한류 코드의 하나로 아시아는 물론 유럽 및 미주 지역에서도 입지가 크게 상승했다.
디자이너 이신우
그럼에도 한국 패션 시장에서 오너 디자이너들의 입지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디자이너 레이블은 K팝과 함께 성장 잠재력이 큰 산업부문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시끌벅적한 유명세와 달리 해외는커녕 국내에서조차 생존 위협을 받을 정도로 위태위태하기만 하다.
직매입보다는 특정매입, 개성보다는 매 시즌 변하는 트렌드 영향을 많이 받는 소비자 특성상 규모를 갖춘 어패럴에 비해 집약된 콘셉트 아래 움직이는 오너 디자이너 레이블이 버티기에는 역부족인 구조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디자이너의 ‘오리지널리티’에 높은 점수를 주는 해외시장은 모든 오너 디자이너들에게는 이상향과도 같다.
‘2017 FW 헤라서울패션위크’ 마지막 날인 지난 4월 1일 오프쇼에서 후배 디자이너 윤종규와 '신우'로 참가해 복귀 무대를 가진 디자이너 이신우는 모든 디자이너들의 바람이지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해외시장에 무려 41년 전인 1976년 첫발 내딛뎠다.
패션 디자이너 1세대인 이신우는 당시 국내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명성을 자랑했다. 실크업체와 공동 작업으로 해외시장에 제품을 수출하는 등 해외에서 한국패션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한국 코트라 주관으로 구성된 76년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한국관에 국내 실크업체와 공동으로 실크 제품을 출품했다.
그녀는 당시 상황에 대해 예상치 못했던 뒷이야기를 풀어냈다. “층계에서 진짜 펑펑 울었었죠. 울면서 깨달았어요. 더 잘해야겠구나”라고 운을 뗀 이신우는 “한국관은 4층이었는데 우리 제품이 제일 멋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전시장을 돌아봤죠. 그런데 한 층 한 층 내려오면서 마음이 점점 이상해졌어요. 그러다 결국 2층을 돌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층계에서 한참 울었죠. 너무 근사한 게 많았어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이 다 있었죠”라며 41년이 지나 이제는 덤덤해진 마음으로 풀어냈다.
이신우는 당시는 디자이너로서 넘기 어려운 큰 장벽을 맞닥뜨린 시기로 기억돼있었다. 늘 새로운 시도를 하고 매번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기에 더 큰 충격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신우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잘해야겠구나’라는 다짐과 함께 7년 후인 83년 뉴욕으로 가 쇼룸을 운영했다.
당시 이세이 미야키, 요지 야마모토, 꼼데가르송이 막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로, 뉴욕 7번가에 쇼룸의 열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그녀는 당시 일본의 전략적 디자이너 육성을 보고 놀랐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던 이신우는 “저는 한군데 머물러 있는 것은 생각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나가야죠. 사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욕심이 많고, 욕심이 없어지지 않잖아요. 그런 거를 넘어서지 못할까 봐 열심히 일했죠”라며 자신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싶다는 현재 진형형의 바람을 드러냈다.
이후에도 해외를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93년 프랑스 파리 프로테포르테에서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건 패션쇼를 열며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머천다이징 즉 상품기획을 전담하는 ‘MD’ 부서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 역시 이신우다. 90년대 초 ‘영우’ ‘쏘시에’를 론칭하면서 ‘오리지널리’를 비롯한 세 브랜드에 각각 MD를 배치했다. 천생 디자이너로 보이는 그녀가 그런 해안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는지 궁금할 법하지만 “그냥 보이니까”라는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해줬다.
“글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까, 보이니까. 이걸 하면 된다 하는 게 보여요”라며 “보이지 않아요?”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예민해서 그런가 봐요”라며 특유의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예쁜 미소를 띠었다.
오직 디자인 하나에만 열정적으로 몰두하기에 가능했을 법한 그녀는 디자인 복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과거 기억을 끄집어냈다.
“6개월 정도 시도를 해봤어요. 소위 시장에서 잘 나간다는 디자인을 만들어봤죠. 쉽게 해볼까하는 생각에 해본 처음 시도였는데 결국 그게 마지막이 됐죠. 한 개도 안 팔리더라고요. 어렵게 만든 것은 팔리는데 쉽게 한 것은 팔리지 않더라고요”라며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던 그녀의 말이 정말이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신우는 디자인을 위해 오로지 옷만 보고 달려가지 않는다. 그녀가 뉴욕에서 쇼룸을 하던 힘들었던 시절 위로가 된 준 것은 한 여자 시인이 출간한 ‘맨해튼’이라는 시집에 실린 ‘난 하늘을 머리에 이고 뒤뚱댄다’라는 글귀였다.
그녀는 “시 한 편을 갖고 1, 2년을 버텨요, 그런 게 좋아요. 시 하나를 발견하면 좋은 음식으로 생각하고 지내죠”라며 자신이 전공한 그림, 좋아하는 시, 존경하는 작가의 소설, 이 모든 것이 디자인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자신을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고 말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권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