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한당’, 임시완과 느와르의 ‘부조화’가 이룬 칸行 [씨네리뷰]
- 입력 2017. 05.04. 16:43:16
-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타이밍(Timing)에 의해 명운이 좌우되는 것은 비단 사랑뿐 아니다. 남녀의 사랑뿐 아니라 남자와 남자의 우정 혹은 사랑의 미묘한 감정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은 두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누가 봐도 느와르의 형식을 띄고 있는 ‘불한당’은 설경구와 임시완의 뜻밖의 멜로로 관객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교도소에서 만난 재호(설경구)와 현수(임시완)가 함께 불한당이 돼 조직을 제패하는 과정을 담은 ‘불한당’은 여느 느와르 영화와 다를 것 없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해 차별화를 뒀다. 무거운 분위기와 잔인함을 줄인 대신 예상외의 웃음코드와 휴머니즘을 넣은 전략은 느와르에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 관객들의 취향까지 제대로 저격했다.
‘불한당’은 ‘언더커버’ 이야기가 주는 긴장감을 과감히 생략했다. 대개 ‘언더커버’ 이야기를 그리는 느와르 영화들은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까지 긴장감이 극을 이끌어가지만, ‘불한당’에서는 이미 극 초반부터 인물들의 정체가 공개된다. 이어 다른 목표를 가진 인물들이 서로 감정을 쌓아가고 그 감정이 다시 파괴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긴장감이 형성된다. 매번 엇갈린 타이밍으로 의심을 키워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별다른 반전 없이도 두 시간의 러닝타임을 충분히 이끌어간다.
이처럼 영화는 재호와 현수의 멜로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조명하고 있다. 이에 주연 배우인 설경구와 임시완의 연기는 극의 몰입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터. 물론 설경구의 연기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아이돌 출신인데다 여리고 순수한 이미지가 지배적인 임시완에게 ‘불한당’은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임시완은 설경구, 김희원, 이경영 등 느와르에 적합한 마스크의 배우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였다. 그는 선배들의 선 굵은 연기에 자연스레 녹아들며 현수가 지닌 사연과 복잡한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김희원의 도발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맞서는 패기와 혼자 남겨진 두려움에 오열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 임시완은 ‘불한당’만의 유려한 느와르 형성에 일조했다.
‘불한당’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만화적 요소가 가미된 독특한 영상미다. 지난 2012년 ‘나의 PS 파트너’를 통해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보여준 변성현 감독은 ‘불한당’에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오롯이 담아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제3의 공간인듯한 느낌을 준다. 극 초반에 등장하는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들이 게임을 하고 설경구가 식당에서 술판을 벌이는 등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는 현실에 존재하는 교도소의 개념과는 완전히 어긋난다. 또 과거 설경구가 이용하던 아지트와 전혜진이 임시완을 만나던 장소, 러시아 클럽 등 대부분의 공간들이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모습으로 구현됐다. 변성현 감독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들로 작품 내에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했으며 관객들이 인물들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독특한 장면 전환과 실험적인 촬영 기법 등 한 편의 만화영화를 보는듯한 구성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다소 경박한 느낌까지 들었던 설경구 특유의 웃음소리와 액션 신에서의 ‘이소룡 애드리브’는 ‘불한당’에 발랄함을 더했다.
하지만 주요 인물들의 캐릭 표현에 있어서는 아쉬움도 남는다. ‘불한당’의 조연진은 김희원, 전혜진, 이경영, 김성오 등 웬만한 주연배우들 못지않은 남다른 존재감의 배우들로 구성돼있다. 하지만 영화는 설경구와 임시완의 관계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조연배우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극 초반 ‘굴러들어온 돌’ 임시완과 첨예한 갈등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 김희원은 임시완의 위협 한 번에 주저앉고 마는 유약한 인물로 그려졌으며 코믹 요소를 담당하는 역할에 그쳤다.
유일한 여성 캐릭터이자 오세안무역의 주적으로 극 초반 긴장감을 형성했던 전혜진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떨어졌고 결국 남자 캐릭터들에 비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한당’은 기존의 한국 느와르 영화에 없던 새로운 시도로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되는 쾌거를 거뒀다. 캐스팅부터 스토리, 촬영 기법까지 하나하나 감독의 도전정신이 들어가지 않은 부분이 없는 만큼 ‘불한당’은 한국 느와르 영화사에 독특한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오는 18일 개봉. 러닝타임 120분. 청소년 관람불가.
[김다운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