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군’ 이정재, 대한민국 40대 배우가 지닌 무게 [인터뷰]
입력 2017. 05.24. 14:17:09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일에는 계속 욕심이 생겨요. 동료 배우들이 열심히 일하는 거 보면 나도 더 열심히 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죠”

지난 1993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해 ‘모래시계’로 얼굴을 알린 뒤 영화 ‘신세계’ ‘관상’ ‘암살’ 등 수많은 작품을 거쳐 온 배우 이정재가 이번에는 ‘대립군’의 토우로 돌아왔다. 여기에 차기작 ‘신과 함께’와 ‘도청’까지 24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진정 ‘소처럼 연기만 하는’ 배우였다.

지난 23일 서울시 중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정재가 영화 ‘대립군’ 라운드 인터뷰를 위해 시크뉴스와 만났다. ‘대립군’은 임진왜란 당시 파천한 선조를 대신해 분조를 이끌게 된 광해와,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이정재는 대립군의 대장 토우 역을 맡았다.

수많은 작품을 찍고 대중들에게 보여 왔지만 이번 ‘대립군’은 이정재에게 유난히 긴장되는 작품이었다. 지난 22일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 처음 완성된 영화를 본 그는 손발이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고 전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도 모르게 자꾸 긴장이 되더라. 기자간담회 때 앉아있는데도 손이 막 떨렸다. 내가 지금 이게 몇 개짼데 갑자기 왜 이러지 싶더라. ‘인천상륙작전’ 때 그렇게 욕을 얻어먹었을 때도 안 떨었다. 사실 기대를 많이 하면 떨 수도 있다. 제가 영화를 작업하는 그 순간까지는 기대를 하지만 작업에서 손을 뗀 순간부터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때부터는 최대한 기대를 버리려고 노력하는데 어제는 유독 많이 떨렸다”

그동안 극장가에는 ‘광해’ ‘명량’ 등 역사 속에서 진정한 리더를 찾는 이야기의 영화들이 자주 등장해왔다. 하지만 ‘대립군’은 최근 최순실 게이트로 험난한 시국을 겪고, 새 대통령을 뽑은 현 대한민국의 상황과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진다.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던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영화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저희가 대선이 이렇게 빨리 될 줄 몰라서 영화 개봉을 날짜를 두고 회의를 많이 했다. 결국 개봉일을 많이 당겼다. 그래서 후반작업을 충분히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만든 사람들 입장에서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너무 전면에 부각돼있으면 좀 덜 세련된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조금 안으로 감추면서 은은하게 관객 분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정치적 메시지가 다분한 영화라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립군’을 선택한 이유는 영화가 말하는 리더상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아마 정치적 성향 중에 좌, 우 색깔론 내용이 강했다면 좀 더 고민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대립군’은 리더에 대한 이야기라서 선택을 하게 된 것도 있다. 언론에서 자꾸 ‘리더의 불통’ 이런 게 많이 기사화되고 그러다보니 이런 영화가 기획된 것 같은데 어느 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리더는 무엇이고, 리더는 누가 만드느냐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다”


이정재는 지난 2013년 영화 ‘신세계’ 이후 유독 시대극 영화에 출연이 잦았다. 그동안 ‘빅매치’를 제외하고는 ‘관상’ ‘암살’ ‘인천상륙작전’ 등이 모두 역사 속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영화이며 ‘대립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처럼 시대극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는 이유는 시대극만이 관객에게 전할 수 있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었다.

“제 생각도 관객 분들 생각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실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나 인물이 주는 힘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그런 시나리오를 보면 더 눈이 가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작품 속 상황과 캐릭터는 모두 다르더라도, 같은 시대극을 연기한다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정재가 ‘관상’의 수양대군을 연기하면서 보였던 특유의 걸걸하면서도 낮은 목소리는 ‘대립군’의 토우에게서도 종종 나타난다. 그는 이런 한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공감했다.

“사극 중에서도 수양대군은 상대방을 제압하고 위협감을 줄 수 있는 톤이었다면 지금은 사람들을 인솔해야하는 그런 인물의 톤을 냈다. 수양대군과 토우를 많이 다르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건 저 혼자만 아는 예민함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그냥 현대극과 사극으로만 구분을 지어서 보시는 분들에게는 같은 톤일 수도 있다. 나름 최대한 다르게 해보려고 노력했다”

‘대립군’은 광해가 진정한 군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며 인간의 두려움도 함께 다룬다. 동료를 잃는 두려움, 아버지에게 버림 받는 두려움 등 극 중 인물들이 각자의 두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며 성장하듯 이정재 역시 ‘대립군’이라는 두려움을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이겨냈다.

“영화에서 ‘두려워도 견뎌 내야한다’는 대사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저도 역시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특히 이런 토우 같은 역할을 할 때는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이 된다. 좀 더 남성적으로 생기고 선이 굵은 배우가 하면 훨씬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는 캐릭터라서 이걸 선택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연기자로서 욕심도 있고 새로운 걸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에서 시작했다. 두려워도 견뎌 내야 되는 거다”

최근까지 이정재는 범죄조직에 잠입한 경찰, 친일파, 해군 첩보부대 대위 등 남성성이 강하고 색깔이 짙은 캐릭터를 맡아왔다. 캐릭터가 강할수록 관객에게 남는 인상은 깊지만 그만큼 배우가 연기에 들여야 하는 힘은 배가 된다. 24년차 베테랑 배우인 이정재에게도 여전히 연기는 어렵고 힘든 것 투성이었다.

“아무래도 선 굵은 연기는 역할 자체가 에너지를 만이 쏟아 부어야 되는 게 있다. 이야기의 큰 축을 흔드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야기상에서도 그렇고 다른 캐릭터들에게도 압박감을 주는 연기를 해야 되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또 그렇다고 해서 ‘나 무섭지? 나 힘 센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보여주면 어색해서 연기하기가 쉽지는 않다”

특히 데뷔 초까지만 해도 살인 미소를 날리는 부드러운 역할을 많이 맡았던 그이기에 이러한 이미지 변화는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그 역시 대중들 못지않게 로맨스 연기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로맨틱한 연기도 해보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다. 요즘엔 그런 역할을 많이 못했으니까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찾고는 있다.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그런 류의 영화들이 요즘 많이 없다. 그게 좀 아쉽다”


이처럼 급격한 이미지 변화를 겪는 배우는 이정재 뿐만이 아니다. 그의 절친이자 아티스트 컴퍼니 공동대표인 정우성 역시 최근 영화 ‘아수라’ ‘더킹’ 등에 출연하며 로맨틱한 이미지를 벗어내고 있다. 이는 개인으로서의 이미지 변신이 될 수도 있지만 선배 배우가 영화계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당연한 현실이기도 했다.

“저희가 40대 중반 배우인데. 저희 나이 대 캐릭터들이 사회적으로 보면 소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의 중심이다. 그러다보니 시나리오를 쓰시는 분들도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놓고 선하고 의로운 주인공은 나이를 조금 낮게 구조를 짜신다. 저희가 그런 안타고니스트 역할을 많이 하다보면 혹여나 이미지가 많이 깎이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저희도 젊었을 때 선하고 의로운 역할을 많이 했고 이제는 영화상에서 중요한 안타고니스트 역할을 할 나이가 됐으나 그걸 피하면 안 된다”

어느덧 브라운관보다는 스크린에서 얼굴을 비추고, 독특하면서도 강한 캐릭터들만 연기하다보니 이정재는 대중과 거리가 먼 배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만난 이정재는 생각보다 가까우면서도 친근한 매력이 돋보이는 배우였다. 그는 끝으로 대중에게 가까워지는 것 또한 배우로서 해내야 할 또 다른 과제라고 밝혔다.

“어떻게 보면 제가 근래에 했던 작품들이 일반적인 캐릭터가 아니어서 멀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맞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조금 더 내 주변에 있는 듯한 캐릭터를 연기해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 저도 열심히 찾고 있다”

‘대립군’은 오는 31일 개봉한다. 러닝 타임 130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다운 기자 news@fahsionmk.co.kr /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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