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 이하늬, ‘예인’ 장녹수 “내가 가진 모든 것 쏟아내서 연기” [인터뷰]
입력 2017. 05.29. 13:05:26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역적’은 연기적으로도 그렇고 많은 부분에서 저에게 또 다른 지평을 열어준 작품이에요. 선물 같은 신들이 많이 남아서 너무 감사하죠”

그동안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타이틀과 화려한 외모로 기억돼왔던 배우 이하늬는 ‘역적’을 통해 비로소 연기력으로 인정받았다. 많은 이들의 편견과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도 묵묵히 작품 활동을 해왔던 그녀는 오랜 기다림 끝에 ‘인생 캐릭터’를 만나 꽃을 피웠다.

지난 25일 서울시 중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MBC 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 라운드 인터뷰에서 이하늬가 시크뉴스와 만났다.

이하늬는 ‘역적’에서 연산의 후궁인 장녹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역적’은 작품 자체도 높은 시청률과 함께 ‘웰메이드 드라마’로 손꼽히며 호평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배우 이하늬를 다시 보게 한 작품이기도 했다. 그녀는 안정적인 연기력과 감정 표현은 물론 승무, 장구춤 등 난이도 높은 한국무용까지 선보이며 그동안 드라마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예인으로서 장녹수를 그려냈다.

“이 작품을 하면서 장녹수가 가진 예인의 모습을 정말 잘 표현해내고 싶었다. 예전에 다른 작품에서 누가 가야금을 거꾸로 놓고 연주하기도 하고 그런걸 보면 좀 아쉽고 잘 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저한테 기회가 와서 정말 사력을 다 해서 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국악에 몸을 담았었기도 했고 정말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촬영 몇 달 전부터 작가님과 회의를 정말 많이 했었다”

특히 장녹수가 연산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선보인 승무 춤은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볼 만큼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우연치 않게 1~2년 전부터 한국 무용에 관심이 생겨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하늬는 국악을 전공한 자신의 특기를 살려 한국 드라마 최초로 승무 신이라는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연산이 예인으로서 녹수를 알아보는 결정적 계기는 춤인 것 같다. 춤을 작가님이 지정해주지 않으시고 어떤 걸 하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연산이 예인 녹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깊은 정서가 베어있는 것이 뭘까 고민을 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승무였다. 나중에 영화를 하거나 내가 공연을 만들게 되면 그때 써야지 했던 것들을 많이 풀어냈는데 너무 잘 찍어주셔서 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장면이 나온 것 같다. 국악이나 한국무용을 오랫동안 업으로 하신 분들한테 부끄럽지 않고 제가 그들한테 줄 수 있는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잘 봤다고 말씀을 많이들 해주셨다”


빼어난 미모로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간 장녹수는 역사 속에서 그리 좋게 기록된 인물은 아니다. ‘희대의 요부’라는 수식어답게 그간 많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장녹수는 여우같은 여성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이하늬는 장녹수의 보편적인 이미지에 집중하지 않고 인간 장녹수를 진심으로 이해하며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장녹수를 희대의 요부라고 하는데 연산이 재해석 할 만 한 가치가 있고 여지가 있듯이 장녹수도 마찬가지다. 극 중 흥청이 장녹수의 치맛단을 밟아서 난리가 나는 장면이 있다. 이 상황에서 왜 녹수가 그럴 수밖에 없었나에 대해서 찾아야만 했다. 저도 배우가 옷을 입었을 때 그게 성스러운 복장이라고 생각하듯이 녹수에게 치맛단을 밟혀서 넘어지고 옷이 헝클어지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옳지 않은 일인거다. 너의 복장과 나의 복장은 신의 영역이라는 걸 얘기해줄만한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흥청의 무리에서 기강을 잡는 부분도 있었을 거고 그런 여러 가지 단서들을 가지고 재해석 하는 게 재밌었다”

그런 노력은 그녀의 연기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촬영기간 동안 실제로 장녹수의 삶을 살며 연기에 임했던 그녀는 결말에서 연산을 떠나보내고 죽음을 맞이하며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고 전했다.

“마지막에 연산이랑 같이 마지막 연희를 하고 끌려 나가는 신이 있었는데 그때 연산에게 ‘나도 임금의 여자답게 죽겠다’는 말을 하고 마지막 절을 한다. 대본에는 ‘절을 한 후 어깨가 흔들리는 녹수’라고 써있었는데 실제로 절을 하면서 내려가니까 슬픔이 허겁지겁 몰려오면서 주체가 안됐다. 그렇게 대성통곡을 세 번 정도 했다. 그래서 그날 메이크업을 지우는데 얼굴에 실핏줄이 다 터져있고 그 정도로 힘들게 그 신을 찍었다. 감정도 힘들고 극한 상황이었지만 배우로서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내서 연기한다는 것에 대한 쾌감을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 같다”

이처럼 ‘역적’은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보여졌던 장녹수의 인간적인 부분을 조명한 점에서도 의미가 깊은 작품이었다. 이하늬 역시 자신의 연기를 통해 장녹수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던 데에 만족감을 느꼈다.

“다행히도 시청자들이 ‘역적’의 장녹수를 편견 없이 봐주신 것 같아 감사하다. 여자가 관기의 신분으로 조선시대를 살아가는 건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과 출신에 대한 울분이 왜 없었겠나. 이걸 암묵적으로 용인하면서 사느냐 아니면 새로운 세상에 한 번쯤 도전해보면서 살 것이냐 그런 질문이 녹수에게 있었을 것 같다. 녹수는 굉장히 진취적인 여성이다. 자신에게 들어온 질문에 대해 굉장히 능동적으로 해답을 찾으려고 하고 행동을 한 여자기 때문에 굉장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의 신여성인 것 같다”


지난 2006년 미스코리아 진에 선발되며 연예계에 발을 들인 이하늬는 영화 ‘연가시’ ‘나는 왕이로소이다’, KBS2 드라마 ‘상어’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라는 타이틀과 화려한 외모에 대한 편견은 그녀의 연기 생활에서 발목을 잡기도 했다.

“처음에 미스코리아로 데뷔를 해서 편견 아닌 편견들이 정말 많았다. 전에 어떤 카메라 감독님이 ‘너 왜 이 일을 하려고 그러니. 팔자만 드세진다. 좋은데 시집 가’라고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듣고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굶주림, 배고픔, 갈증 이런 것들에 대해 더 궁금해 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들어오는 역할도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늘 예쁘고 도시적이고 도도한 여성 캐릭터만 연기해 온 그녀는 배우로서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은 욕심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 버건디 보다는 파스텔 컬러를 선호하고, 도시보다는 농촌에 더 가까운 그녀에게 자신과 너무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힘든 시기들을 묵묵히 견뎌온 결과 지금의 이하늬는 더욱 다양한 색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의 배우로 성장해있었다.

“저는 겉모습과 내면이 차이가 정말 큰 것 같다. 그것 때문에 ‘나는 원래 이런데, 저기까지 가려면 진짜 먼 거린데 사람들이 왜 모르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나는 언제까지 이런 역할들만 해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아예 멀리 있는 캐릭터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배우 이하늬로서는 더 잘 된 것 같다. 처음에는 대사를 입에 담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역할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어떤 캐릭터든지 오면 너무 반갑고 제 안에도 많은 빛깔들이 생긴 것 같다. 오래 걸렸지만 이제는 진짜 이하늬가 뭘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서 조금씩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고 저 역시도 겉모습이 아니라 속에 있는 골자에 집중하고 저를 만들어 나가는 게 과제인 것 같다”

‘역적’으로 연기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를 맞은 이하늬는 이제 숨을 고르고 다음 작품을 위한 준비 기간에 들어갈 예정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막론하고 여배우들의 캐릭터가 적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녀는 공백기를 잘 버티겠다고 답했다.

“작품이 진짜 많이 없나보다. 이럴 때는 잘 버텨야 되는 것 같다. 사실 일을 할 때는 막 달릴 때도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버텨내는 시간, 해야만 일들을 해야 하는 시간이 되게 중요한 것 같다. 배우는 그런 슬럼프 기간이나 작품을 하지 않는 시간을 더 귀하게 보내야 한다. 그 기간을 잘 보내고 나서 작품을 하는 배우들을 볼 때면 보는 제가 너무 흡족하고, 또 공백기를 거치고 나서 더 맘고생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지금은 그냥 잘 버텨야 될 것 같다”

‘역적’은 폭력의 시대를 살아낸 인간 홍길동의 삶과 사랑, 투쟁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로 지난 16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김다운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이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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