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옥빈, ‘박쥐’→‘악녀’ 인생작 향한 ‘겁없는 행진’ [인터뷰]
- 입력 2017. 06.02. 14:15:53
-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액션 전문 배우라는 타이틀은 너무 좋죠. 못 하면 안 붙여주잖아요. 잘 해서 붙여주는 거니까 좋아요“
김옥빈
지난 2009년 영화 ‘박쥐’에서 뱀파이어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김옥빈이 이번엔 액션 배우로 돌아왔다. 가녀린 몸으로 쌍 칼을 휘두르고 달리는 차에 매달려 남자들을 제압한 그녀는 한국 여성 액션 영화의 새 역사를 쓰며 데뷔 13년 만에 또 다른 인생작을 만났다.
지난 1일 서울시 중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옥빈이 영화 ‘악녀’ 라운드 인터뷰를 위해 시크뉴스와 만났다.
지난 28일 폐막한 제7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악녀’는 개봉 전부터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박쥐’ 이후 8년 만에 칸 영화제를 찾은 김옥빈은 강렬하면서도 새로운 액션 연기로 전 세계 영화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고 이번에는 편안하게 즐겼다. 기억에 담고 싶어서 많이 돌아다니고 뤼미에르 극장에서 상영할 때는 그 날이 안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는 왜 박수를 받는지도 모르겠고 부끄럽고 민망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박수를 쳐 주는게 나의 꽃날같이 느껴졌다. 뭔가 고생한 거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어서 이게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평소 액션을 정말 하고 싶었지만 작품이 없어 하지 못했다던 김옥빈은 영화에서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어릴 때부터 홍콩 액션 영화를 즐겨보고 운동을 좋아했으며 겁까지 없는 그녀는 뼛속까지 액션 배우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다양한 장르의 운동을 배웠었다. 이걸 쓸 데가 없으니까 아까웠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기 전에 이렇게 부름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 합기도, 권투, 복싱, 무에타이 등 전부다 관심이 있어서 많이 배웠다. 배우로 데뷔하고 나서부터는 클라이밍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겨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악녀’는 과감한 도전이었다. ‘악녀’는 촬영 기법이나 연기적인 면에서 그동안 한국 액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들이 많았다. 다소 허무맹랑하게까지 느껴지는 몇몇 액션 신들에 김옥빈은 영화의 제작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되게 독특했다. 글로 읽은 후에 CG로 시뮬레이션 한 걸 봤는데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것들이 많았다. 실외기 위에서 이쪽 저쪽으로 점프했다가 엉켜서 떨어지는데 감독님한테 ‘이걸 찍으시겠다고요?’라고 했다. 그런데 진짜 찍었다. 1인칭 시점샷도 굉장히 독특했다. 일반 액션 영화에서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길게 쓰지는 않았다. 감독님이 초반에 강렬하게 인상을 심어주고 가고 싶으셨는지 앞부분을 강렬하게 하시더라”
그만큼 강렬한 액션이 많았기에,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감독의 선택을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여배우가 한국에 있겠냐’는 주변의 말들이 정병길 감독을 더욱 자극했고 김옥빈 역시 여배우가 가진 한계를 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감독님이 참 재밌는 게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하면 더 만들고 싶어 한다. 실제 성격은 부끄러움이 많으신데도 굉장히 도전적이고 액션 할 때는 무자비하다. 저도 잘 해내고 싶었다. 잘 안 나오는 장르인데도 저를 믿어주신 거니까. 믿음에 응답을 해드리고 싶었다”
‘악녀’는 액션 영화이지만 그 안에는 멜로나 가족에 대한 사랑 등과 같은 감정적인 부분들까지 넣어 스토리 적으로도 풍부함을 추구했다. 숙희라는 여자 역시 겉으로는 잔인한 킬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은 누구보다 여리고 상처가 많은 인물이다. 김옥빈은 액션이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색깔을 띠는 점 역시 ‘악녀’만의 특징이라고 밝혔다.
“액션도 액션이지만 그 안에 복수나 사랑, 배신 같은 모든 드라마 갈등 구조, 감정 라인이 다 있었다. 감독님이 연출하시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데 마냥 무겁지만은 않고 코드가 좀 웃기더라. 숙희가 대련하는 걸 보면서 조직원들이 돈을 걸고 그런 장면들이 마냥 폼만 잡지 않고 코믹한 면도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숙희 캐릭터도 어린 시절의 굉장한 트라우마를 갖고 성장하는 그런 것들이 한 작품 안에 들어가 있어서 좋았다”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킬러 숙희’보다는 ‘인간 숙희’에 집중하면서 끝없이 사랑하고 버려지는 그녀의 삶을 이야기한다. 숙희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딛고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결국 버림받는다. 또 혼자인줄만 알았던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마저도 자신으로 인해 모두 죽게 된다. 이런 숙희의 삶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두려움보다는 그녀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숙희는 사랑하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다. 그렇게 무지막지한 살인병기로 길러지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하더라. 숙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죽는 게 너무 괴로웠다. 왜 감독님은 죽을 때 항상 그 사람의 피를 제 얼굴에 뿌리시는지. 그게 너무 힘들더라. 사랑했던 사람들의 피를 계속 뒤집어쓰는데 이 여자가 앞으로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결국 영화는 ‘진정한 악녀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낳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고 한때 사랑했던 사람까지 제 손으로 죽이고 만 숙희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사랑을 줄 수 없게 변하면서 진짜 악녀가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표정을 보면 숙희는 모든 걸 잃었다. 자꾸 사랑을 줬다가 잃으면서 더 이상 남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같다. 진짜 무서운 여자가 된 거다. 사랑이 없는 진정한 악녀로 탄생한 게 아닐까 생각 한다“
액션의 난이도 뿐 아니라 캐릭터의 복잡하고 힘든 감정선까지 신경 써야 했기에 김옥빈에게 ‘악녀’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든 작품이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촬영 하는 내내 ‘은퇴하겠다’는 농담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촬영이 끝나고 돌이켜보니 어느새 고통보다는 액션을 향한 애정만 남아있었다.
“액션 영화를 더 많이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몸을 쓰는 영화들을 하나씩 다 섭렵해보고 싶다. 스포츠 영화라든지 뮤지컬 영화라든지 뭔가 제가 가진 재주를 하나씩 활용할 수 있는 걸 해 보고 싶다. 촬영이 끝나고 2주 만에 현장이 너무 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훈련을 3개월 반 동안 했는데 그때동안 익혀 놓은 게 너무 아깝다. 계속 활용을 해야 안 잊어버리는데 다시 한 번 액션을 해서 더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다”
‘악녀’는 아직 국내 관객들의 평가를 앞두고 있지만, 대한민국 여배우인 김옥빈에게 있어서 만큼은 분명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배우로서 세 개의 대표작을 만들고 싶다는 그녀는 ‘악녀’를 통해 목표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연기자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이 배우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대표작이 세 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안에 ‘악녀’가 들어갔으면 좋겠다“
‘악녀’는 살인병기로 길러진 최정예 킬러 숙희가 자신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를 깨닫고 복수에 나서는 강렬한 액션 영화로 김옥빈은 숙희 역을 맡았다. 오는 8일 개봉. 러닝 타임 123분. 청소년 관람 불가.
[김다운 기자 news@fahsionmk.co.kr / 사진=이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