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말’ 권율 “배우 인생 바둑과 같아…빨리보다 멀리 봤다” [인터뷰]
입력 2017. 06.07. 09:09:39
[시크뉴스 김지연 기자] 배우 권율은 하나의 마스크로 부드러운 밀크남에서 살인마, 선과 악 두 가지 면을 지닌 악역까지 전혀 다른 인물들을 각기 다른 느낌으로 표현해낸다. 이는 작은 것 하나까지 치열하게 파고드는 그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악은 성실하다’는 ‘귓속말’의 명대사처럼, 그 역시 성실했다.

권율은 최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박경수 극본, 이명우 연출)에서 권력욕과 야망을 지닌 법비 강정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사이코패스나 그가 전작 ‘싸우자 귀신아’에서 맡은 악귀에 빙의된 인물이 아닌,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실제 현실 속 인물 같은 악인 강정일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권율은 강정일에 대해 “성장과 변화가 있는 악역”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생각하는 강정일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갖고 악행을 벌이는 인물이었다. 복잡한 내면을 지닌 캐릭터인 만큼 매 순간 집중하고 낭떠러지에 선 기분으로 연기를 해야 했다. 그는 “어떤 역할이든 다 힘들지만 ‘귓속말’을 하는 동안은 정신적으로 예민하고 날카로웠다. 연기하면서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경계하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는 저도 모르게 예민해지더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특히 ‘귓속말’은 ‘펀치’ ‘황금의 제국’ 등 수작을 집필한 박경수 작가의 신작으로 관심을 받았다. 권율은 ‘귓속말’ 대본을 셰익스피어극과 같은 고전문학을 공부하듯 접근했다. 그는 “대사 하나하나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곱씹게 되고 어떤 감정과 목표를 갖고 연기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다”며 “발음이 어려운 것이 많아서 힘들고 어려우면서도 공부가 많이 됐던 것 같다. 작가님의 이야기에는 표면의 의미와 다르게 내재된 의미를 갖고 있는 대사가 많다. 이면의 뜻을 잘 표현해내기 위해 고민했다”고 밝혔다.

케이블TV tvN ‘식샤를 합시다2’의 ‘밀크남’ 같은 이미지가 강했던 그가 악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이런 우려를 씻어내기 위해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체중도 감량하고 머리도 올리고, 표정 연구도 다양하게 했다. 그는 “기존의 제가 보여준 이미지가 발목 근처에도 못 따라오게 하고 싶었다. 밀크남 이미지를 지우고 조금 더 남자답고 날카롭고 예민한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식샤2’ 때의 그 권율이었냐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고 전했다.

“악역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도 도시적인 마스크가 차가운 느낌을 준다는 의견도 있었죠. 저는 얼굴을 지우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제 얼굴에서 한 캐릭터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 사람이 저 사람이었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죠. 개인적으로도 그런 배우들을 볼 때 희열을 느끼고요. 연기 패턴이 보이는 것보다 ‘저런 연기도 할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권율은 강정일이라는 인물의 백지를 대학 시절 배운 연기법을 활용해 채워나갔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선배들에게 캐릭터의 성격 구축 작업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강정일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정리를 했다. 표정이나 걸음걸이, 글씨체 등을 상상해 성격을 구축했다”며 “물론 살인은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지만, 아버지를 잃은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목표를 지니고 그 과정에서 공감과 이해를 줄 수 있는 악역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작은 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쌓아올려 강정일이라는 인물을 완성한 권율은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반응에 대해 체감을 하지 못했다고. 권율은 “‘귓속말’이 유종의 미를 거뒀고 반응도 좋아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배우를 하면서 하나하나가 인생에서 만날 수 없었던 인생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모든 캐릭터 하나하나가 다 고맙고, 그 캐릭터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매일 밥이라도 사주고 싶다”며 자신이 연기한 인물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 가운데서도 권율이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영화 ‘명량’(2004)에서 연기한 이회였다. 지난 2007년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로 데뷔한 그는 ‘명량’에서 이순신(최민식)의 아들 이회 역으로 대중의 눈도장을 찍었다. 7년 가까운 무명 생활 동안 조급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단 한 번도 의심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배우 인생을 바둑에 비유하며 “빨리 바둑돌을 둬서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제가 접근할 수 있는 바둑은 또 다른 바둑이라고 생각했다. 바둑은 빨리 집을 형성해서 이기는 것보다는 한 수 한 수 멀리 봐야 하지 않나. 언젠가는 그 바둑을 이길 뿐만 아니라 좋은 바둑을 뒀다는 평을 들을 날을 기다렸다”고 밝혔다.

또 그는 “어떻게 보면 자기 최면을 걸었던 것 같다. 나에게도 분명히 한 번의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며 “당시는 너무 힘든 시기였지만 지금은 정말 감사하다. 그런 시기가 아니었다면 더 늦게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을 거다. 지금도 한없이 철없고 부족하지만 그런 시기를 생각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 같다”며 “제가 연기할 수 있는 장(章)은 언제나 마지막이고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단 한 순간도 허투루 놓치고 싶지 않고, 단 한 컷만 나가더라도 절실한 기회라는 생각으로 처절하게 연기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절실하고 올곧은 모습으로 연기 한 길만 달려온 만큼 현재도 남아있는 연기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고. 그는 “제 뜻대로 휴식을 갖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나. 아직 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끊이지 않고 작품을 계속 하고 싶다. 현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귓속말’로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낭보를 기대한다는 말에, 권율은 손사래를 치며 “전혀 기대 안 한다. 아직 2분기도 안 지나지 않았나”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그는 “그런 것보다 작품이 좀 더 좋게 평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중에도 회자되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고민하던 그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좋은 배우가 된다는 것의 기준을 잘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이 결국 좋은 배우가 된다는 사실만은 알겠다고.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멘토의 역할이 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해요. 말 한 마디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세월이나 공신력이 쌓여야겠죠. 분명 제가 갖고 있는 것들을 다 보여주고 권율이라는 배우에 대해 익숙해지는 시기가 올 것 같은데,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는 예술적인 영감의 작업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을 돕고 제가 걸어온 시행착오를 이야기해주면서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믿고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김지연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이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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