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두 남자의 지옥탈출기, 질문을 던지다 [씨네리뷰]
- 입력 2017. 06.08. 11:33:03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영원히 지옥 속에서 살아라.”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저주하는 한 남자의 대사가 섬뜩하다. 사무치는 한이 서려있는 이 남자의 말대로 영화는 ‘지옥의 모습이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막막하고 끔찍하다.
영화 ‘하루’(감독 조선호)가 오는 15일 개봉된다. ‘하루’는 제50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경쟁부문인 오피셜 판타스틱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영화뿐 아니라 만화 소설 등에서도 타임 루프는 수없이 다룬 소재다. 자칫 식상할 수 있음에도 많이 다뤘고 여전히 다뤄질 소재일 만큼 재미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조 감독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지옥 같은 시간에 갇힌 두 남자와 그들이 구해야 하는 사람들, 여기에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더해 드라마를 만듦으로써 기존 의 타임슬립 콘텐츠들과 차별점을 두려 했다.
정쟁의 성자라 불리는 의사 준영(김명민)은 딸의 생일 날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 대형 교통 사고 현장에서 죽어있는 딸 은정(조은형)을 발견한다. 충격도 잠시,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딸의 사고 2시간 전으로 돌아가 있다. 어떻게 해서든 그 날의 사고를 막으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고 매일 딸이 죽는 지옥 같은 하루를 반복하던 어느 날, 준영 앞에 그처럼 사고로 아내를 잃은 그 날을 반복하고 있다는 남자 민철(변요한)이 나타난다.
이유도 모른 채 끔찍한 사고의 시간 속에 갇힌 두 사람은 힘을 합쳐 하루의 끝을 바꾸기로 하지만 어떻게 해도 죽음은 막지 못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매일 눈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어 절망하는 두 사람 앞에 자신이 준영의 딸을 죽인 범인이라고 말하는 의문의 남자가 나타나고 준영과 민철은 이 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는데… 과연 두 남자는 처절한 사투 끝에 소중한 딸과 아내를 살릴 수 있을까.
영화는 ‘지옥 같은 하루가 끝임 없이 반복된다면?’이라는 잔인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딸과 아내가 죽는 것을 목격하는 것을 반복하는 두 남자. 이처럼 끔찍한 상황을 겪는 것이 두 남자에게 반복되는 하루다. 두 사람의 눈물겨운 고군분투를 보자니 이들에게 주어진 ‘반복되는 하루’, 기회 아닌 기회가 바로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중후반으로 달려가면서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한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다면, 이는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일까? 뼈에 사무칠 만큼 억울한 일을 당한다면, 당신은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늘이 주신 기회’와 ‘용서를 빌 기회.’ 하나의 기회를 바라보는 이의 관점이 변할 만큼 인물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상황에 의해 인간이 극단적 선택을 한 상황을 용서할 것인가, 용서받아선 안 되는가?
김명민 변요한 유재명 등 극을 이끄는 세 명의 배우는 경쟁이라도 하듯 열연을 펼친다. 이들의 처절한 연기는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스토리와 뒤엉켜 극의 집중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된다.
역동적인 카메라 무빙과 음악은 인물의 감정을 선명하게 반영해 관객이 감정을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김명민의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를 시작으로 인물의 시점 변화를 주는 것 역시 극을 단조롭지 않게 느끼게 하는 요인이다. 시점 변화를 통해 상황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되면서 관객은 각 캐릭터의 입장, 생각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사건·상황을 입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단조롭던 시각이 넓어지는 동시에 표면적인 선악도 바뀔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선악도 바뀌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이 드러난다.
처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모습에서 나아가, 극적인 상황에 몰리면서 이기적으로 변하고 잔인해지기도 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이 지닌 선(善)이 발휘될 때야 비로소 잘못된 일의 매듭을 풀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정적인 일이 또 다른 부정적인 일을 부른다는 것이다. 잘못은 진심어린 뉘우침이 있어야만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착한 영화’에 신비로움과 미스터리함이 뒤섞여 이 영화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아울러 소중한 존재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기회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조 감독은 연출을 통해 선을 악으로, 악을 선으로 포장한다. 이 장치를 통해 관객의 시야를 통제함으로써 반전에 극적 효과를 준다. 반전을 접하는 순간 관객은 사람의 단면을 보고 당연하게 오해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여기에서 초반의 선과 악의 명확한 경계가 무너지고 실은 선의 탈을 쓴 악이 묘사하기에 따라 선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에 엄청난 새로움은 없다. 타임 루프라는 흔한 소재에 소중한 사람을 찾으려는 사람의 고군분투기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집중하게 하는 힘은 분명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는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력이 그 힘의 원동력이다. 일반적인 개념을 벗어난, 두 남자에게 제한된 ‘하루’는 단순반복 같지만 이어지는 긴장감으로 끊임없이 같은 장면에서도 관객을 집중시킨다. 러닝타임 90분. 15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