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상감독 say] ‘악녀’ 김옥빈, 거짓이 키워낸 잔혹 킬러 ‘숙희의 패션코드3’
- 입력 2017. 06.08. 17:38:28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영화 ‘악녀’는 스토리 구성상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사연은 거침없이 삭제되거나 생략되고 오직 숙희를 연기한 김옥빈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영화 '악녀' 김옥빈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본 숙희(김옥빈)는 첫 남편 중상(신하균)을 떠나보내고 그가 남긴 아이와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두 번째 남편 현석(성준)마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지켜본 가장 서글픈 운명을 가진 여인이다. 그러나 이 안에 반전이 있다. 중상은 숙희를 킬러로 키워낸 스승이고, 현석은 국가비밀조직이 숙희를 감시하기 위해 심어놓은 요원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액션 영화로서 정체성과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을 만든 조직을 비웃듯 그들 보다 잔혹하고 악독하게 스스로 진화한 숙희의 마지막 강력한 한방 때문이다. 악녀는 ‘섹시한 악녀’라는 기계적인 묘사에 그칠 수 있는 숙희에게 많은 아픔을 심어주고 그러한 상황 변화를 서정적으로 묘사해 관객의 감정이입을 자연스럽게 끌어냈다.
숙희는 크게 킬러 숙희, 킬러로 길러지는 숙희, 신분 위장한 숙희 세 가지 섹션으로 구분된다. 킬러 숙희는 가죽 재킷과 팬츠, 전신 슈트 등 액션을 더욱 강렬하게 부각하는 코드로, 킬러로 길러지는 숙희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양산되는 소비재처럼 여타 다른 킬러 후보생과 함께 화이트셔츠, 트레이닝슈트의 동일한 코드로 킬러의 정형성을 따라간다.
영화의상감독 채경화는 “다른 어떤 액션 영화 주인공보다 많은 옷이 필요했다. 숙희라는 인물이 감정 변화가 많은 캐릭터여서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했다”라며 의상 콘셉트를 설명했다.
가죽 팬츠는 김옥빈의 보디라인을 보다 완벽하게 보여주기 위해 제작을 하고 총 세벌의 가죽재킷이 등장한다. 특히 앞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죽재킷은 숄칼라로 강한 액션에 유연함으로 밸런스를 맞춘다.
그러나 악녀가 여타 액션영화와 다를 수 있었던 결정적 섹션은 주인공이 악녀가 될 수밖에 없는 장치가 된 신분 위장한 숙희 장면이다.
채 감독은 “킬러라는 역할 상 전체적으로 톤을 어둡게 맞췄지만 이 장면에서만큼은 여자 숙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연극배우로 신분을 위장하고 현수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이 과정에 옷으로 숙희를 따뜻하게 감싸 안고 싶었다는 의도를 전했다.
이를 위해 잔잔한 프린트의 원피스에 포근한 맥시 카디건을 입히거나 현수에게 애틋함을 느끼는 순간에는 크림색 코트로, 킬러 숙희가 아닌 중상에게 사랑을 느꼈을 때부터 꿈꿨던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여자의 모습을 극히 일상적 드레스코드로 보여준다.
소설가 김영하가 자신이 출연하고 있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이순신이 소설과 영화의 소재로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로 언급한 ‘충분한 고통, 분명한 목표, 적어도 한 번의 기회’의 세 가지 요건은 숙희 역시 완벽하게 충족한다는 점이 관객에게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숙희’는 킬러로서도 여자로서도 넘치게 매력적이다. 김옥빈은 액션 장면에서는 숙희를 남성적으로, 위장한 신분으로 살 때는 지극히 평범한 엄마이자 여자로 그려내 관객들이 숙희에게 한 시라도 눈을 땔 수 없게 만든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숙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