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김명민 “첫 타임 루프 영화, 반복되는 하루 연기 힘들었다” [인터뷰]
- 입력 2017. 06.22. 15:34:19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슬림한 핏의 화이트 티셔츠와 지퍼 장식이 인상적인 블랙 가죽 팬츠. 여기에 캡을 눌러 쓴, 록시크한 의상을 입은 그는 이날의 의상이 평소 자신이 즐겨 입는 스타일이라 밝혔다.
센스 있는 농담과 뛰어난 언변으로 스타일링만큼이나 유쾌함을 뽐내는 그에게서 작품을 통해 보던 김명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진중한 캐릭터를 보여줘 다가가기 어려운 이미지를 가진 그. 그와 대면하는 순간부터 ‘이미지는 말 그대로 이미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김명민(46)을 만나 영화 ‘하루’(감독 조선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는 매일 눈을 뜨면 딸 은정(조은형)이 사고를 당하기 2시간 전을 반복하는 남자가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 시간에 갇힌 또 다른 남자를 만나 그 하루에 얽힌 비밀을 추적해 나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김명민은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목격하는, 지옥 같은 하루를 되풀이 하는 남자 준영을 연기했다. 딸을 살리기 위해 지옥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인물을 연기한 그는 실제로도 반복된 장소에서 반복된 연기를 해야 했다. “타임 루프 소재의 영화는 이제 하지 않겠다”며 너스레를 떨 만큼 그에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시간 흐름 순서대로 찍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 장소에서 반복되는 하루를 몰아서 찍어야 했다. 같은 하루가 되풀이되지만 매번 다른 감정을 연기해야 했다.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이었기에 상상하고 계산해서 연기했다. 하루가 반복되는 영화이기에 잘못하면 바보처럼 보일 것 같았다. 편집을 했을 때 들어맞지 않을까 걱정했다. 타임 루프 영화는 처음인데 힘들었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소재기도 하니까. ”
극 중 딸을 구하지 못한 그는 오열하며 폭발하는 감정을 보여준다. 자신의 뺨을 때리며 자책하는 그의 모습은 극한의 고통을 전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 장면을 촬영하다 눈을 잘못 때려 핏줄이 터졌다. 스태프들이 ‘괜찮냐’고 물었는데 세 보이고 싶어 ‘괜찮다’고 했지만 실은 정말 아팠다.(웃음) 콘티 없이 찍었다. 걸어가서 은정이 앞에 있을 때까지 계산이 안 됐다. 동물적으로 감정에 맡기자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듯 빗대어 볼 수 있는 장면이잖나.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나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올 것 같았다.”
딸의 사고를 목격하는 비극적 장면은 박문여고 사거리에서 촬영됐다. 무려 3주 동안 이어진 촬영은 평균 35도를 웃도는 불볕더위 속에서 진행됐다. 그늘 한 점 없이 찜통 아스팔트와 전쟁을 치른 그는 “박문여고 쪽은 가고 싶지 않다”며 비화를 전했다.
“박문여고 사거리에는 밥차도 들어올 수 없었다. 식당까지 다녀올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자장면을 주로 시켜서 길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먹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비켜주곤 했다. 고생 안 하는 배우가 있겠느냐마는 힘들게 촬영한 게 사실이다. 이번에 ‘V.I.P’를 송도에서 촬영했는데 박문여고 앞을 지나가지 말자고 했다.”
그는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 이어 이번 영화를 통해 후배 연기자 변요한과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육룡이 나르샤’를 촬영할 당시, PD와 자신에게 질문세례를 하던 변요한을 눈여겨봤고 조선호 감독에게 추천, 변요한에게도 출연을 제안했다.
“연기에 임하는 자세가 정말 좋다. 연기 하기에 앞서 늘 토론을 하려 한다. 요즘 그렇게 하는 후배가 없다. 선배에게 먼저 다가와 연기 조언을 구하는 후배도 없다. 그런데 먼저 다가와 연기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요청하더라. 밤을 새우더라도 연기에 대해 더 이야기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데뷔 22년 차인 김명민은 단 한 번의 연기력 논란도 겪지 않은, 연기의 정석을 보여주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정작 본인은 ‘연기 본좌’라 불리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렇게 부르지 않았으면 한다. 소름이 끼쳐 못 견디겠다. 대선배가 ‘본좌가 뭐냐?’고 물어보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연기 본좌’라는 별명이 붙은 뒤 안티도 생겼다. ‘얼마나 잘하는지 한 번 보자’ 하는 분들이 있다. 내게 너무 과한 수식어다.”
20년 이상 연기를 해온 그는 촬영장과 집을 오가는 것을 반복하는 삶에 대한 고단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때로 ‘인간’ 김명민으로서의 삶을 즐기고 싶다는 그는 “취미로 한 등산조차 연기를 위한 것이었다. 집과 촬영장을 오간 것을 제외하면 뭘 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또 “이런 자리에 있을 때 연기를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서히 밀려나다 그만하고 싶진 않다”고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예전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요즘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나이가 드니 책임감이 생긴다. 주연배우로서 해야 할 일이 단순히 연기만 있는 건 아니다. 젊었을 땐 이런 걸 잘 몰랐다. 이 나이가 되니 얻는 게 더 많다. 예전에 갖지 못한 걸 더 많이 갖게 됐다. ‘젊은 게 깡패’란 말도 있지만 난 지금 이대로가 좋다. 삶에 만족한다.”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