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열’ 최희서, ‘동주’→‘박열’ 이준익으로 만든 ’인생작’ [인터뷰①]
- 입력 2017. 06.28. 14:46:16
-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박열’의 후미코는 제 인생배역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것보다 더 좋은 역할을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인 것 같아요”
최희서
지난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로 데뷔한 배우 최희서는 연기 인생 8년 만에 ‘박열’이라는 인생작을 만났다. 대중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다수의 드라마, 영화, 연극을 통해 묵묵히 연기력을 다져온 그녀는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를 만나 배우 인생 2막을 열었다.
지난 26일 서울시 중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최희서가 시크뉴스와 만나 영화 ‘박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희서는 ‘박열’에서 박열의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았다.
지하철에서 연극 대본을 외우던 중 우연히 신연식 감독에 눈에 들어 이준익 감독과 인연을 맺은 최희서는 ‘동주’ 출연에 이어 ‘박열’의 주연 자리까지 꿰찼다. 인지도도 없고 주연 경험도 없는 자신의 현실에 가네코 후미코 역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했던 최희서는 캐스팅 소식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고 전했다.
“믿기지 않았다. 감독님께서 저를 염두해 두신다는 말씀은 하셨지만 캐스팅 자체가 감독님 혼자서 결정하시는 부분도 아니고 전 사실 감독님이 저를 생각해주시는 자체가 기뻤다. 제가 꼭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 실망이 크니까 기대를 갖지 않으려고 했는데 캐스팅 연락을 받으니까 ‘이게 현실인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최희서는 ‘이준익 감독의 뮤즈’가 됐다. 많은 배우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이준익 감독이 무명의 최희서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최희서는 그 물음에 자신 있게 ‘책임감’이라고 답했다.
“제가 책임감이 강한 편이다. 인물이나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진지하고 약간 대충 넘어가려 하는 성격이 아니다. 하나를 하게 되면 꼼꼼히 살피고 계속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됐을까, 왜 이런 대사를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준비를 한다. 감독님이 그런 저의 모습을 보고 주연 경력은 없지만 이 친구라면 뭔가 진솔한 작업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신 것 같다”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인 여성이지만 어린 시절 조선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학대를 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권력에 투쟁하는 ‘아나키스트’가 된 인물이다. 영화에서 후미코가 보여주는 투쟁 정신과 의지는 어느 남성 캐릭터와 비교해도지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낼 수 있는 여성 캐릭터를 만난 건, 여배우 최희서에게도 축복 같은 기회였다.
“후미코는 사상과 이념이 뚜렷하고 그걸 냉철하게 피력할 수 있는 여성이다. 92년 전의 이야기인데도 이 여성의 사상은 2017년에 봤을 때도 훌륭하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해야 한다는 페미니즘 사상도 있고 이런 이야기를 100년 전에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멋있고 그런 역할로 큰 울림을 줄 수 있는게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앞으로는 이러 역할을 못 맡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이거보다 더 좋은 여성 캐릭터를 맡고 싶다고 하는 건 욕심인 것 같다. 앞으로도 저는 전형적인 소모되는 여성 캐릭터는 많이 안할 것 같다. 조금 더 색다른 여성 캐릭터들을 보여드리고 싶다”
매력적인 캐릭터 뿐 아니라 첫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데뷔 8년 만에 주연을 맡아 롤모델이었던 이제훈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최희서에게는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주조연의 개념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은 듯 했다.
“주조연을 떠나서 후미코라는 역할 자체가 연구해야할 부분이 많아서 역할에 대한 무게가 더 컸다. ‘이거 주연이니까 잘해야 돼’라는 생각은 오만인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작은 역할은 없다, 작은 배우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배우가 역할의 크고 작다고 해서 의무감의 차이가 있다면 그건 직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되도록 주연이라는 생각을 안 하려고 했다. 후미코 역할 자체가 너무 깊이가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부담이 많이 됐다”
‘동주’와 ‘박열’ 두 작품에서 모두 일본인 역을 맡았던 최희서는 일본인 못지않은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자랑했다. 어릴 때 일본에 살았던 경험 덕에 그녀는 외국어 연기도 큰 어려움 없이 해냈다. 오히려 난관은 한국어 연기에 있었다. 한국어를 일본인의 입장에서 어눌하고 부자연스럽게 말해야 하는 연기는 외국어 연기보다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기술적인 고민이 가장 컸던 부분이 어눌한 한국말이었다. 감정선이라던지 다른 고민은 연기적인 부분인데 한국어를 어눌하게 연기해야 되는 건 잘못하면 웃기거나 집중이 깨질 수 있다. 일본어 연기는 ‘동주’때 해봐서 자신이 있었는데 이건 정말 막막했다. 사유리 씨나 강남 씨 같은 일본 연예인 분들 발음도 들어봤는데 한국어를 너무 잘 하시더라. 그래서 고민하다가 한국어 대사를 일본어로 적어서 연습했다. 히라가나로 읽어보니까 왜 이 발음이 안 되는지 알겠더라. 일본어의 억양이나 비음 같은 게 그대로 적용돼서 더 일본사람처럼 들렸다. 애드리브 같은 경우도 깜짝 놀라거나 화났을 때는 일부러 대사에 일본어를 섞어서 말하기도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든 작품인 만큼, 촬영이 끝난 후 조금의 아쉬움도 남지 않았다. 최희서에게 ‘박열’은 자신의 모든 걸 쏟아내며 만들어낸 영화였다.
“항상 매 작품마다 아쉬운 것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이번 작품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없었다. 자신감이 있다기보다는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만큼을 했던 것 같다. 이제훈 씨랑 저랑 둘 다 혼신의 힘을 다 해서 찍었다”
‘박열’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작품 외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그녀는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 직접 ‘박열’ 제작기를 글로 작성해 공개한 바 있다. ‘박열’의 캐스팅 비화부터 촬영 현장 이야기, 대본 노트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글에는 그녀의 연기만큼이나 섬세한 필력이 돋보인다.
“홍보팀에서 제 대본노트를 보시고는 너무 아깝다고 하시더라. 제가 이렇게 역할을 연구했다는 걸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셨고 그러다보니 제작기를 글로 쓰게 됐다. 브런치를 많이 읽었지만 써 본 적은 없었다. 예전에 ‘국가대표2’의 김슬기 씨도 그걸 쓰셨더라. 평소에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취미 중 하나였는데 그게 ‘박열’의 제작기를 공개할 수 있는 기록의 장이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이뿐 아니라 그녀의 SNS에도 온통 ‘박열’과 관련된 사진으로 채웠다. 직원들보다 앞장서서 ‘박열’ 홍보에 열을 다하고 있는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는 ‘박열’ 밖에 없다며 웃어보였다.
“지금 제 머릿속에는 ‘박열’밖에 없다. 꿈에서도 ‘박열’ 꿈밖에 안꾼다. 인스타도 제가 여행 사진이나 이런 걸 올리다가 ‘박열’이 개봉하고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올리게 됐다. 이준익 감독님이나 이제훈 씨가 SNS를 안 하니까 저라도 홍보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에 하고 있다 (웃음)”
그녀의 간절한 마음이 통한 걸까. 28일 ‘박열’은 개봉과 동시에 경쟁작인 ‘리얼’과 ‘옥자’ 등을 누르고 예매율 1위를 달성했다. 앞서 최희서는 만만치 않은 경쟁작 사이에서도 ‘박열’을 봐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영화 관람을 독려했다.
“언제 개봉하든 경쟁작은 항상 있으니까 불안하기도 하지만 운이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저희 영화는 여태까지 존재했던 일제강점기 영화와 다르다.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재조명하고 일본인인 여자 주인공이 한국 남성과 함께 권력에 투쟁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새롭고 색다른 소재라고 생각한다. 더 놀라운 건 이게 실화라는 거다. 관객들이 보면서 ‘와 이게 실화야?’라는 생각을 하실 것 같다.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영화를 보시면서 어떤 분은 정통사극이라고 느끼고 어떤 분은 러브스토리라고 느끼고 다양한 시각으로 봐주실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또 좋은 현상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박열’은 1923년 도쿄, 6천 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관동대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영화다. 오는 28일 개봉. 러닝타임 129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다운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이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