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열’ 최희서, ‘연기파’ 배우가 되는 그 날까지 [인터뷰②]
- 입력 2017. 06.28. 17:15:11
-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연기파’라는 수식어가 좋은 것 같아요. 딱 봐도 연기 잘 할 것 같잖아요”
최희서
영화 ‘동주’에서 일본인 여학생 쿠미 역으로 얼굴을 알렸던 배우 최희서가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로 돌아왔다. 단역과 조연을 거쳐 이준익 감독의 주연 자리에까지 오른 최희서의 성장 비결은 연기를 향한 열정과 포기를 모르는 독기였다.
지난 26일 서울시 중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최희서가 시크뉴스와 만나 영화 ‘박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독립영화와 연극 활동을 해오며 무명 배우의 삶을 살아왔던 최희서는 ‘동주’에 이어 ‘박열’까지 이준익 감독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도 오르는 등 뜨거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아직 알아보시는 분도 없고 별로 그런 감흥은 없다. 그냥 ‘왜 검색어에 내 이름이 있지?’ 이런 얼떨떨함은 있다. 그런데 이준익 감독님이 옆에서 계속 ‘너가 앞으로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널 알게 되면 말도 조심해야 되고 행동도 예전과 다를 거다’라는 얘기를 해주신다. 그걸 귀담아듣고는 있지만 아직 체감할 수 있는 건 없다. 어제도 지하철 잘 타고 다녔다”
최희서는 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와 영어영문학과를 전공했다. 연기와는 전혀 거리가 먼 그동안의 행보에 왜 갑자기 배우로 전향하게 된 건지 궁금해지지만, 그녀는 10대 때부터 줄곧 배우를 꿈꿔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예회에서 연극 주인공을 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직업 때문에 어린 시절에 일본과 미국에서 살다보니 연기 학원을 다닌다거나 그럴 기회가 없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특별수업 때 연기수업을 들은 것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연극 동아리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공도 그때는 연극영화과가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진학 자체를 생각을 못했고 그나마 사회과학 계열 중에 가장 제 분야랑 비슷할 것 같은 신문방송학과를 택한 거다”
특히 최희서는 일본어와 영어, 이탈리아어까지 4개국어를 구사하는 ‘뇌섹녀’인 만큼 주변의 만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편안하고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연기에만 몰두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언어를 많이 하는데 통역사나 외교관을 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저는 일단 연기를 하고 싶어서 시작했고 애초에 외국어가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연극 동아리를 하면서 연기를 하다 보니 일본어를 할 수 있어서 ‘동주’ 미팅도 했고, 영어를 할 수 있어서 오디션 기회도 많이 주어졌다. 제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더 잘 살릴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물론 무명 배우의 삶을 혼자서 버텨내는 데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수십 번의 오디션 탈락은 수많은 슬럼프를 불러왔지만 한 번도 배우가 아닌 다른 미래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슬럼프는 많이 왔다. 25살부터 ‘동주’를 찍기 전까지는 다 슬럼프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연기를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또 다른 오디션을 보려고 했고 단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었을 뿐 독립 영화나 연극을 통해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슬럼프가 와도 그냥 연기를 계속 하면서 이겨내려고 했다. 아무도 작품을 안 시켜주면 핸드폰으로라도 제 연기를 막 찍어서 친구한테 보여주거나 기록을 만들었다. 연기라는 게 어쨌든 기술이고 이걸 녹슬지 않게 연마하는 게 저희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최희서는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 출연해왔지만 대중들이 기억하는 작품은 ‘동주’와 ‘박열’이다. 두 작품 모두 독립운동에 관여하는 일본인 여성 캐릭터를 맡았기에 이미지가 겹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이에 최희서는 다음 작품에서는 한국인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일단 다음 캐릭터는 한국인이어야겠다는 생각은 있다. (웃음). 그거 외에는 그렇게 큰 제약을 두고 있지는 않다. 아직 알려진지도 얼마 안됐고 역할 자체를 제한을 두지 않고 시나리오가 좋고 캐릭터가 진정성이 있는 캐릭터라면 어떤 작품이라도 할 것 같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이 또 한 번 일본인 캐릭터를 제안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OK를 외쳤다. 그 한 마디 만으로 그녀가 이준익 감독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작품은 일단 일본인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 다음 작품에 일본인 역할을 제안 받는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준익 감독님이니까”
그녀의 꿈은 배우에서 끝나지 않았다. 여배우들이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캐릭터가 많이 없는 영화계에서 그녀는 직접 시나리오를 제작하고 싶은 꿈도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할 수 있는 일을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작품과 역할을 찾아다니는 그녀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배우였다.
“‘더킹’의 김소진 선배님이나 ‘더 테러 라이브’의 전혜진 선배님 같이 여성을 떠나서 역할 자체로 존재감이 있는 역할들이 앞으로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역할을 많이 맡으려고 노력 할거고 정 없으면 시나리오를 써야 되겠다는 생각도 한다. 단편은 몇 개 써봤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건 약간 아까운 것 같다. 지금 당장의 목표는 아니다. 지금은 어쨌든 처음 소개되는 얼굴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연기자로서 다른 작업을 해야 하는데 나중에 정 역할이 없다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생각도 있다”
끝으로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공감’을 꼽았다. 최희서는 하나의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통해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저는 진솔한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저 사람이 하면 그 배역이 살아있는 것 같고 많은 공감을 할 수 있는 배우가 좋은 배우인 것 같다. 배우로서 어떤 역할을 맡든지 사람들로 하여금 나 같아도 저렇게 행동할 것 같다는 생각을 이끌어주는 게 좋은 연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연기도 좋지만 ‘동주’나 ‘박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깊은 인상을 남기는, 때로는 위로도 되는 그런 영화를 많이 하고 싶다”
‘박열’은 1923년 도쿄, 6천 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관동대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영화다. 28일 개봉. 러닝타임 129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다운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이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