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 “‘옥자’ 지하 실험실, ‘설국열차’와 관련있죠” [인터뷰①]
- 입력 2017. 06.30. 00:54:47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옥자’에서 무시무시한 지하 실험실이 뉴저지에 있다고 나와요. 사실 그 곳의 주소가 ‘설국열차’(2013)의 (북미 배급사)와인스타인 컴퍼니가 20여분 축소한 미국 개봉 버전을 상영한 곳이에요.(웃음)”
봉준호 감독이 영화 ‘옥자’ 속 무시무시한 지하 실험실의 주소를 이곳으로 정한 이유는 뭘까? 이는 제작자와 스튜디오의 권력이 영화의 편집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은근슬쩍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 감독이 전권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옥자’에서 위트 있게 빗댄 것이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과 ‘옥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설국열차’ 때 그가 감독으로서 처음 겪은, 배급사의 권력이 영화의 편집에 영향을 미친 일을 곱씹었다. 봉 감독은 ‘감독판’ 영화의 개봉을 향한 의지로 감독에게 100% 권한을 부여한 인터넷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와 손잡고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나 자신의 재미를 위해 만든다. 내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이기적인 마음에서 만드는 거다. 운 좋게도 내가 만든 6편의 영화가 모두 디렉터스컷이었고 통제권에 있어 딱 한 번 위기에 봉착한 게 ‘설국열차’ 미국 개봉 25분 편집 때였다.”
할리우드에서는 제작자와 스튜디오가 엄청난 권력과 힘을 갖고 있다. ‘설국열차’는 북미배급사 와인스타인이 배급하는 6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인 프랑스 일본 등에서 한국 버전과 동일한 감독판으로 개봉됐지만 와인스타인이 배급하는 영어권 국가에서는 약 20분 분량이 잘려나간 영화가 개봉됐다. 실제 할리우드 대형 제작사들이 투자한 영화에 간섭하는 정도가 엄청나고 ‘설국열차’ 이전에 단 한 번도 감독판이 아닌 영화를 개봉한 적이 없는 봉 감독은 감독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하는 넷플릭스와 손을 잡게 된 것이다.
“뉴저지에서 편집본 시사회를 했는데 평이 별로 좋지 않게 나왔다. (투자를 맡은) CJ엔터테인먼트 측이 LA에서 ‘설국열차’ 원본으로 시사회를 했는데 편집본보다 원본의 반응이 더 좋았고 감독버전을 틀자고 했다. 갑론을박하다 1년 싸움을 하다가 와인스타인 측이 축소버전을 개봉하기로 결정했다. 그 위기를 제외하곤 난 되게 운 좋은 감독이다. ‘플란다스의 개’(2000)는 망했지만 그 당시 영화를 개봉했고 이후에도 프로듀서의 기획 제안 없이 모두 내가 기획해서 만든 영화들이다. 운 좋은 제너레이션 혹은 그런 케이스다.”
봉 감독은 예산 400억 원 규모의 ‘설국열차’에 이어 600억 원을 들인 ‘옥자’까지. 대규모 예산이 든 영화를 하면서 큰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꼈을 터다. ‘설국열차’를 개봉할 때도 예산이 적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힌 그는 이번에도 예산이 적은 영화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고 이번엔 ‘기생충’이라는 작품을 통해 정말로 그 바람을 이루려 하고 있다.
“한 편 한 편 힘들어 죽겠다.(웃음) 8년간 시달렸다. 당분간 작은 영화만 할 거다. 기차에 4년 돼지에 4년, 8년간 타인의 돈을 1000억을 썼다. 내가 그런 돈을 언제 보겠나. 나의 상상력을 위해 쓴 돈인데 힘들다. 그래서 그 다음 영화 ‘기생충’은 작은 영화다. 그 다음 영화도 작은 영화고. 당분간 작은 영화만 하고 싶다. ‘옥자’도 재개봉하는 느낌이다. 1년 전 개봉한 것 같다. 화제가 된 건 고마운 일이다.”
봉 감독의 영화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그를 설레게 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게 하는,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진지 꽤 오래됐고 저도 영화를 만드는데 아직도 영화 팬, 영화 광, 영화 마니아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요. 칸 영화제라는 거대 영화제에 초청됐는데 나도 한 명의 감독이지만 군침을 흘리고, 사인을 받아야 할 것 같고, 알짱대며 사진을 찍으려 쭈뼛대는 팬심을 지닌 상태죠. 영화도 대부분 다음 작품의 스토리나 기획이 있는 건 아니고 ‘이런 스토리의 영화를 만들면 재밌게 볼 텐데’ ‘이런 걸 보고 싶은데 아직 안 나왔으니까 내가 찍어 내가 본다’하는 그런 충동에서 만듭니다.”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