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함도’ 이정현, 사투리·욕·액션 ‘원더우먼’ 오말년 변신기 [인터뷰]
- 입력 2017. 07.26. 15:27:06
-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작품을 하면서 다치거나 상처를 입으면 뿌듯해요. 내가 뭘 하고 오긴 했구나 싶죠”
이정현
영화 ‘군함도’ 촬영 이후 작은 화상 자국을 얻은 배우 이정현의 말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녀는 애교 섞인 콧소리로 방실방실 웃으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군함도’ 속 말년으로 변신한 그녀의 모습은 위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여전사와 다름없다. 매번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놀라운 힘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녀의 연기는 ‘군함도’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시 중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정현이 시크뉴스와 만나 영화 ‘군함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개봉을 하루 앞둔 이날 이정현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한숨을 쉬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너무 긴장되고 떨리고 걱정이 많이 된다.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 기대치를 낮추고 보셨으면 좋겠다.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실거다. 모든 스태프들이 너무 고생했고 조, 단역 배우님들도 너무 많은 고생을 하셔서 그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부족한 점이 있어도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
앞서 ‘명량’에서 흰 천을 휘날리며 울부짖는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정현은 ‘군함도’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조선 여인 오말년 역을 맡았다. 다소 어렵고 부담스러운 캐릭터 탓에 출연을 두고 고민이 됐을 법도 하지만 이정현은 도리어 “결정하기 너무 쉬웠죠”라며 손사래 쳤다. 그녀가 ‘군함도’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류승완이라는 이름 석 자 때문이었다.
“처음에 강혜정 대표님한테 연락이 왔을 때 믿기지 않았다. 많은 여배우들이 서로 하려고 하는 류 감독님이지 않나. 당장 하겠다고 하니까 그래도 시나리오는 보고 결정하라고 하더라. (웃음) 일단 캐릭터가 너무 좋았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대부분 슬퍼하고 울다가 끝나는데 여기서는 일본인들한테 당당하게 맞서고 총질까지 하고 소녀들의 정신적인 지주도 되고 하니까 무슨 원더우먼 같더라. 류 감독님은 여자 배우를 강하게 그려주셔서 너무 좋다”
하지만 쟁쟁한 상대 배우 라인업을 듣고 난 후에는 조금씩 부담감이 생겨났다. 황정민과 소지섭, 거기에 송중기까지 소위 말해 날고 기는 배우들이 총 출동한 현장은 데뷔 20년 차인 이정현마저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제가 캐스팅이 마지막에 됐다.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라는 얘기를 듣고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부담감도 같이 몰려왔다. 내가 이 대단한 스타들과 연기를 하면서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됐고 긴장을 많이 했다. 그런데 현장에는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가 없고 그 캐릭터들만 있었다. 저도 현장에 가면 그냥 말년이가 됐다. 고통스러운 현장이었지만 너무나 행복했다”
영화 자체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만큼 캐릭터 설정에도 신중을 기했다. 그녀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접하며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느끼고 캐릭터에 젖어들었다.
“국내외에 나와 있는 위안부 다큐는 다 섭렵했다. 처음 대본을 읽을 때 말년이와 칠성이가 유곽에서 하는 대사가 너무 슬퍼서 내가 느끼는 그대로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감독님이 소개해주신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북한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경험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더라. 그게 너무 못이 박히고 슬펐다. 어차피 말년이가 처음 군함도에 끌려온 게 아니라 부대를 많이 옮겨 다녔다. 뭔가 인생을 다 산 듯한 담담함과 죽지 못해 사는 그런 심정으로 캐릭터를 잡고 대사를 했다”
특히 강한 사투리와 욕은 어디서도 기죽지 않는 강인하고 굳센 말년의 성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줬다. 이 역시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정현이 직접 제안한 설정이었다.
“원래 말년이가 서울말을 쓰는 설정이었는데 그러면 강한 대사를 해도 예뻐 보일 것 같아서 싫더라. 그래서 감독님께 사투리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좋다고 하셨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다. 사투리 선생님도 따로 계셨고 말년이가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여자라서 욕 선생님도 계셨다. 감독님도 한 글자라도 이상하면 그냥 안 넘어가신다. 그래서 촬영이 끝나도 후시 녹음 때문에 캐릭터를 계속 안고 있으면서 사투리와 욕을 달고 살았다. 너무 욕을 하니까 부모님도 놀라시더라. 나중에 감독님이 너무 잘했다고 오케이를 하시고 난 순간에는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때 아니면 언제 이런 연기를 해 볼까 싶어서 행복하기도 했다”
말년의 존재감은 극 후반부 탈출 신에서 극에 달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과 같은 처지인 어린 소녀들을 보듬고 이끌어준 말년은 급기야 직접 총을 들고 일본인과 맞서며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이번 작품으로 처음 액션에 도전해야했던 이정현은 극중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총격신을 꼽았다.
“액션이 처음이었고 총이 말이 5kg이지 드니까 너무 무겁고 중심을 못 잡겠더라. 그런데 배우들이 100~200명 씩 깔려있는 상태에서 무술팀은 폭탄 맞아서 위로 날아가고 해야 되는데 총질을 못 해서 저 때문에 NG가 나면 다 다시 해야 된다. 그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그걸 옆에서 소지섭 오빠가 잡아줬다. 제가 불안한 걸 눈치 채고 슛 들어가기 전에 계속 반복해서 알려줬는데 그게 너무나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총알이 난무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서로를 마주보며 로맨스를 형성하는 듯한 말년과 칠성(소지섭)의 모습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정현은 단순히 동지라 보기엔 너무나 애틋하고, 로맨스로 보기엔 다소 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관계를 관객들의 선택에 맡긴다고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관객 분들한테 맡겼다. 사실 유곽 신에서 칠성이와 얘기한 다음에 제가 노래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편집되긴 했지만 그 노래를 부르면서 서서히 페이드아웃 되고 다음이 빨래터 장면이었다. 그때 둘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관객 분들에게 던져주고 싶었다. 연민과 동지애가 있으면서도 로맨스로 발전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니까 탈출할 때 칠성이에게 가지 않았겠나. 현장에서도 오프더레코드로 말년이와 칠성이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들이 오갔다”
‘군함도’는 정식 개봉을 하기도 전에 한국 영화 역대 예매량 1위 기록을 갈아치우며 그 인기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이정현은 대중들의 과분한 기대에 대한 걱정을 내비치며 많은 관객들이 군함도의 역사를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너무 기분 좋은 일인 것 같다. 저는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 보실까에 신경이 많이 가 있다. 천만이 넘으면 좋겠지만 영화가 기대에 못 미친 부분도 있을 테고 그 부분들을 일반 관객 분들이 잘 봐주셔야 할 텐데 너무 걱정된다. 영화를 보고 군함도라는 섬에 강제징용 됐던 피해자 분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일본에서도 개봉이 된다고 하는데 일본 분들도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계신다면 뿌듯할 것 같다”
‘군함도’는 1945년 일제 강점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군함도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목숨을 건 탈출기를 그린 영화다.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 타임 132분
[김다운 기자 news@fahsionmk.co.kr / 사진=(주)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