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아이피’ 장동건, 흥행 부담에도 다시 ‘느와르’인 이유 [인터뷰]
입력 2017. 08.18. 14:55:41

장동건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슬플 때 경쾌한 노래보다 우울한 노래를 들으면서 위안을 받는 것처럼 느와르의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 같아요”

배우 장동건이 지난 2014년 영화 ‘우는 남자’에 이어 또 다시 느와르를 선택한 이유다. 평소에는 한없이 점잖고 바른 이미지의 그이지만 작품을 고르는 데 있어서는 거침없고 솔직하다. 전작의 흥행 실패와 첫 멀티캐스팅 작품에 대한 부담이 있을 법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브이아이피(V.I.P., 2017)’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 느와르를 향한 열망 때문이었다.

‘브이아이피’는 ‘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신작으로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 김광일(이종석)이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 영화다. 장동건은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기획 귀순’을 다루는 이야기와 현실감 있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다.

“박훈정 감독님의 작품들을 좋아했고 개인적으로 느와르 영화를 좋아한다. 소재가 신선하고 있을 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쿨하고 재밌는 이야기에 끌렸던 것 같다”

그가 연기한 국정원 요원 박재혁은 김광일을 두고 현실과 정의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한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거침없이 달리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박재혁은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특히 현재와 과거의 모습에서 큰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인 만큼 장동건은 외적인 모습 뿐 아니라 연기적인 면에서도 변화의 과정을 그려내는데 신경을 썼다.

“박재혁은 영화의 시작을 열고 물을 닫는 역할이고 네 캐릭터 중 유일하게 변화가 있는 인물이어서 좋았다. 박재혁은 굉장히 현실 순응적이고 정의가 마음속에 있지만 애써 누르면서 사는 인물이다. 저는 박재혁이 가정이 있는 인물일거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승진을 해야 하고 말도 잘 들어야 하는데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마음이 변화하게 되는 거다. 그 변화를 얼마나 드러내느냐가 문제였다. 그래서 이 영화를 ‘뺄셈의 작업’이라고 하는 것 같다. 상황에 맞는 감정을 다 보여주고 연기하면 마지막에 재미가 없어질 것 같아서 감독님과 감정에 관한 조율을 많이 했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인물의 감정선보다 사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변화의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특히 채이도(김명민)로 인해 박재혁이 각성을 하게 되는 장면은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장동건 역시 이에 공감했지만 이 또한 영화의 중심을 위해 선택한 과감한 ‘뺄셈 작업’ 중 하나였다.

“박재혁은 김광일이 얼마나 나쁜 일을 했는지 알아가면서 딜레마가 생긴다. 그리고 채이도에 대해서도 나쁜 감정이 없다. 사실 마지막에 둘이 다리 위에서 만나서 얘기를 할 때 조금 더 감정이 드러나게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게 관객들이 기대하는 브로맨스일 수 있는데 그걸 일부러 뺐다. 실제로 보면 박재혁이라는 인물이 심경변화가 있었는지 조차도 불투명하다. 어떻게 보면 박재혁은 끝까지 현실을 놓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브이아이피’는 장르와 이야기 특성 상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제작됐으며 그만큼 잔인함의 수위 역시 꽤 높은 편이다. 등급 제한의 핸디캡과 함께 관객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장르인 만큼 흥행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터. 장동건은 이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장르에서 오는 호불호는 제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영화들은 보통 ‘좋다, 싫다’로 나뉘는데 이건 장르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부분인 것 같다.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들도 있으니까. 제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상 그 부분을 크게 염두 하지는 않는다”

영화 자체에서는 다른 인물들과의 교류가 적었지만 작품 밖에서 다른 배우들의 존재는 많은 힘이 됐다. 원톱, 투톱 주연 작품에 익숙했던 장동건은 이번 작품을 통해 멀티캐스팅 작품의 매력을 깨달았다.

“재미는 더하고 부담은 덜했다. 특히 3년 만에 영화 홍보를 하는데 시스템이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V앱 같은 것도 하고 라이브 방송도 해야 하는데 이걸 만약에 내가 혼자 했으면 어땠을까 싶더라. 친구 같은 배우들이랑 하니까 일을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다”

후배 이종석의 연기 역시 인상 깊게 봤다. 선배 배우들과 달리 작품을 하고 싶다며 먼저 박훈정 감독을 찾은 이종석은 사이코패스 김광일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막내로서 선배들에게 먼저 다가가 도움을 요청하는 이종석을 통해 장동건은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사실 그 역할을 종석이가 한다고 했을 때 의외였는데 되게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종석이가 현장에서 진짜 큰 맘 먹고 온 게 느껴졌다. 먼저 이 작품을 한다고 했다니까 ‘아 이 친구가 지금 변화에 대한 갈증이 있구나’ 싶었다. 저도 종석이가 이 영화를 선택한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알겠더라. 제가 예전에 ‘해안선’을 찍을 때도 먼저 찾아가서 하고 싶다고 했었다. 지금 종석이가 그런 심정이구나 싶어서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우는 남자’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으로 컴백한 그는 여전히 멋있었지만 내면에는 긴 슬럼프 이후 더욱 단단해진 면모가 숨어있었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온 배우들이 한번쯤 힘든 시기를 겪듯, 그 역시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며 슬럼프에 힘들어하던 때가 있었다.

“한동안 영화를 안 보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 자꾸 뭘 찾아내려고 하고 일처럼 느껴져서 힘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관심도 없어지는 것 같고 지나서 보니까 그게 슬럼프였던 것 같다. 흥행 성적을 떠나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왔는데 그게 한 2~3년 정도 갔다. 자기애가 없어지니까 연기도 재미가 없더라”

하지만 그 순간에도 연기를 놓지는 않았다. 끝없이 새로운 작품을 만나며 슬럼프를 극복한 그는 이제 시시콜콜한 농담도 해가며 한껏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확실히 일은 일로 극복해야 하는 것 같다. ‘7년의 밤’을 찍으면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다시 연기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괜찮아졌다. 다시 제가 멋있어졌다. (웃음)”

오랜 연기 경력과 함께 힘든 시기까지 거치면서 작품을 선택하는 눈 또한 성숙해졌다. 이것저것을 따지며 좋은 작품을 흘려보내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그는 다작 배우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작품마다 끌리는 지점들이 다 다르다. 다만 달라진 점은 예전에는 좋은 점이 70이고 약간 걸리는 게 30이면 그 30이 더 크게 느껴져서 고사했던 적이 많다. 그런데 지금은 좋은 게 70이면 그걸 보고 선택한다. 제가 25년 동안 연기를 했는데 기간에 비해 작품 수가 적은 게 후회도 되고 신중하게 선택한 작품들이 다 잘 되는 것도 아니더라. 그러다 보니 작품의 좋은 점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끝으로 ‘브이아이피’ 개봉을 앞두고 그는 관객들에게 “재밌게 봐달라”며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장르에 대한 호불호도 있겠지만 장르 영화로서 충실한 영화로 봐주시면 여한이 없을 것 같다”

‘브이아이피’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청소년 관람 불가. 러닝 타임 128분.

[김다운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워너브러더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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