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이아이피’, ‘신세계’에 가려진 적당한 느와르 [씨네리뷰]
- 입력 2017. 08.23. 15:12:47
-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느와르 영화는 장르 특성 상 어두운 분위기와 잔인한 장면들 탓에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뉜다. 하지만 박훈정 감독의 느와르는 달랐다.
영화 ‘브이아이피’
그가 각본으로 참여했던 ‘부당거래’와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신세계’는 범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흠 잡을 곳 없는 인물 설정과 전개로 아직까지도 남녀노소를 불문한 많은 관객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새 느와르 영화인 ‘브이아이피(V.I.P. ,2017)’로 스크린을 찾았다. 전작들의 향수에 젖은 관객들의 기대를 완전히 뒤엎은 채 말이다.
‘브이아이피’는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 김광일(이종석)이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이를 은폐하려는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 등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박훈정 감독은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한 번도 다뤄진 적 없는 ‘기획 귀순’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스토리에 참신함을 더했으며 범죄 영화의 단골 캐릭터인 조직 폭력배 없이 CIA, 국정원, 경찰 등 하나의 상황을 두고 벌어지는 국가기관들의 마찰을 그려 판을 키웠다. 또 현재-과거-현재 순으로 구성된 전개와 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장면으로 그려지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점은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처럼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스토리를 만드는 데 집중한 박훈정 감독은 철저히 사건 중심으로 영화를 진행한다. 특히 전작 ‘신세계’가 경찰과 범죄 조직의 일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자성(이정재)의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브이아이피’에서는 인물의 상황이나 심리 등에 대한 설명, 그들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감정교류 등을 완전히 배제했다. 하지만 영화의 ‘건조함’을 살리려 한 감독의 선택은 관객들이 인물들에 공감할 수 없게 만들며 영화의 설득력을 떨어뜨렸다.
박재혁(장동건)과 채이도(김명민), 리대범(박희순)은 김광일이라는 인물에서 비롯된 각자의 목표를 열심히 수행할 뿐이다. 이들은 두 시간 내내 일관된 행동과 성격을 유지하며 그나마 갈등을 느끼고 변화를 겪는 박재혁은 그 동기가 어설프다. 영화의 장르와 대략적인 스토리만으로도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평면적인 인물들의 설정은 매력적이지 않으며 배우들의 명품 연기까지 단순하게 만든다.
물론 그 가운데서도 이종석의 연기는 단연 눈에 띈다. ‘브이아이피’로 첫 악역 연기에 도전한 이종석은 순수한 소년의 얼굴로 사이코패스 살인마 캐릭터를 그려냈다. 남성적인 분위기가 짙은 배우들 사이에서 느와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종석의 존재감은 신선하게 느껴지며 관객들에게 이종석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특히 시종일관 의미심장한 미소만 짓던 김광일이 후반부에 폭발하면서 드러나는 이종석의 새로운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이는 배우의 이미지에서 오는 흥미일 뿐 영화가 김광일을 그려내는 방법은 다른 인물들과 별 차이가 없다. 김광일을 설명하기 위해 포함된 잔혹한 살해 현장, 그의 일행이 여성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장면 등은 일부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영화에서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여성들이 모두 김광일의 피해자로만 등장한다는 점은 그동안 한국 범죄 영화들이 여성을 다루는 방법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브이아이피’는 재미없는 영화가 아니다.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몰입도를 높이는 반전, 곳곳에 숨겨진 유머 코드까지 갖춘 영화는 여름 극장가에 제법 어울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이아이피’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전작들을 통해 박훈정 감독이 보여줬던 그의 능력 때문이다.
기존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느와르를 만들고자 했던 박훈정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브이아이피’는 그가 가진 특유의 색깔과 장점을 담지 못했으며 긴장감은 있지만 여운은 없는 적당한 느와르 영화가 됐다. 특히 일부 관객들이 느와르로부터 느끼는 불쾌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영화가 과연 장르의 핸디캡을 넘고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3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러닝 타임 128분.
[김다운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