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남한산성’, 모든 면에서 용감한 프로젝트” [인터뷰②]
입력 2017. 09.27. 16:01:33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처음 감독님과 이 시나리오를 갖고 찍겠다고 한 그대로 나와 좋았죠. 끝까지 밀어붙이겠다고 한 것대로 나왔어요.”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김윤석을 만나 영화 ‘남한산성’(제작 싸이런 픽쳐스)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정공법을 택한 정통 사극 ‘남한산성’을, 배우 김윤석은 ‘다시 만나기 힘든, 용감한 프로젝트’라 말했다.

“모든 면에서 용감한 프로젝트라 생각한다. 큰 제작비를 들였고 결과적으로 신파, 사랑 그런 것을 다 쳐내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이런 선택, 이런 인력이 (동원되는 게) 쉽지 않겠다 싶다. 배우 스태프도 그렇고 (류이치) 사카모토 할아버지도 와서 도와주시고.(웃음) 이런 선택 이런 인력, 앞으로 (만나기) 쉽지 않겠다 싶다.”

영화 ‘남한산성’은 150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충무로 대표 연기파 배우들을 캐스팅했지만 영화 자체는 상업적 선택과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점에 대해 김윤석은 한 인물을 영웅화하기 보다는 극 속에 등장하는 인간에 집중할 수 있는, 굴욕의 역사에서도 치열하게 움직인 이들을 기억하는 영화라는 생각을 밝혔다.

“스펙터클, 히어로가 없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히어로가 나오면 부각시켜야하고 스펙터클한 게 크면 거기에 맞는 볼거리가 제공돼야 하잖나. 말 그대로 패배의 역사란 걸 다루며 느껴진 건, 삼전도 굴욕에서 인조(박해일)가 바보 같은 조선 최악의 왕으로 끝내는데 그 안에 그런 사람만 있었느냐 하면 소위 말하는 당시 어른이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날쇠(고수)라는 천민신분 대장장이도 있고 수어사 이시백(박희순) 이라든지 정말 치열하게 움직였던 사람들의 발자취는 알아야 하지 않느냐. 다 바보 같고 굴욕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란 것도 있어야 하지 않나. 히어로가 빠지고 인간에 집중하는데 더 효과적이다. 원작 소설이 워낙 탄탄하다.”

김윤석은 “김상헌 역을 맡고 싶었다. 병헌 씨는 최명길 역을 맡고 싶어 했고”라며 껄껄 웃었다. 그의 눈에 비친 김상헌, 어떤 매력을 지녔을까.

“극 중 김상헌이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마지막 깨달음, 울림이 있다. 모든 낡은 것들이 사라진 다음 비로소 백성의 길이 열린다. 그 깨달음, 울림이 좋았다. 그런 부분이었던 것 같다.”

화친을 주장한 주화파 최명길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척화파 김상헌의 대립에 있어 어느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김상헌을 연기한 김윤석의 입장에서는 그의 주장이 정당성을 갖는 나름의 논리가 필요했다.

“마지막(부분)이다. 인조반정 일등공신은 최명길(이병헌)이다. 광해를 폐위시키고 인조를 올린 주역이다. 웃긴 모순이 뭐냐, 광해는 분명 청‧명과 중립 외교를 펼치려 했다. 그런데 이 공신들을 폐위시키며 명으로 돌아섰고 청이 쳐들어오니까 화친을 하자고 했다. 김상헌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야 되니 ‘난 이거, 용서 못 한다, 광해가 왜 폐위됐나? 중립이 옳았는데’라는 그런 논리도 생각했다. 물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의 논리다.(웃음) 마지막에 상헌은 왕을 안 보겠다고 작정했고 실제 역사적으로도 안 본다. 그때 작심하고 사표를 던지잖나.”

김윤석은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나루와의 이별 장면을 꼽았다. 김상헌이 가진 마음의 짐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민초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담긴 장면이라 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다들 명길 상헌이 대립하는 장면을 말하는데, 난 나루(조아인)와 마지막 이별할 때 ‘민들레꽃이 피면 다시 온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건 거짓말이지만 웃으며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좀 짠했다.”

김상헌 최명길 인조, 세 인물이 이룬 삼각형 그리고 그 삼각형을 둘러싼 대신들과 팽팽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만들어낸 영화의 명장면은 실제 현장에서 연기한 배우에게도 인상 깊은 경험이다.

“대사에서 조사 하나라도 바꾸면 말맛, 퀼리티가 떨어지는 느낌이 있다. 그거 하느라 다들 앉아서 대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기억나는 게 (현장의) ‘집중력’이다. 다들 뭐 하나 안 놓치려 했다. 우리(이병헌과) 둘이 대사를 주고받는데 인조가 ‘그만 하거라’라고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순간을 놓쳤다고 생각하면 (긴 대사를) 또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웃음) 앙상블이 느껴져야 하니 그때 팽팽한 공기가 느껴졌다. 뒤에 신하가 그렇게 많은데 방해 될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함께 그런 것을 만든 기억이 크다.”

극 중 척화파 김상헌을 연기한 그에게 실제 그라면 김상헌의 의견에 따랐을지, 화친을 주장한 주화파 최명길(이병헌)을 따랐을지 물었다.

“일단 남한산성을 절대 안 갔을 테지만 난 김상헌 편이다.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배역에 대한 애정이 아직 있다. 비하인드를 만들었잖나. 최명길을 비롯한 신하들이 중립외교를 하던 광해를 폐위하고는 청이 쳐들어오니까 또 화친을 주장했다. 여기에 대한 논리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해야만 연기할 버팀목이 됐으니까. 청이 조선을 침략한 이상 결사항전 해야 한다. 여기서 한 번 목숨 걸고 싸워 함부로 침범하면 큰일 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는 영화를 보며 신분고하에 따른 차별에 대해 탄식했고 감독의 디테일한 지적이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서 극 중 김상헌의 모습이 언뜻 겹쳐져 보였다.

“가장 탄식했던 순간은 ‘격서를 안 받은 걸로 하면 되잖느냐’라는 부분이다. ‘뿌리까지 썩었구나, 이 나라가…’ 하는 느낌이었다. 시사회 때 배급관에서 영화를 봤는데 그 대사에서 가장 탄식이 많이 나왔다. 왕이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장수가 ‘격서를 안 받은 걸로 하면 되잖느냐’라고 한다. 날쇠의 신분을 말하니 얼굴이 싹 바뀌기도 한다. 이런 부분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것에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지 않나 생각한다.”

남자 배우와 연이어 좋은 호흡을 보여주는 그에게 비결을 묻자 웃으며 과거 호흡을 맞춘 여배우들을 되짚었다.

“주어진 작품들이 그랬다는 건데, ‘도둑들’에서 김혜수 씨 전지현 씨와 호흡을 잘 한 것도 있고 (‘극비수사’ ‘완득이’에서) 박효주 씨와도 잘 했다.(웃음) 비결이라기보다 작품에 집중할 때 가장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까.”

올해 말 개봉을 앞둔 ‘1987’ 역시 아픔의 역사를 담은 작품이다. 큰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에 연이어 출연한 그에게 이는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이것도 유행인 것 같다. 서로 역사를 소재로 적절히 영화를 만든다. 올해가 6월 항쟁 30주년인데 거기 맞춰 ‘1987’시나리오가 나왔었다. ‘남한산성’도 ‘1987’도 시나리오가 정말 좋았다. 배역 복이 많다. 김상헌 역을 맡았다는 것도, 1987도 의미 있는 역할이다. 좋다.”(웃음)

끝으로 김상헌을 연기한 김윤석이 생각한, 영화 ‘남한산성’이 주는 메시지에 대해 들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민들레가 피고 대장간에 다시 망치소리와 불꽃이 일고 아이들이 뛰놀잖나. 굴욕의 역사라고 잊어버리고 외면할 필요 없다. 그것도 역사다. 계속 삶은 살아지고 다음 사람이 태어나고 삶은 이어진다. 남한산성이 지금도 남아있다. ‘호흡을 길고 밝게 보자. 모든 걸 비극적으로 보지 말라. 이것도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단단해져야겠다. 스스로 극복해 나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숨 쉬고 우리나라를 더 살기 좋게 만들자’인 것 같다.”

‘남한산성’은 굴욕의 역사를 영화로 다뤘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김윤석은 관객이 굴욕의 역사를 다룬 이 영화를 보며 결사항전의 뜻을 갖고 외세에 저항했던 어른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저도 아이가 둘이나 있는 입장에서 ‘이런 어른이 있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합니다. 관리 뿐 아니라 대장장이조차 끝까지 목숨을 걸고 살려보려 했죠. 물론 실패했지만 그런 어른이 있었다는 것만은 보여주고 싶습니다.”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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