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 이어지는 물음표 끝에 도달한 진실, 그리고 편견의 오만함 [씨네리뷰]
- 입력 2017. 10.25. 12:23:21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누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차’ 싶은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영화 ‘침묵’은 힘은 끊임없는 물음표를 지나 반전을 거쳐 진실에 도달한다. 그 순간, 물론 영화가 그리 유도했음을 깨달았음에도 관객은 보이는 대로 믿는 자신의 편견이 오만한 것임을 깨닫고 반성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배우 최민식에게 깜빡 속은 기분마저 드는 이도 있을 것이다.
‘침묵’은 재력과 사랑을 다 가진 남자 임태산(최민식)이 약혼녀인 유명 가수 유나(이하늬)가 살해당한 뒤 용의자로 지목된 딸 임미라(이수경)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쫓는 이야기를 다룬다. 임태산은 최고의 변호인단을 마다하고 젊은 변호사 최희정(박신혜)을 선임, 미라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둘러싼 치열한 법정 공방을 한다. 그러던 중 유나의 팬 김동명(류준열)의 존재가 드러나고 사건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전반적으로 무겁게 깔리는 음악은 새벽녘처럼 짙푸른 화면과 뒤엉키며 음악이 흐르지 않을 때 보다 더 적막하고 우울하고 절망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또 시간 순 배열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배열로 끊임없이 수수께끼를 내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카메라는 인물마다의 감정연기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며 각 캐릭터의 표정에 주목하게 한다. 인물의 심리를 적극적으로 묘사하면서 캐릭터의 색깔을 선명하게 한다.
배우들은 발군의 연기를 보여준다. 주고받는 호흡도 볼만하다. 최민식은 그만의 묵직함을 바탕으로 극을 이끈다. 그 안에서 진중함 유머 등 모든 것을 내포하며 극 전체 분위기를 바꿔간다. 20년 이상 나이차가 나는 후배들과도 유연하게 호흡을 맞춘다. 이른바 ‘돌아이’처럼 등장한 류준열은 약간의 광기를 드러내면서도 최민식과 핑퐁 게임하듯 호흡을 주고받는 장면을 통해 웃음을 자아낸다. 류준열은 ‘날티 나는’ 캐릭터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페이스를 유지하고 최민식은 진중한 듯 웃음이 나도록 능숙하게 이를 받아낸다.
이하늬는 최민식과의 나이차를 그녀만의 성숙함과 우아함으로 극복했다. 클로즈업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그녀의 얼굴은 아름답다. 미모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도 있지만 최민식과 교감하는 눈빛과 미소는 그야말로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고 표현할 만 하다. 그런가하면 이수경과 과격한 대사를 주고받는 ‘화장실 신’에서의 그녀는 마치 전혀 다른 사람 같다. 이 신에서 그녀의 돌변하는 모습은 ‘미이라’(2017)의 소피아 부텔라가 떠오를 정도로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임태산의 비서 정승길을 연기한 조한철은 겉모습이 다가 아님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준다.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며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연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한철을 비롯해 류준열 이하늬 이수경 박신혜 등이 모두 자신만의 캐릭터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최민식을 중심으로 방사형구조를 이루며 빚어내는 케미가 빛난다.
영화는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시작함으로서 사건에 집중하게 하지만 결국 임태산이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극 중 침묵의 의미는 ‘이기적인 침묵’에서 ‘이유 있는 침묵’으로 변화한다. 극 초반에는 침묵이 얼마나 나쁠 수 있는가를 말하는듯하다가 중후반으로 가면서 침묵이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의문이 관객을 의심하게 하고 진실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한다. 침묵으로 인한 이 의문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이 긴장감을 갖고 집중하게 하는 힘이다.
후반으로 가면 김동명(류준열)이 중요한 인물임을 실감하게 된다. 단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라는 점에서 나아가 결국 그가 메시지를 던지는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가 초반에 임태산(최민식)을 향해 내뱉은, 돈보다 중요한 것을 읊는 진심과 조롱을 오가는 말이 실은 뼈가 있는 말이며 그 역시 자신이 내뱉은 단어에 대한 진심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는 극의 전반적인 이야기의 핵심을 담은 말이기도 하다.
임태산은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전형적인 ‘대기업 회장’ 캐릭터에서 출발한다. 돈으로 침묵도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애인과 딸이 얽힌 사건을 쫓으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악역으로 시작해 마지막에는 관객에게 연민마저 들 정도로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찌 보면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집중력 있게 끌고 가는 연출의 힘이 돋보인다. 엔딩은 과한 신파가 아닌, 적절한 여운을 준다. 다만, 한 인간이 변모하는 과정이 비교적 단순하게 묘사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남긴다. 이는 인물에 대한 반전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물에 관한 설득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다음 달 2일 개봉. 러닝타임 125분. 15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