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호실’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을(乙)들의 ‘웃픈’ 몸부림 [씨네리뷰]
- 입력 2017. 11.08. 13:28:08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7호실’(감독 이용승, 제작 명필름)은 블랙코미디다. ‘을(乙)’들의 몸부림은 웃긴 줄 알았더니 씁쓸하게 뒷맛을 남긴다. 전작 ‘10분’(2013)에서 공기업의 비정규직 문제, 청년세대의 고용 불안을 다룬 이용승 감독은 ‘7호실’에서도 폐업위기에 몰린 자영업자와 학자금 빛, 사회진출 난제 등 현실 앞에서 허우적대는 청년세대 등 사회적 문제를 들고 나왔다.
장편 데뷔작 ‘10분’으로 베를린 영화제 포럼 부문 초청을 비롯, 타이페이 영화제 신인산 경쟁 부분 대상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촉망받는 신인 감독 대열에 합류한 이용승 감독이 ‘7호실’로 돌아왔다.
‘7호실’은 크랭크업 직후 와디즈 크라우드 펀딩에서 목표액을 초과 달성,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 사상 최다 인원인 616명이 참여하는 기록을 세웠다. 후반 작업 완료 전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예매 오픈 30초 만에 약 3000석 전석을 매진시키기도 했다.
‘7호실’은 망해가는 DVD방 사장 두식(신하균)과 알바생 태정(도경수)이 각자 자신의 비밀이 담긴 무언가를 문제의 방 7호실에 숨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10분’이 시간에 관한 제목이었다면 ‘7호실’은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이 감독은 DVD방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다양한 장르는 물론 인물의 심리와 상황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다.
DVD방 사장과 알바생의 관계는 얼핏 갑을 관계로 보이지만 실은 을과 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각자의 고충을 지닌 이들이 자신이 떠안은 이유로 인해 죽기 살기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그 과장에서 현대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가 드러나 관객을 씁쓸하게 한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 극단적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현실에서 문제에 직면한 을들의 간절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첫 장면은 화려한 도시에서 잘빠진 자동차에 앉아 멋진 코트 차림으로 운전하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 인물의 현실을 보여주는 우중충한 DVD방으로 들어간다. 꿈에서 깨듯, 이상에서 현실로 배경이 전환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각자 다른 이유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는 마치 답답한 현실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을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하다.
두 인물은 내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이내 현실의 그림자가 두 사람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탈출구를 향해 손을 뻗을수록 만만치 않은 현실의 벽이 앞을 가리고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이유로 절박해진다. 이 절박함이 빚어내는 초조함은 뜻하지 않게 두 사람이 갈등하는 이유가 되고 이들의 신경전이 영화에서 가장 큰 웃음 포인트로 작용한다. 두 인물의 신경전은 결국 육탄전에 이른다. 이들의 모양새 빠지는 몸싸움은 을과 을이 뒤엉키는 ‘막 싸움’의 모습을 띄어 겉은 우스꽝스러우나 그 안의 처절함이 드러난다.
신하균은 망해가는 DVD방을 하루 빨리 팔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사장 두식을 물 흐르듯 능숙하게 연기한다. 막힘없는 연기에서 노련미가 엿보인다.
이미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도경수는 아이돌 그룹 멤버라는 이유로 딴죽을 걸 수 없을 만큼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모범생 역할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반듯한 외모의 소유자지만 욕설 흡연 문신 등도 자신의 색깔에 맞게 녹여내며 억지스럽지 않게 웃음을 자아내는 법을 아는 영리한 배우다. 상황, 캐릭터, 대사에 자신을 끼워 넣기 보다는 그것을 자신의 색깔로 걸러낼 줄 안다. 장면을 흥미롭게 만드는 힘도 지녔다.
DVD방 복덩이 알바생 한욱을 연기한 김동영은 극 중 웃음과 희망을 담당하며 적은 분량이지만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의 “중국인 입니다”라는 대사는 유행어처럼 뇌리에 남는다. 두식과 태정의 처절한 몸부림 사이에서 단순 우직하게 주어진 삶을 한 걸음씩 살아내는 그의 모습이 순수하기에, 넘을 수 없는 벽은 더 아프게 다가온다.
영화는 을의 삶과 고민 고충을 블랙코미디로 풀었지만 공감 웃음 메시지 등, 영화 전반에 걸쳐 미지근한 느낌을 준다. ‘좀 더 깊은 공감, 기발하고 재치 있는 웃음, 강렬한 메시지가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는 15일 개봉. 러닝타임 100분. 15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