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옥’, 선정성과 모성애로 얼룩진 여성느와르 [씨네리뷰]
- 입력 2017. 11.09. 10:28:54
-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액션이나 느와르같이 대부분 남자배우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장르의 영화들에서 여성 캐릭터의 소비방식은 늘 논란의 대상이 됐다. 주체적이지 못하고 남자주인공들을 위해 소모되는 데 그치는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은 아쉬움을 남겼고 관객들은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을 손꼽아왔다.
김혜수
이에 ‘미옥’의 등장은 영화계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수많은 남자배우들을 뚫고 포스터 전면을 차지한 김혜수의 얼굴은 여성느와르를 기다려온 많은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포스터 뒤에 숨겨진 90분의 영화 속에는 우리가 기대한 ‘미옥’은 없었다.
대체불가 여배우 김혜수표 느와르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은 ‘미옥’은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낸 언더보스 나현정(김혜수)과 그녀를 둘러싼 두 남자의 욕망을 그린 영화다. 평범한 삶을 꿈꾸던 나현정은 오랜 시간 몸담았던 조직 생활에서 은퇴를 준비하고 이에 배신감을 느낀 임상훈(이선균)은 검사 최대식(이희준)과 손을 잡고 나현정을 향한 복수를 준비한다.
남성들의 장르로 표방되는 느와르에서 여성 주인공을 만들고 싶었다던 이안규 감독은 일명 ‘믿고 보는’ 배우들과 함께 여성느와르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여성느와르는 단순히 여배우가 조직의 보스로 나오는 영화에 불과한 듯 했다.
극중 현정은 백금발의 반삭 헤어스타일과 만화영화 속 여전사 같은 의상으로 한껏 멋을 살렸지만 캐릭터 자체는 그만큼의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자신을 짝사랑하는 상훈과 연인인 김회장(최무성), 그리고 자신에게 약점이 잡혀 복수를 시도하는 대식까지 폭발하는 남성 캐릭터들 사이에서 현정은 이리저리 휘둘리며 눈앞에 닥친 상황을 무마하기 바쁘다.
오랜 시간 거대한 범죄조직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현정을 변화시킨 건 결국 모성애였다. 과거 김 회장 사이에서 낳았던 아들 주환(김민석)이 등장하면서 현정은 자신을 쫓는 이들로부터 주환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물론 모성애는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갈구하던 현정의 욕망을 대변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현정이 아닌 주환의 엄마로서 주인공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각은 실망감을 안긴다.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감정선 역시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다. 극 중 상훈은 현정을 향한 각별한 마음을 품고 있다. 오직 현정만을 위해 조직의 해결사가 된 상훈에게 현정은 꿈이고 전부다. 하지만 그가 어떤 일로 인해 현정에게 이러한 감정을 갖게 됐는지, 두 사람이 이렇게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기까지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 중반부에 상훈이 뱉는 대사 외에 캐릭터의 전사는 드러나지 않으며 관객들은 인물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그저 영화에 보여 지는 대로 상황과 감정을 받아들일 뿐이다.
수많은 아쉬움 속에서 ‘미옥’을 통해 건질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이미 관객들에게 높은 신뢰를 얻고 있는 김혜수와 이선균은 첫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느와르 장르에 잘 어우러졌다. 이희준의 악역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그동안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왔던 이희준은 ‘미옥’의 최대식 역을 통해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낸다. 여기에 최무성과 오하늬, 안소영 등 각자의 위치에서 빛을 발하는 조연들까지 ‘미옥’을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의 유일한 숨구멍이다.
결국 ‘미옥’은 느와르라는 껍데기 아래 모성애와 사랑으로 가득 찬 드라마였다. 더군다나 스토리로 채우지 못한 느와르의 특성을 잔인하고 선정적인 장면들로 메우려 한 감독의 선택은 영화에 대한 호감도를 더욱 떨어뜨린다. ‘여성느와르’라는 타이틀로 기대감을 한껏 높였던 만큼 매력적인 여성도, 느와르도 없는 ‘미옥’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9일 개봉. 러닝타임 90분. 청소년 관람 불가.
[김다운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