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일리스트 say] ‘흑기사’ 장미희를 진정한 타이틀롤로 만든 ‘배키 의상’
- 입력 2018. 01.19. 16:42:28
-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흑기사’는 영겁의 시간 속에 운명처럼 한 여인만을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로, 문수호 역을 맡은 김래원이 타이틀 롤인 듯하지만, 드라마 전개 과정 속에 진짜 흑기사는 장백희 역의 장미희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KBS2 '흑기사'
KBS2 '흑기사‘에서 장미희는 자신으로 인해 시작된 악연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200년이 넘는 세월을 고군분투하는 장백희 역할을 맡아 위트 넘치게 그러나 절박하게 자신의 악몽 같은 운명에 맞서는 인물을 마치 제 모습인양 연기한다.
장백희와 장미희 두 인물을 하나로 만드는데 의상의 힘이 컸다. 장미희는 SBS ‘인생은 아름다워’, KBS2 ‘착하지 않은 여자들’ 등 전작들을 통해 의상이 캐릭터의 완성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준 바 있다.
스타일리스트는 조윤희 실장은 “(장미희가) 패션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런데 특히 이번 작품은 들어가기 전부터 설레어 하셨습니다. 안 해 봤던 장르의 작품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장백희) 캐릭터 자체가 워낙 변화무쌍해 선생님뿐 아니라 저 역시도 기대가 컸죠”라며 장백희 캐릭터에 장미희는 물론 스타일리스트인 자신도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200년이 넘는 세월을 살고 있는 여자. 패션은 텍스트에 의한 간접 체험이 아닌 경험에서 체득됐을 때 비로소 제 것이 되는 만큼 장백희의 세련됨은 현재의 시간만을 살고 있는 인물과는 다른 원숙함이 배어나야 하는, 표현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이처럼 형체를 떠올리기 힘든 캐릭터지만, 장미희는 오랜 시간을 정상급 배우로 살아온 경험을 그대로 응축해 200년 동안 시대마다 유행한 옷을 모두 입어본 자의 여유와 이데올로기가 바뀌는 모든 순간을 살아올 수 있었던 새로움에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특히 이를 의상에 녹여내는 방식은 장미희가 실제 수 백 년을 살아 온 장백희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흑기사’에서 장백희 의상은 상위 0.1%를 위해서만 한정 제작되는 잡지 화보를 보는 듯 완벽한 비주얼로 표현된다. 그러나 잡지 화보가 스토리나 감정이 배제된 의상을 텍스트화 한 작업이라면 드라마 속 장백희 의상은 스토리 속에서 장백희와 함께 생동감 있게 살아있다는 점에서 명확한 차이를 드러낸다.
조윤희 실장은 “(장미희) 선생님이 워낙 ‘심리적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캐릭터의 연장선상에서 각각의 장면과 상황에 따라 의상 역시 그에 걸맞은 논리적 설득력을 가져야 합니다”라며 상황마다 컬러와 소재는 물론 디테일까지 세밀하게 고려해 설정했음을 밝혔다.
조윤희 실장의 설명은 드라마를 보는 듯 극적인 느낌까지 낸다. 그녀는 “샤론 양점점으로 들어서는 장면에서는 극적인 실루엣에 중점을 뒀습니다. 모던 아방가르드를 보여주는 독특한 실루엣의 외투 같은 아이템으로 여성스럽지만은 않은 중성적인 느낌을 주려했습니다. 무술을 할 때는 깃을 세우거나 A라인 실루엣에 벨트를 하는 등 스타일링을 통해 동작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연출했습니다”라며 마치 눈앞에서 장면에 펼쳐지는 듯 설명했다.
이 같은 세밀한 설정은 장백희의 감정을 배가하는 효과를 냈다. 장백희가 샤론 양장점을 찾는 순간은 뭔가 사건이 벌어졌을 때로 조윤희 실장이 밝힌 키워드인 ‘모던 카리스마’가 제대로 표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장백희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나는 집 안에서의 장면은 의상 역시 밖에서와는 전혀 다른 서정적 분위기로 뒤바뀐다.
“백희 공간은 신비로운 느낌으로 그런 효과를 줄 수 있는 의상에 신경을 썼다. 실내에서는 광택이 있거나 골드 원피스 같은 아이템으로,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는 무드의 디자인을 선택해 장백희가 어떤 사람인지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끔 하려 했습니다”라며 “블랙, 다크 그린, 머스터드 컬러나 톤다운 된 그린, 골드 컬러 등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깨지 않게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배우들의 의상이 현재 시점으로 전개되는 만큼 캐릭터의 상황보다는 배우의 상품 가치로써 위치가 우선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이유로 가난한 주인공들도 매회 핫한 의상으로 갈아입고 나오고 그런 상황을 시청자들은 기꺼이 용인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흑기사’ 속 장미희는 장백희의 물리적 심리적 상황까지 세밀하게 계산한 의상으로 영화 의상에 맞먹는 리얼리티로 그려냈다. 악연의 시발점이자 악연의 고리를 끊어내려는 해결사, 진정한 흑기사인 장백희가 장미희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게 될 마지막 지점이 궁금해진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KBS2 ‘흑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