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 읽기] 현송월이 전한 ‘촌티 보고서’, 패션의 모호함에 기댄 일반화 오류
- 입력 2018. 01.23. 10:08:19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북한 예술단 공연을 앞두고 북한 사전 점검단이 21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해 강릉에서 서울을 거쳐 22일 오후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기까지 1박 2일의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여론의 관심은 삼지연 관현악단장 현송월에게만 쏠렸다.
현송월
결론부터 말하면 현송월의 패션은 ‘촌스러웠다’. 그러나 그 촌스러움 앞에 붙은 잠재적 혹은 노골적 ‘북한 여자, 현송월’은 이라는 수식어가 옳은 판단 기준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 가르마를 타고 앞머리와 옆머리를 뒤로 넘겨 tvN ‘응답하라 1997’에서 재현된 당시 고등학생들의 ‘깻잎 머리’를 연상케 했다. 이뿐 아니라 서울 거리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짚게 핀과 반 묶음 헤어가 촌스럽다는 인상을 더욱 강하게 남겼다.
이뿐 아니다. 이제는 할머니 옷장 혹은 광장시장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법한 여우털 목도리를 둘러 ‘북한 여자는 촌스럽다’는 생각에 쐐기를 박았다.
그런데 막상 옷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촌스럽다’는 평을 걷어내야 한다. 짙은 네이비 코트는 H라인으로 절도 있게 떨어지는 실루엣으로 벨트 여밈 장식까지 너무 앞서가지도 뒤처지지도 않게 격과 감을 모두 충족했다.
이뿐 아니라 팬톤이 울트라 바이올렛을 ‘2018 올해의 컬러’ 선정한 이후 패션의 관심의 집중되는 퍼플 계열의 스커트는 네이비 코트가 진부한 스타일로 흐르지 않게 했다.
둘째 날 강릉에서 일정을 소화할 당시 입었던 블랙 원피스 역시 세련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으로 허리선의 아일렛 장식이 날씬해 보이는 효과를 주고 V 네크라인이 현송월의 동그랗고 넓은 턱 선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해외 언론을 통해 공개된 북한 거리, 과거 북한 예술단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북한 여자는 촌스럽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 발상일 수 있다.
물론 폐쇄된 사회에서 한국처럼 전 세계 패션 선진국과 실시간으로 유행을 공유할 수는 없다는 한계는 있겠지만, 한 나라 대표 자격으로써 패션은 유행보다는 ‘격’이 중시되는 만큼 ‘촌스럽다’라는 일반적 기준에서 평가할 수 없다.
최근 패션계는 앤드로지너스, 해체주의 등 성과 관념을 초월한 코드에 열광한다. 따라서 ‘전형적인 여성성’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있다. 멜라니아 트럼프 의상 역시 여성적이기는 했으나 ‘아방가르드’가 더해져 역시나 전형적 여성성에서는 살짝 비껴갔다.
이 같은 흐름에 비춰볼 때 ‘전형적인 여성성’에 충실한 반전 없는 현송월의 의상은 촌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 여자의 특성으로 규정짓는 이 촌스러움이 국내 톱스타 급의 몇몇 연예인들에게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여성성의 틀에 충실한 패션에 유독 심취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어떤 옷을 입어도 액세서리 혹은 디테일에서 특정 아이템이나 디자인을 고집해 어떤 옷을 입어도 결국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한 스타일리스트는 “자기 고집이죠. ‘코디가 안티’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실제 여러 벌의 옷을 가져다 줘도 그 중에 ‘저것만은 제발’이라고 생각하는 옷을 늘 선택하거든요. ‘이 옷은 안 돼’라고 말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그렇게 하기 힘든 것이 이 바닥 생리죠”라며 인기 많고 돈 많고 해외를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드는 몇몇 톱스타 급 연예인이 촌스럽게 보이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나 풀어줬다.
현송월의 촌스러움은 이제는 낯설어진 여성성에 대한 거부감일 수 있다. 매 시즌 빠르게 변화되는 흐름에 익숙해지면서 입는 것보다 보는 안목이 더욱 높아지는데 따른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패션이 시대 흐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냉철함’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패션은 ‘틀림과 맞음’이 아닌 ‘다름’의 기준을 판단해야 하다는 점에서 특정인 패션을 한 사회 전체의 패션 성숙도와 연결 짓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티브이데일리 뉴시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