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래동 카이스트’ 박호산, ‘제 2의 터닝포인트’ 만나 날개 달다 [인터뷰②]
- 입력 2018. 01.23. 13:57:36
- [시크뉴스 홍혜민 기자] 1996년 뮤지컬로 데뷔한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 온 박호산이지만, ‘슬기로운 감빵생활’ 속 문래동 카이스트는 시청자들에게 배우 박호산을 더욱 강렬히 각인시키는 디딤돌이었다.
“20년을 넘게 연기해 왔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저를 알아봐 주시는 거잖아요. 매체 방송, 신원호 PD, 좋은 팀, 좋은 작품을 통해서 나온 시너지가 겹친 덕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특별히 제가 연기를 잘했다기 보단 ‘다 차려진 밥상’ 소감 처럼 좋은 것들 속에서 제가 숟가락을 잘 놓았던 것 같아요. 신기하기도 하고, 행복하고 감사하죠.”
이처럼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관심과 애정에 연신 감사함을 표하면서도 박호산은 오랜 시간 연기의 길을 걸어왔던 만큼 책임감이 묻어나는 진중한 답을 덧붙였다.
“지금의 관심이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건 알아요. ‘문래동 카이스트’도 곧 잊혀지게 될텐데 그만큼 앞으로 맡게 될 새로운 캐릭터를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도 들죠. 이번 드라마를 보시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던 부분이 ‘새로운 인물들이 나왔다’는 거였는데, 저는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사람이 됐으니까요. 대신 앞으로 새로운 연기를 보여드려야겠죠. (다른 작품 제안도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방송 쪽에선 ‘슬기로운 감빵생활’ 출연 전까진 제가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배역 하나만 주세요’ 그랬었는데, 이제는 슬슬 차기작 제안이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건 너무너무 행복하죠. 표현하기 좋은 배역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요.”
‘슬기로운 감빵생활’ 속에서 박호산이 연기했던 문래동 카이스트는 이규형이 연기했던 해롱이 유한양과 톰과 제리 같은 앙숙 케미를 선보이며 소소한 웃음 포인트를 더했다. 오랜 시간 연극 무대에 올랐던 두 사람은 앞서 대학로에서 2인극 무대까지 함께 섰던 남다른 인연을 바탕으로 찰떡같은 연기 호흡을 자랑했다.
“원래 (이)규형이하고는 잘 알던 사이고, 처음 본 것도 아니라 합을 맞추기 편했어요. 이번 작품 전에는 서로 2인극까지 같이 하면서 합을 맞춰보기도 했었거든요. 극 중에서 두 캐릭터 모두 하이(high)한 성격인데다가 저랑 규형이가 평소 애드리브가 강한 성격이라 더 재밌는 장면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규형이의 ‘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지’는 애드리브였어요. 제가 해롱이에게 날렸던 니킥도 애드리브였고.(웃음) 그렇게 애드리브를 주고 받다가 그게 고정 멘트가 된거죠. 문래동 카이스트의 ‘지랄 땀따머거’는 처음엔 대사에 있었지만, 나중에는 제가 그냥 계속 밀었던 멘트였어요. 대본에 없는데도 계속 쓸 만하면 써먹었죠.”
문래동 카이스트를 비롯해 해롱이, 장기수, 팽부장 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향연이 이어졌던 ‘슬기로운 감빵생활’. 문득 박호산이 ‘문래동 카이스트’가 아닌 다른 역할을 맡게 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밀려들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제가 성동일 선배님 역할을 하게 될 줄 알았었어요. 배역 확정 전 미팅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읽어봤었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장기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우리 같은 단역들에게는 어차피 짧게 나온다면 반전이 있는 역할이 좋으니까 임팩트 있는 역할을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려고 했었어요. (리딩해봤던 캐릭터들은?) 나 과장, 교도소장, 고 박사, 팽 부장, 장기수, 조 주임, 명 교수까지 다양한 캐릭터들을 읽어봤었어요. 그런데 지금 저에게 캐릭터를 고를 수 있다고 얘기를 해주셔도 저는 문래동 카이스트를 할 것 같아요. 문래동 카이스트를 제외하고 끌리는 배역은 팽 부장이요. (정)웅인이 형이 워낙 잘 표현해주셨어요. 실제 웅인이 형 성격도 츤데레긴 하지만 너무 맛깔나게 연기를 해주셔서 저 역할은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물론 해수가 연기했던 제혁이 역할도 하고 싶죠. 그런데 애착이 갔던 캐릭터를 꼽으라면 팽 부장이에요. 정이 가요, 캐릭터에.”
전작인 SBS ‘피고인’에서 부장 판사 최대홍 역으로 중후하고 신뢰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던 박호산은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철 없는 캐릭터인 문래동 카이스트로 180도 변신하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입증했다. 캐릭터의 성격 탓일까, 새하얀 머리카락을 그대로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전작에 비해 외적으로도 한층 젊어진 듯 한 느낌마저 들었다.
“각 작품마다 다른 배역을 맡게되면 제 스스로의 톤이 바뀌는 것 같아요. 뭐랄까, 배역을 맡는다는 건 아주 친한 친구 하나가 생기는 것 같아요. 아주 친한 친구랑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닮아가잖아요. 연기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특징, 습관, 인격, 삶 등을 이해하게 되다보니 자연스레 표현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제가 문래동 카이스트와 친하기 때문에 카이스트스러운 모습이 된거고, 다음 작품을 만나면 발음도, 외적인 모습도 자연스럽게 바뀔 것 같아요.”
약 3개월간 시청자들을 울고 웃겼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마친 지금, 박호산에게 해당 작품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특별함으로 남았다.
“저에게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란 제 2의 터닝 포인트에요. 많은 의미를 가진 터닝 포인트요. 첫 번째 터닝 포인트였던 연극이 ‘왕의 남자’ 원작인 연극이었어요. 제가 공길 역을 했었는데, 당시 공연을 보신 많은 분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면서 너무너무 신이 났었거든요. 그 때 이후로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고, 큰 작품들도 할 수 있었던 만큼 잊을 수 없는 터닝 포인트였죠. 하지만 그 때는 마냥 기분 좋게 겁 없이 달렸었다면 지금은 책임감도 같이 생겼어요. 이제는 다시 터닝 포인트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제 3의 터닝포인트가 생기려면 헐리우드 진출 이런걸 해야 하는 거잖아요.(웃음)”
한층 어깨를 무겁게 하는 책임감과 함께 ‘제 2의 터닝포인트’를 지난 박호산은 앞으로 쉼 없는 연기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차기작은 마음속으로는 정해둔 상태에요. 사실 차기작을 고민하게 했던 건 ‘내가 잘 만들 수 있는 캐릭터’냐, ‘시작이 빠른 작품’이냐 두 가지 선택지 때문이었는데, 제일 좋은 건 빨리 오는 작품을 자신있게 표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래동 카이스트’가 그랬듯이 특색이 아주 강한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제가 잘 맡아서 그려보고자 해요. 어느 작품이든지 제가 가서 잘 해야죠.”
[홍혜민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권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