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톡] ‘염력’, ‘부산행’ 기대감 벗어난 연상호 감독의 영웅 판타지
- 입력 2018. 02.01. 00:00:00
-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지난 2016년 ‘부산행’으로 천만 감독 대열에 합류한 연상호 감독이 1년 6개월 만에 신작 ‘염력’으로 돌아왔다. 할리우드의 스릴러 영화에서 사랑받는 소재인 좀비를 다룬 ‘부산행’과 초능력을 소재로 한 ‘염력’. 판타지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하는 두 작품은 어쩐지 비슷한 느낌을 풍길 듯 하지만 ‘염력’은 이러한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다.
영화 ‘부산행’, ‘염력’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대한민국 곳곳에 퍼지고, 부산행 KTX 열차에 몸을 실은 이들이 좀비와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 ‘부산행’은 그동안 자연재해에만 국한됐던 기존의 재난 영화에서 벗어난 새로운 한국형 재난 영화로 각광받았다. 리얼한 좀비 분장과 연기, 화려한 스케일은 장르적 재미와 스릴을 최대치로 끌어올렸으며 익숙한 장소에서 출연한 좀비라는 낯선 존재는 관객들에게 신선한 공포로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공포감이 거세질수록 강조되는 주인공들의 영웅적 면모는 ‘부산행’ 흥행의 일등공신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좀비들을 뚫고 전진해가는 석우(공유), 상화(마동석)의 모습은 마치 히어로물의 주인공을 보는 듯 했다. 특히 맨손으로 좀비들을 무찌르는 상화의 모습에는 국내 관객 뿐 아니라 해외 관객들도 열광했다. 극도의 공포감을 자아내는 상황과 그 안에서 인류를 구한 영웅의 등장, 희망적인 결말까지. ‘부산행’은 재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을 최선을 다해 충족시켰다.
‘부산행’에 대한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았던 만큼, 자연스레 ‘염력’에도 많은 기대가 쏠렸다. “이번엔 초능력이다!”라는 카피와 함께 서울 하늘 한 가운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류승룡의 모습이 담긴 ‘염력’ 포스터는‘ 또 한 명의 한국형 히어로의 탄생을 기대케 했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염력‘은 관객들의 기대와는 다소 엇갈리는 전개와 주제로 인해 신선함과 실망감 사이의 경계를 맴돌고 있다.
아내와 이혼 후 평범한 은행 경비원으로 살아가던 석헌(류승룡)은 어느 날 갑자기 생각만으로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염력을 갖게 된다. 이후 그는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빠진 딸 루미(심은경)를 만나게 되고 딸을 돕기 위해 세상과 맞선다.
하지만 염력을 갖게 된 후에도 석헌은 여전히 허술하고 어설프다. 팔, 다리는 물론 눈동자와 혀까지 움직이며 염력을 사용하는 모습은 웃음을 유발하고 능력을 제어하지 못해 여기저기 부딪치고 넘어지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대개 영화나 드라마에서 초능력자는 두렵고 신비한 존재로 그려졌지만 ‘염력’의 초능력자 석헌은 인간미 넘치고 친근한 동네 아저씨일 뿐이다.
염력을 사용하는 상황 역시 소소하다. 석헌이 염력을 갖게 된 후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나이트클럽에서 마술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초능력으로 어떻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뿐이다.
이후 그는 재개발 문제로 건설회사와 싸움을 벌이는 루미와 이웃들을 적극적으로 돕지만 이 역시 온 철물들을 모아 진입로를 막거나 홍상무(정유미)의 차를 짓이겨놓는 정도다. 물론 극 후반부에서는 능력을 한껏 발휘해 적들을 무찌르고 루미를 구해낸다. 하지만 숨 가빴던 싸움을 끝낸 뒤 그는 “내가 졌다”며 자발적으로 경찰에게 연행된다. 결국 그는 교도소로 가게 되고 루미와 이웃들이 지키려했던 철거촌은 재개발이 진행돼 허허벌판으로 남게 된다.
공중을 날아다니며 딸과 이웃들을 위해 악과 싸우는 석헌은 액션영화의 히어로와 닮아있지만 초능력으로도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결말은 허무함을 남긴다. ‘부산행’의 석우, 상화가 위기 속에서 극적인 힘을 발휘하며 영웅으로 거듭난 것과 달리 ‘염력’의 석헌은 그 어떤 현실도 극복하지 못한 채 불완전한 영웅으로 남았다. 영웅이 주는 통쾌함의 부재는 ‘부산행’의 향수를 갖고 ‘염력’을 찾은 관객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할 가장 큰 이유다.
극중 홍상무가 남긴 “진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기도록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말처럼 연상호 감독은 ‘염력’을 통해 대기업을 상대로 힘든 싸움을 벌이는 소시민들의 현실에 집중했다. 그가 ‘부산행’의 스릴, 히어로 액션을 버리고 코믹과 리얼리즘을 택한 이유도 이러한 주제를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전작의 여운이 워낙 강렬한 만큼 그의 의도가 관객들의 기대감을 누르고 또 다른 흥행코드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김다운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