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염력’ 연상호 감독, ‘흥행 보장’ 대신 선택한 뚝심 [인터뷰]
입력 2018. 02.07. 00:00:24

연상호 감독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부산행’은 저한테 많은 기회를 열어 준 작품이고, ‘염력’은 그 기회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영화죠”

연상호 감독은 연신 자신을 ‘유명하지 않은 감독’이라 칭했지만, 그는 대중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감독 중 하나다. 그가 ‘부산행’ 이후 1년 6개월 만에 들고 온 신작 ‘염력’은 개봉 당일 2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화제를 모았고 ‘염력’의 홍보 문구에는 늘 연상호 감독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염력’이 개봉한 후 시크뉴스와 만난 연상호 감독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을 향한 대중들의 관심을 실감하는 듯 했다. 개봉과 동시에 영화가 2018년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대중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무엇’에 대해 고민했다고.

“스코어를 보는 건 아니기 때문에 덤덤한 편이었다. 3일째 되니까 ‘나한테 기대감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사람들이 나한테 하는 기대감은 뭐였을까 생각하게 됐다”

‘염력’은 염력을 갖게 된 석헌(류승룡)이 재개발 문제로 건설회사와 싸움을 벌이는 딸 루미(심은경)를 돕는 이야기를 그린다. 초능력자와 도시개발이라는 소재는 연상호 감독이 대학 시절부터 생각해오던 아이템 중 하나였다.

“대학 다닐 때 단편만화 구상을 많이 했는데 그때도 이런 키치적인 아이디어가 많았다. 초인인데 채무에 시달린다거나 그런 식의 단편 만화들이 꽤 있었다. 거기서 출발했다. 제 선배 세대들의 이슈가 민주화와 관련된 것이었다면 저희는 도시개발에 대한 이슈가 많았다. 대학교 초반에 가지고 있던 그런 아이디어들로 만들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염력’에서 도시개발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연상호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있다. 영화 속에서 다수의 이익이라는 이유로 소수를 무참하게 짓밟는 세력과 그 속에서 ‘인간적인 것’들을 지키려는 이들의 모습은 그가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보여준다.

“지금 홍대 앞에 ‘걷고 싶은 거리’라고 돼 있는 부분이 제가 대학교 1학년 때는 떡볶이 촌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개발이 되다 보니 거기를 싹 밀고 술집이 많이 들어와 있더라. 그게 더 나은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계속 반듯한 건물들을 짓는 게 좋은 건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산업화에 의해서 거대한 다수의 편의를 위해 소수의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내모는 경우가 있지 않나. 아무리 다수가 동의를 한다 하더라도 소수를 몰아내는 것이 맞는가. 그런 측면에서 인간적인 것을 얼마나 중요한가.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었다”

특히 연상호 감독은 소수를 압박하는 세력에 속한 악인들에게도 ‘인간적인 매력’을 가미했다. 극 중 루미와 상인들을 괴롭히는 민사장(김민재)은 악인임에도 어딘가 허술하고 빈틈이 느껴지는가 하면 홍상무(정유미)는 악랄한 말과 행동을 일삼으면서도 사랑스러운 매력이 동시에 느껴진다. 결국 이들도 잘못된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기획할 때 인간적인 초인과 무생물인 시스템의 싸움을 그리려 했다. 여기에 포함되는 인간들은 여러 의미로서의 동지라고 생각한다. 시스템 밑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떤 캐릭터에다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악마성을 부여해서 그걸 처단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영화의 엔딩 역시 정확한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지 않는다. 석헌은 딸과 상인들을 구해냈지만 결국 징역을 살게 됐고 루미는 철거촌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가게를 열었다. 건설회사는 재개발에 돌입했지만 시공에 차질을 빚게 됐고 결국 부지는 허허벌판으로 남았다. 연상호 감독은 통쾌한 한 방으로 드라마틱한 결말을 맺는 대신, 패배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그리고 싶었다.

“이 영화가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었다. 콘셉트 자체가 인간 대 시스템의 대결구도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시스템을 부수는 카타르시스를 주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엔딩이 누가 이기고 지냐의 관점에서 버리기를 바랐다. 승리한 시스템이 가진 허무한 공간과 패배한 인간들이 갖고 있는 인간적인 모습들의 중요성 같은 걸 보여주는 게 맞겠다 싶었다”

하지만 ‘염력’으로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표현한 그의 노력을 모든 대중들이 공감하지는 못했다. 강렬한 액션도, 시원한 결말도 없는 ‘염력’은 ‘부산행’ 감독의 신작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실망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연상호 감독 역시 이러한 대중들의 반응에 많은 생각이 든 듯 했다.

“똑같은 영화를 만들려고 (영화를) 하는 건 아니다. 감독으로서 이런 것도 만들고 저런 것도 만들 수 있는 거지 않나. 그런데 ‘부산행을 만든 감독한테 기대하는 뭔가가 있구나. 그게 다양하지는 않구나’라는 걸 느꼈다. 대중이라고 하는 게 사실 그 모습을 잘 알지 못하는 거고 (이런 반응은) 일종 부분의 현상이다. 그런데 이 정도까지의 현상은 예측을 못 했다. 블랙 코미디라서 당황스러운 건지, 철거촌이 당황스러운 건지, 본격적인 장르물이 아니어서 그런 건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부산행’ 같은 경우에는 장르적 성격이 굉장히 강했고 대중들이 좋아할 수 있는 장르였다. 코미디를 사회적인 것과 결합하는 자체가 불편했을 수도 있고. 사회적인 거는 진지하게 다루고 코미디는 웃기게 만드는 걸 더 편하게 여기시는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력’은 연상호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남았다. ‘부산행’의 성공으로 얻은 소중한 기회였던만큼, 그는 ‘염력’을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올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염력’이라는 하는 영화를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고 필모그래피에서 좋아하는 영화로 만들어진 것 같다. 제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만들기 힘들고 특이한 영화다. 한국영화들 사이에서 이 영화가 자리할 수 있는 것도 특이한 것 같다. 이 영화는 이 영화 나름대로 좋아해주는 관객들과 더불어 잘 살 것 같다”

[김다운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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