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글러스‘ 강혜정, 워킹맘이 워킹맘을 연기하다 [인터뷰]
입력 2018. 02.19. 10:45:28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신나고 살아있는 것 같고 재미있더라.”

배우 강혜정이 15년 차 전업주부이자 신입 비서인 워킹맘 왕정애 역을 맡아 5년 만에 드라마로 시청자를 만났다.

강혜정은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모처에서 지난 23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저글러스’(극본 조용, 연출 김정현 강수연)의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저글러스’는 신이 내린 처세술과 친화력으로 프로서포터 인생을 살아온 여자와 타인의 관심과 관계를 전면 거부하는 철벽형 남자가 비서와 보스로 만나 펼치는 관계역전 로맨스다.

“(처음에) 대본을 1~4부까지 봤다. 정말 빨리 읽혔다. 드라마가 가진 스토리 자체가 매력적이고 쉽게 읽히니 ‘보는 사람도 쉽게 보겠구나. 이렇게 가면 진짜 재밌겠다’라고 생각했다.”

‘저글러스’는 비서라는 직업의 특성, 고충 등을 보여준다. PD·작가가 비서 커뮤니티를 조사하고 실제 비서들 몇몇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극 중 비서가 상사 대신 이별을 통보한 ‘대리이별’ 같은 경우 실제로도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같은 케이스다. 그 드라마가 실제 범죄자들을 리얼하게 그렸으면 슬감처럼 훈훈하지 않을 수 있겠다. ‘저글러스’도 실제 비서들의 업무, 그들의 생활·사실만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면 사실 로맨틱 코미디가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수 있다.”

이번 드라마에서 그녀는 37살 왕정애에서 29살 왕미애에 이르기까지, 8년을 넘나드는 연기를 보여줬다. ‘걸크러쉬’가 느껴지는 그녀에게 귀여운 연기는 쉽지 않다고.

“불편했다. 나와 전혀 안 맞는다. 내 취향과 상관없이 해야 한다. 내게 그런 귀여운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오글거리고 힘들다.”

왕정애는 전업주부로만 15년을 살아오다 비서일을 맡게 된 인물이다. 오랜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강혜정 역시 왕정애와 같은 인물에게 많이 공감하지 않았을까.

“8년은 쉰 기분이다. 중간중간 일을 하긴 했지만 긴 호흡으로 갔던 건 없었다. 사회생활을 오랫동안 안 했다고 생각하면 오랜만에 사회에 첫발을 디뎠을 때 무릎 꿇고 앉았다가 한 시간 뒤 일어난 기분일 것 같다. 찌릿 거리고 후들거리고 내 의지대로 안될 것 같다. 연기를 하고 싶은 갈망이 있었는데 이번에 같이한 사람들이 서포트를 해줬고 분위기가 좋아 금방 괜찮아지더라. 정애 역시도 율(이원근)의 비서가 되고 나서 사회생활을 하나씩 배워 나중엔 윤이(백진희) 못지않은 저글링을 한다.”

왕정애와 마찬가지로 워킹맘인 그녀 역시 워킹맘의 고충에 공감할 만하다.

“그래도 보통의 워킹맘에 비하면 나 같은 경우 도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케이스긴 하다. 집안 식구들도 그렇고 비교적 마음 많이 놓인 상태에서 일할 수 있다. 왕정애 같은 경우 그냥 워킹맘이 아니라 집안의 기둥을 잃은 상황이다. 남편이 사채를 지고 도망가 극단적으로 더 힘들지 않았을까? 난 사실 휴가 나온 기분이었다. 일하러 나갈 때 상당히 마음이 가볍고 좋았다. 남편이 양육을 도맡아 한다. 할머니가 도와주지만 그래도 내가 한 역할의 바통을 받는 것 같았다. 내 역할까지 얹어 하는 입장이었는데 잘했다. (딸이) 워낙 떼쓰는 타입이 아니어서 속으론 아쉽고 보고 싶더라도 잘 이해해주더라. 그런 여지를 주지 않도록 아빠가 진짜 잘 놀아준다.”

왕정애는 15년 차 전업주부이자 YB 스포츠 사업부 신입 비서로, 갈수록 두 가지 모두를 잘 소화해 나간다. 실제 강혜정은 주부와 배우 가운데 어떤 것에 더 자신감을 지녔는지 궁금했다.

“(집안일과 일) 둘 다 잘한다. 점점 실력은 느는데 요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외식이 너무 좋다.(웃음)”

결혼 후 배역 등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을 통해 공감했던 부분을 떠올렸다.

“‘효리네 민박’에서 효리 언니가 아이유를 상대로 하는 말이 되게 공감됐다. 언젠가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잖나. 나이 든다는 것과 후배가 생긴다는 건. 내가 늘 20대 같이 살 순 없는 거니 흐름에 순응하기 위해 마음을 다부지게 먹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효리 언니처럼.”

그녀는 자신이 계속해서 주연을 맡아야 할 것 같은 이미지보다는 배우로서의 스펙트럼 넓어지는 것을 꿈꾼다. 어느 자리에 가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게 그녀의 목표다.

“주연, 조연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은 시대인 것 같다. 임팩트 있는 캐릭터, 흡인력 있는 작품 등 그런 게 중요하기에 열어놓고 보려고 한다. 라미란 언니가 ‘위너’라 생각한다. 주조연, 뭘 해도 괜찮더라. 그렇게 되고 싶다.”

그녀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호흡을 맞춘 배우들과 많이 만나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그 덕분인지 현장의 분위기도 편하게 흘러갔다.

“사실 여배우를 여럿 뭉쳐놓으면 은근 기 싸움도 할법한데 이 친구들(백진희 차주영 정혜인)은 일체 신경 안 쓰는 털털한 친구들이다. 자기 욕심 안 부리고 하나의 큰 덩어리로 생각하고 흐름대로 가려 했다. 누군가 애드리브를 하면 살리려 배려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현장이 뻣뻣하고 긴장돼있고 너무 불안하고 불편하면 좋지 않은데 (최)다니엘 씨가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꾸준히 해줬다. 영상사업부 촬영 땐 드라마 촬영인지 콩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합이 잘 맞았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났다. 다니엘 씨가 아이디어 내느라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그녀는 YB 스포츠사업부 이사 황보 율을 연기한 이원근의 비서로서 그와 가장 많은 시간 호흡을 맞췄다.

“(이원근은) 진지하다. 정말 연습 많이 하고 독특한 발성을 쓰다 보니까 처음엔 좀 신기했는데 나중엔 중독성이 있더라. 호흡이 좋았다.”



강혜정은 지난 2009년 에픽하이의 타블로와 결혼, 2010년 딸 이하루 양을 출산했다. 어느새 9살인 딸 하루와 남편 등 가족이 있어 힘을 얻는다. 그녀의 손목에 새겨진, 하루가 4~5살 때 처음 그린 수달을 평생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그려 넣었다는 타투가 눈에 띄었다.

“식구들이 이 드라마를 되게 좋아했다.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드라마였다. 다들 한결같이 방송 시간을 기다렸다. 후반부에 하루가 촬영장에 놀러 온 적이 있는데 자신이 현장에서 본 장면이 또 나온다는 말에 신기해하더라. 그걸 기다리다 자기가 본 장면이 나오니까 되게 반가워하더라. 추억으로 간직할 것 같아 자주는 못 하겠지만 마지막에 이벤트성으로 해주고 싶더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올 때만 해도 하루가 5살이었는데 그때와 달리 지금은 역할과 그 역할을 맡은 배우를 구분하더라. 엄청 큰 발전이다.”

싱어송라이터인 아빠와 배우인 엄마를 둔 하루는 어떤 꿈을 갖고 있을지 궁금했다.

“드라마 촬영장과 콘서트장은 비교가 안 된다. 콘서트장이 훨씬 볼거리가 많고 다이나믹하다. 얼마나 재밌나. 드라마 촬영장은 조용하다. 그런데 나름 거기서 즐기고 있더라. 감독님이 보라고 하면 앉아서 모니터 보고 있고. 즐기고 있더라. ‘직업적 스펙트럼, 꿈의 가짓수가 더 많아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 강혜정과 영화 ‘올드보이’(2003)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유지태가 ‘저글러스’에 ‘매드독’의 최강우 팀장의 모습으로 특별 출연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매드독’을 보던 사람으로서 갑자기 세계관이 여기 포함돼 버리니 되게 묘하더라. 좋았다. 오랜만에 뵙는데도 워낙 그대로여서 오랜만 같지가 않았다. 항상 똑같은 미소와 키와 몸매와 말투다. 물론 그의 연기세계는 엄청나게 많은 산을 쌓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매너좋은 사람으로 남아있다.”

많은 사람에게 강혜정의 영화 ‘웰컴투 동막골’(2005)에서의 이미지가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다. 그만큼 강한 인상을 심어줬지만 그것이 부정적 꼬리표로 남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아주 잠깐 ‘난 동막골에서 멈췄나?’ 생각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해줬으니까. 그런데 언젠가 배우일을 하고있는 친구가 내게 ‘그런 대표작을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아느냐? 그것만으로도 많은 재산을 가진 것’이라 얘기해줘 고맙더라. 그때부턴 되게 자랑스러웠다.”

‘저글러스’는 강혜정의 필모에 있어 ‘리스타트’의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5년이란 공백기를 말씀해주시는데 인터뷰하면서 내가 5년 쉬었단 걸 알았다. 쉼 없이 가겠다는 건 아니고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5년은 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생겨 앞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 같다.”

21년 차 배우 강혜정이 바라보는 자신의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대해 들었다.

“여유가 좀 생긴건지 배짱이 생겼는지 모르겠는데 한 번에 바뀌는 건 없더라. 나이 들어서도 연기하는 사람이 ‘위너’라 생각한다. 스펙트럼을 늘리고 연기를 배워가며 역할에 선입견을 갖지 않고 좋은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 예나 지금이나 조급해 말고 나이 드는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이다.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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