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MeToo] '미투 운동'에 불 지핀 이윤택의 '관습'
입력 2018. 02.20. 11:14:31
[시크뉴스 안예랑 기자] “그는 극단 내의 왕이었다” 몇 십년 간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의 침묵 속에 유지됐던 이윤택의 왕국이 7일 만에 무너지면서 '미투 운동'은 활기를 더했다. '미투 운동'에 불을 지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윤택의 공식적인 사과였다.

지난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미투(MeToo) 운동’(성범죄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폭로하며 그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에 동참했다. 이윤택의 추악한 실체를 알리는 글이 일파만파 퍼지며 이윤택의 극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김수희의 폭로로 연극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며 존경 받아왔던 이윤택이 밤마다 안마를 빙자해 성기 주변을 주무르게 하는 등 극단 내 여성 단원들을 성추행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히 충격적인 김수희의 폭로에 이어 이번에는 이윤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등장했다. 한 사이트에 익명으로 글을 올린 김씨는 19살, 20살 두 차례에 걸쳐 이윤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윤택이 여성들을 성추행 했던 장소를 ‘황토방’이라고 지칭했다.

이윤택의 ‘황토방’은 이윤택의 추악한 성추행과 모두에게 극찬 받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모순된 공간이기도 했다. 극단의 여러 단원들이 그 방을 오고 갔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모두의 묵인 속에 더 많은 피해자만 양산했다.

김 씨는 연희단 거리패 내의 상황에 대해 “최고의 연극 집단 중 하나라는 그 집단의 우두머리를 모신다는 명목으로 마치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 각자에게 일어난 일과 목격한 일을 모른 체 하며 지냈다”고 밝혔다.

이윤택을 둘러싼 ‘MeToo’ 운동에 새롭게 동참한 이승비는 “발성 연습을 하자고 했다. CCTV도 없는 그 곳에서 왕 같은, 교주 같은 존재이기에 연습에 응했다. 대사를 치게 하며 온 몸을 만졌다”면서 이윤택의 성추행을 거절하고 도망쳤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당시 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역시 연희단 거리패여서 모든 것을 묵인했다”고 말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수 많은 폭로가 이어지자 이윤택은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적인 사과의 뜻을 전했고, 이윤택의 무소불위 권력의 발생지였던 연희단 거리패는 해체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것이 이윤택의 마지막은 아니었다. 이윤택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행한 성추행을 “관습적으로 행해진 나쁜 행동”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정의 내렸다. ‘관습’이라는 말로 포장되기에는 피해자가 지닌 상처가 컸고, 피해자에 대한 정확한 사죄 없는 반성은 피해자를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19일 기자회견 직후부터 이윤택의 무책임한 사죄에 대한 분노와, 그의 추가적인 행태에 대한 폭로전이 다시 한 번 시작됐다.

김지현 전 연희단 거리패 단원도 분노한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김지현은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모든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 것이라고 그래서 제가 받은 상처도 치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에서 기자회견장에 갔다. 그러나 선생님께선 전혀 변함이 없으셨다. 특히 성폭행 부분에서 강제성이 없었다는 말씀에 저는 기자회견장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이윤택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 낙태를 겪었다고 밝혔다.

김지현 또한 ‘황토방’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그는 2005년 임신 했고, 친한 선배에게 말을 한 뒤 조용히 낙태를 했다. 낙태 사실을 안 이윤택은 김지현에게 200만원을 건네며 미안하다는 무의미한 사과를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잊혀져 갈 때 쯤 그의 성폭행이 또 시작됐다. 김지현은 당시 이윤택이 김지현을 향해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던 아이이기 전에 자신의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JTBC ‘뉴스룸’에서도 폭로가 이어졌다. 자신을 극단의 전 단원이라고 소개한 A씨는 “본격적으로 피해를 당한 것은 2004~5년 정도였다. SNS에 나왔듯이 '안마'라는 이름으로 수위를 넘어서는 행위를 강요받았다. 그리고 '나는 너와 너무 자고 싶다'고 하면서 옷 속으로 손이 들어와 피한 적이 있다. 발성연습을 할 때도 다리 사이로 나무 막대를 직접 꽂기도 했다”고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밝혔다.

이윤택이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주장한 데에 대해서는 “그 당장 자기의 상황을 면피하기 위해서 그 피해를 받고 힘들어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면피 식으로 넘어가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신체적으로, 강압적으로 행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요구를 거부했을 때 권리를 이용해서 여자 단원들을 향해 폭언하고 면박을 주고, 협박을 하고, 역할을 다 자르는 게 물리적 강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그 여자 단원들이 전부 이윤택 선생님을 사랑해서 그랬다는 건지 궁금하다. 저는 납득이 안된다"며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A씨의 인터뷰는 왜 여태까지 극단 내 성추행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그는 "안마를 거부하면 극단 안에 캐스팅롤을 정할 때 극단 사람들을 불러놓고 그 여자 단원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를 마구 하면서, 그 전에 캐스팅됐던 역할에서 배제시키는 작업이 이루어진다"면서 "연극계라는게 바닥이 좁고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보니까 갓 입문한 배우같은 경우에는 소위 '찍힌다'라고 하면 다시는 다른 데 가서 연극을 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윤택을 왕으로 만든 것은, 그를 왕처럼 떠받드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A씨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여자 선배들이 나서 “이런 게 알려지는 게 선생님한테 누가 되는 거다”며 피해자를 비난하고 질책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조직적인 은폐 뒤에는 성추행을 종용한 이들도 있었다. A씨는 대표적인 인물이 연희단 거리패의 김소희 대표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김소희 대표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얘기했지만 제가 있었던 2000년대 중반까지는 기수가 높은 선배였다. 그때 안마를 조력자처럼 시키고, 후배들을 선택했다. 과일을 들고 선생님 방에 들어가라고 했는데 제가 거부했다. 그때 과일을 들고 있던 쟁반을 가슴팍에 치면서 '너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이냐. 너 하나만 희생하면 다 편해지는데 왜 너만 생각하냐. 빨리들어가라'고 종용했다. 그게 더 큰 상처였다. 그런 성추행 행위를 당한 것보다 그것을 옆에서 부추기고, 종용하고, 면박을 주는 여자 선배들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더 많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음악극단 ‘콩나물’의 이재령 또한 추가 폭로에 동참했다. 그는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이 선생님이 안마 중독자라고 본인이 스스로 얘기하시고 저희도 다 알고 있었다. 저희가 안마하는 그 팀이 있었다. '안마조'라는 걸 만들어서 2명씩 짝을 지어 실행했다. 남자는 1명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안마였는데 점점 곤란한 안마로 진행이 됐다. 하의는 팬티만 입고 계신다든지 바지를 입고 계시다가 성기 쪽 안마를 받고 싶다 하며 바지를 내리신다든지 다양한 형태였다. 제가 있을 때는 전체 기수 중 90% 이상이 당연히 해야 했다”고 말했다.

매 년 한 기수씩만 들어와도 몇 십명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90% 이상이 안마에 동참했다. 추정할 수 있는 피해자만도 수 백명일 것이라는 게 전 단원들의 이야기다. 이윤택의 견고했던 명성과 극단은 무너졌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이윤택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과는 당사자에게, 자수는 경찰서에', 이윤택의 공식 기자회견에 등장했던 말처럼,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길은 추행 사실을 '관습'이라는 말로 덮는 것이 아닌 직접적인 사과와 응당한 처벌일 것이다.

[안예랑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시크뉴스DB, MBC 화면 캡처, SNS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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