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퍼즐] ‘위대한 캐츠비’의 작가와 여비서, 그리고 미투운동
입력 2018. 03.12. 10:41:11

영화 '위대한 개츠비' 2013년. 1974년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는 윌리엄 포크너, 어니스트 헤밍웨이, 싱클레어 루이스, 존 도스 파소스, 에즈라 파운드, T. S. 엘리엇 등과 함께 192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피츠제럴드는 1920년대 화려하고도 향락적인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무너져 가는 미국의 모습과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의 무절제와 환멸을 그린 작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대한 캐츠비’(The Great Catsby, 1925)가 그의 대표작이다.

‘위대한 캐츠비’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미국을 배경으로 황폐한 현대 물질문명 속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돈의 힘을 얻었다가 몰락한 남자의 꿈과 좌절’이 기둥 줄거리이다. 그 무렵 뉴욕의 유산 계급에 관한 퇴폐상을 비판한 내용이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의 구미를 당겨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졌다.

영화 ‘위대한 캐츠비’는 할리우드에서 그동안 세 번 만들어졌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패로우 주연 잭 클레이톤 감독의 1974년 작품을 시작으로, 2001년에는 로버트 마르코비츠 감독이 토비 스티븐스와 미라 소르비노를 주연으로 기용해 만들었고, 2013년에는 바즈 루어만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캐리 멀리건 주연의 동명 작품이 제작됐다.

한 작가의 작품이 그의 사후 70여년 세월에서 세 번이나 리메이크 되었다는 사실은 원작이 지닌 무게가 그만큼 가볍지 않다는 의미다. 영화 ‘위대한 캐츠비’ 포스터에 쓰인 ‘전 세계를 감동시킨 위대한 고전’, ‘타임지 선정 20세기 100대 소설’, ‘스크린에 화려하게 부활한 영원한 베스트셀러’ 등의 카피 문구가 그 무게감을 입증하고 있다.

위대한 고전을 후세에 전하고 있는 소설가 피츠제럴드. 그는 사랑과 욕망을 작품의 소재로 삼고 있는데, 작품이 작가의 직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고 전제했을 때, 그의 인생에서 차지한 사랑과 욕망의 비중이 궁금하다.

그의 애정 편력은 그리 유별나지 않다. 한 번의 결혼, 한 번의 동거 경험이 전부이다. 그는 23살 때 앨라배마 주 판사의 딸인 젤다 세이어와 결혼한다. 이 결혼은 평범한 가정 출신인 그가 상류사회로 진입한 계기가 된다. 하지만 그 자신의 상류사회에 대한 지나친 욕망과 아내의 향락적인 생활 탓으로 부부 모두가 파탄에 이른다. 그 자신은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하고, 아내는 결국 정신병동에 입원하고 만다.

그러나 41살(1937년)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서 재기했고, 그곳에서 당시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칼럼니스트 실라 그래엄과 사랑에 빠져 동거하기에 이른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가끔 술에 취해 불만을 터뜨리고 폭력을 쓰기도 했지만 죽기 직전까지 그녀와 비교적 평온하게 살았다.

피츠제럴드는 44살에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이때 그의 곁을 지킨 사람은 그의 아내도, 동거녀도 아니었다. 아내는 여전히 정신병동에 있었고, 동거녀는 피츠제럴드의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 그의 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임종을 지킨 사람은 당시 그의 비서였던 24살의 프랜시스 크롤(1916~2015)이란 여성이었다. 그의 장례식은 ‘위대한 캐츠비’에서 캐츠비의 장례식처럼 쓸쓸했다.

피츠제럴드가 죽기 1년여 전, 무직 상태에 있던 23살의 크롤은 일자리를 구하러 직업소개소를 찾았다가 작가의 비서로 일을 하게 된다. 그 작가는 건강이 나빠져 지인의 시골별장에 머물러 있던 피츠제럴드였다. 크롤은 이후 20개월을, 피츠제럴드가 삶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비서로, 사적인 얘기까지 털어놓는 친구로, 골프 파트너로 그와 함께 했다.

하지만 피츠제럴드와 크롤 사이엔 어떤 로맨틱한 관계도 없었다. 피츠제럴드 사후에 결혼해 ‘프랜시스 크롤 링’이 되는 크롤은, 이후 자신의 고향인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작가와 편집자로 활동했다.

그녀는 자신이 보필한 작가의 사후에도 생전에 하던 것과 다름없이 성실했다. 정신병원에 있던 피츠제럴드의 아내(젤다)와 딸(스코티)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고, 작가의 세무관계를 정리하고, 원고들을 모아 윌밍턴에 있던 작가의 유언집행인 존 빅스 판사(피츠제럴드의 프린스턴 재학시절 친구)에게 보내고, 또 작가의 시신이 들어갈 관을 직접 골랐다. 그녀는 자신의 여생 내내 연구자이며 열렬한 독자로서 피츠제럴드와의 기억을 아낌없이 공유했다.

크롤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문학의 스승이었고, 동반자였던 피츠제럴드의 일생을 그린 소설 ‘라스트 콜’(Last Call)을 출판했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피츠제럴드 역을 맡았던 동명의 영화 ‘Last Call’(2002)의 원작자는 바로 그녀였다.

‘미투운동’이 한창인 이때 이 나라의 문화예술인들에게 피츠제럴드와 크롤의 이야기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피츠제럴드와 크롤의 짧지만 영원히 기억되는 인간관계의 새로움이다. 스승과 제자의 베풀고 나눠주는 갑을관계,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남녀관계가 그리도 어려울까. 남성이든 여성이든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저런 친구를 가지려면 먼저 나부터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만.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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