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읽기] 안희정 성추문이 잠재운 영화계 미투 운동 ‘피해자만 남긴 사건’
- 입력 2018. 03.15. 16:14:50
-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연예계를 뒤흔들었던 미투 운동이 조민기 사망과 안희정 전 도지사 성 추문으로 인해 사태가 급반전됐다.
조근현 감독, 최일화, 김기덕 감독
서지현 검사가 철옹성 같은 검찰계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며 시작된 미투(#MeToo) 운동이 안희정 전 도지사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정치계 당파 싸움으로 변질되면서 ‘하비 와인스타인 퇴출’ 같은 극적 결말을 국내에서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룸’ 데스크에서 검찰 성폭력 비리를 고발할 당시만 해도 한국 내 권력을 무기로 행사되는 성폭력이 근절을 향해 한 발 다가선 듯했다.
연극 연출가 이윤택의 추문이 대중 문화예술계의 미투 운동의 시작이었지만 방송가로 옮겨오면서 조재현 오달수가 출연 중이거나 출연이 예정돼있던 드라마에서 하차하는 등 성추문 후폭풍이 일파만파 확산됐다.
표면상 연극, 방송계가 미투 운동의 중심에서 가장 큰 파문이 인 듯했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것은 영화계였다. 방송은 추문 당사자인 배우가 ‘하차’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지만 영화는 방송과 달리 촬영을 마쳤거나 촬영 중인 상태에서 하차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을 뿐 아니라 논란이 되는 배우들을 편집을 통해 잘라내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투 운동 파문이 한창이었던 2월 말 한 영화계 관계자는 “촬영장이 뒤숭숭하다. 남자 배우들은 몸을 많이 사린다”라며 뒤숭숭한 현장 상황을 전했다. 복수의 영화 관계자들은 소속사 관계자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속 배우들 뒷조사와 뒷수습에 나서고 있다며 조심스럽게 영화계에서 오가는 말들을 전하기도 했다.
불과 2주 전만해도 성추행을 시인했으나 성폭행 사실이 추가로 알려지면서 드라마에서 하차한 최일화의 경우 촬영을 마친 영화가 편집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관계자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한 관계자는 “미투 운동은 그간 심각했던 연예계 성 차별 문화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라며 지지를 보내면서도 “문제는 상황이 애매한 경우다. 어떤 경우는 사귄 것과 성폭력의 선이 분명치 않다”라며 미투 운동의 명암을 언급했다.
그러나 조민기의 사망으로 미투 운동은 수그러들면서 폭발 직전이었던 성추문 폭탄이 적어도 영화계에서만큼은 불발탄이 된 듯한 형국이다.
영화 ‘흥부’ 조근현 감독은 성폭력이 불거진 이후 현재까지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김기덕 감독 역시 영화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배우 폭행에 이어 배우를 대상으로 한 성추문 사건까지 들춰졌음에도 MBC ‘PD수첩-거장의 민낯’이 방영된 6일 이후 충격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며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직장과 가정 생활을 병행하는 기혼 여성의 관점으로 여배우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던 배우이자 감독 문소리는 12일 진행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식에 참석해 고해성사를 하듯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이거나 방관자였고 암묵적 동조자였다”
미투 운동으로 하루아침에 성폭력이 근절될 수는 없다. 1년이고 2년이고 원하는 결말이 나올 때까지 이 상황에만 매달릴 수는 없지만 조용히 매듭지어지는 듯한 지금 같은 결말은 분노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허무할 따름이다.
아마도 이번 미투 운동은 정치적 문제를 연예계 사건사고로 묻으려한다는 그간의 음모론을 뒤집는 첫 사건으로 역사에 남게 될 수도 있을 듯하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티브이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