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퍼즐] ‘미스티’, 이 드라마가 남겨준 찜찜함의 정체
입력 2018. 03.26. 11:52:35

JTBC '미스티'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매회 화제의 중심에 섰던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연출 모완일)는 올해 1/4분기 최고의 드라마로 종영됐다. 시청률은 물론 화제성 지수에서 이는 입증된다. 마지막 회(16회)에서 시청률은 전국 8.5%(닐슨코리아)로 자체 최고 기록을 갱신했고, TV화제성 순위에서도 줄곧 2위(굿데이터)를 유지했다. 이만하면 ‘성공작’이다. 그런데도 여기저기에서 ‘찜찜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왜 일까.

‘미스티’ 영어로는 ‘Misty’이다. ‘’안개가 자욱한‘, ’‘안개 모양의’, ‘어렴풋한’ 등의 뜻으로 쓰이는 형용사다. 무엇인가 확실하지 않은, 끝이 잘 보이지 않는, 흐릿한 모양새를 말한다. 사건 사고의 경우 그 결말을 짐작할 수 없을 때 쓰는 표현이니 드라마 ‘미스티’는 제목에는 충실했다. 여러 차례 반전을 통해 궁금증을 더했으니 극 전개도 이와 어울렸다. 진실을 묻어버린 결말도 ‘미스티’하다. 그래서 깔끔한 결말을 바랐던 시청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모든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안녕을 말하지 않는다. ‘세드엔딩’도 잘못된 문법은 아니다. 하지만 ‘세드엔딩’은 ‘해피엔딩’에 비해 훨씬 높은 당위성을 요구한다. 시청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해피엔딩’인 이유도 시청자의 동의를 쉽게 얻어내기 위해서이다. ‘미스티’는 ‘세드엔딩’을 선택했다.

‘미스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모두가 불행하다. 꿈을 이루지 못한 고혜란(김남주), 자살을 택한 강태욱(지진희), 남의 죄를 스스로 뒤집어쓰는 하명우(임태경), 세 여성과 사랑을 나누고 결국 살해당하는 케빈리(고준), 남편을 잃고 약자 코스프레에 안간힘을 써야 했던 서은주(전혜진) 등등, 어느 한사람 행복한 사람이 없다. ‘세드엔딩’이라고 해서 모두가 불행하거나 슬픈 처지에 놓여서는 드라마의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불행한 저편에는 행복한 이쪽이 남아 있어야 균형이 잡힌다. ‘미스티’에는 행복이 보이지 않는다. 행복과 불행의 갈등을 봉합하는데 실패했다.

‘미스티’가 그려낸 여성상도 시청자의 동의를 얻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특히 최근의 ‘미투운동’과 동떨어진 여성상이란 지적이다. 고혜란은 이 드라마에서 젊은 여성의 ‘워너비’이다. 시청자들은 그의 행복한 결말을 기대했다. 많은 남성의 압박을 이겨내고 이 게임에서 승자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고혜란은 세 남자의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넣었고, 그 자신도 “행복하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결말은 힘겨운 현실을 딛고 여성이 성공하려 해도 그 대가로 모든 행복을 잃을 수 있다는 이 사회의 경고처럼 보인다.

고혜란 뿐 아니다. 남편을 잃은 여성 서은주나 출세욕에 스캔들을 일으키는 한지원(전기주), 후배의 출세를 질투해 남편인 검사에게 징징대는 아나운서 이연정(이아현)도 남성에게 수동적인 허약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여성이 주인공이면서도 스토리 전개는 남성우월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지적도 이 때문에 제기되었다.

‘미스티’는 서양의 대중예술계에서도 작품의 주제로 즐겨 사용됐다. 재즈음악인에게 ‘미스티’는 최고의 재즈명곡으로 꼽힌다. 미국의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 에롤 가너(1921~1977)가 1954년에 발표한 발라드 타이프의 아름다운 재즈 스탠다드 곡이다. 가너는 뉴욕에서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안개 짙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멜로디가 떠올라, 착륙 후 곧 호텔로 달려가 이 곡을 정리했다.

재즈인은 물론 마니아에게 ‘미스티’는 입문 필수곡이다. 그 이유는 아름다운 선율은 물론 가사 내용의 절절함 때문이다. “…당신이 날 유혹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 그건 내가 당신에게 원하던 거죠. / 내가 얼마나 희망도 없이 헤매었는지 아나요. / 그게 바로 내가 당신을 따르는 이유죠…”. 자욱한 안개 속에 갇혀 있을 때, 앞이 보이지 않지만 뭔가 신비롭고 포근한 느낌처럼 각박한 현실을 가려 주고 감싸 주는 사랑의 감정을 그린 아름다운, 행복이 앞에 보이는 곡이다.

‘미스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재즈 마니아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으로 첫 데뷔를 한 작품의 제목이 바로 ‘Play Misty for Me’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둠속에 벨이 울릴 때’란 제목으로 개봉됐다. 1971년 작품이다. 밤마다 이 ‘미스티’를 틀어달라고 DJ에게 신청하는 여자에 관한 스릴러 영화이다. DJ를 스토킹하는 한 여성의 비뚤어진 사랑을 그리고 있다.

TV드라마 ‘미스티’, 재즈 넘버 ‘미스티’, 영화 ‘미스티’, 발표 시기는 물론 표현 방식도 다르지만 이들 작품의 공통분모는 ‘남녀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대중예술의 영원한 주제이다. 대중예술이 ‘모든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때 TV 드라마 ‘미스티’는 아쉬움을 많이 남긴 작품이다. ‘불행’만 가득한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미스티’의 결말을 찜찜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JTBC '미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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