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퍼즐] ‘무한도전’의 ‘지각 멈춤’이 아쉬운 이유
- 입력 2018. 04.02. 10:39:23
-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MBC의 리얼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열차가 드디어 멈춰 섰다. 종착역에 도착해서인지, 열차 운행 시간이 끝나서였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매 주 토요일 저녁 수많은 시청자를 싣고 달려온 긴 여정을 마쳤다.
MBC '무한도전'
‘무한도전’은 2005년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이란 이름으로 시작해, 2006년 5월 6일 '무한도전'으로 독립 편성된 뒤 지난달 31일 563회 방송까지 무려 4725일을 달려오는 동안 초등학생이던 시청자는 대학생이 됐고, 대학생 시청자는 결혼하고 부모가 되었다.
예능 프로그램은 드라마와는 달리 일정한 방송횟수가 정해지지 않고 방송된다. 시청률이 저조하든가, 출연자 사고 등으로 비난을 받든가 하는 방송 결과에 따라 종영이 결정된다. 시청률이 높아도, 시청자의 피로감을 고려해 진행 방식 등에 변화를 주면서 시즌제로 운영된다.
‘무한도전’은 이 같은 일반적 방송 룰에서 벗어났다. “‘무한도전’이니까 계속되어야 한다”는 막무가내 식 시청자 요구에 따랐다. 흔히 시청률을 좌우한다는 스타 진행자가 포진한 방송도 아니었다. 첫 회에서 마지막 회까지 메인 MC로 활약한 유재석을 제외하곤 스타파워를 지닌 진행자가 없었다.
오히려 ‘무한도전’은 스타를 만들어냈다. 평범한 연예인이었던 박명수, 하하, 조세호, 정준하, 양세형 등을 정상급 예능인으로 성장시켰다. 이 부분에서 ‘무한도전’은 ‘예능인의 성공적 도전’은 분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스타급 엔터테이너가 아니더라도 예능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무한도전’의 성공은 예능 프로그램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유명 스타가 출연해야 프로그램이 성공한다”는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인식의 체계를 바꾸었다. 예능의 중심을 엔터테이너에서 PD로 전환시켰다. 연출가의 본령을 회복시킨 프로그램이다.
미디어학자들은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은 재미만 강조할 뿐 예술성을 찾기 어렵다”라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책임자들은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만 있으면 됐지 예술성 운운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예능의 가치를 외면한다.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무한도전’은 이 대립적 견해에 해법을 던졌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작가주의적 성격이 드러난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즉흥적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개그맨들의 오버 액션을 주문하거나, 이름만 앞세운 스타 연예인을 게스트로 출연시키는 등 재미에 집중했다면, ‘무한도전’은 김태호 PD란 걸출한 연출자가 프로그램을 작가주의적 관점으로 변환시켰다.
김태호 PD는 모방과 답습에서 벗어나 창조와 의식의 전환으로 프로그램에 메시지를 분명하게 담았고, 급변한 사회 현상에 초점을 맞추는 등 등장인물에게 ‘스토리가 있는 재미’를 만들어내도록 강조했고, 이 실험은 언제나 성공했다.
영화나 연극에서 연출자들이 출연자와 스토리를 엮어내는 ‘작가’로서 역할을 하듯 이제 예능 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 쇼 같은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작가주의적 연출’이 성공할 수 있음을 김태호 PD의 ‘무한도전’이 보여준 셈이다. 이미 ‘작가주의적 연출’은 ‘윤식당’(tvN)의 나영석 PD도 여러 차례 시도하고,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무한도전’ 열차는 이제 멈춰 섰다. ‘무한도전’팀은 지금의 ‘멈춤’을 ‘잠시 정차’로 믿고 있다. ‘시즌1’이 끝났을 뿐 곧 ‘시즌2’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김태호 PD는 ‘무한도전’ 시즌2를 연출할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돌아올지 “결정된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유재석은 “김태호 PD와 함께 할 것”이란 입장이다.
최승호 MBC 사장은 자신의 SNS에 “무한도전은 시청자 여러분께도 특별한 프로그램이지만 MBC 구성원들에게는 특히 영원히 잊지 못할 프로그램입니다. 13년의 긴 세월 동안 대한민국 예능의 최고봉이었을 뿐 아니라 MBC의 생명력을 유지시켜줬다고 해야 할 프로그램입니다. 무한도전이 아니었으면 MBC는 아마 진작 잊혔을지 모릅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또 “그런 상황 속에서 김태호 피디와 멤버들은 쉼 없이 달리고, 또 싸움을 위해 프로그램을 멈춰야 할 때는 멈췄습니다. 2012년 파업 때 '무한도전을 보고 싶다'며 '공영방송 회복'을 외쳐 주시던 많은 국민들이 생각납니다. 10년의 긴 싸움 와중에 무한도전은 언제나 우리의 버팀목이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무한도전’ 열차는 멈췄어야 한다. MBC가 편파방송으로 시청자로부터 외면당하고 ‘무한도전’ 스태프들도 이에 항의해 파업에 참여했을 때 ‘무한도전’이 종영했더라면, 그때 ‘시즌1’으로 끝내고, 새 경영진에 의해 MBC로 거듭났을 지금 ‘시즌2’가 시작되었으면, 더욱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승호 사장은 ‘무한도전’은 ‘MBC의 역사’라고 표현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정치, 사회, 역사 문제 등에 대해서도 화두를 던진 예능의 사회적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역사가 된 예능 '무한도전'을 떠나보내며, 이형기 시인의 ‘낙화’의 한 구절을 보탠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무한도전’의 뒷모습이다.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MBC '무한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