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이병헌 감독, 그럼에도 코미디 [인터뷰]
입력 2018. 04.24. 17:08:36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이병헌 감독은 스피디하게 공을 주고받듯 ‘핑퐁게임’을 연상케 하는 대사, 젊은 감각의 아슬아슬한 19금 유머를 영화에 녹여낸다.

지난달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영화 ‘바람 바람 바람’(제작 하이브 미디어코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난 이병헌 감독은 이어진 인터뷰 때문인지 다소 지쳐 보였지만 중간중간 드러나는 타고난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말솜씨에서 타고난 코미디 감독이란 생각을 하게 했다.

‘바람 바람 바람’은 20년 경력을 자랑하는 ‘바람’의 전설 석근(이성민)과 뒤늦게 ‘바람’의 세계에 입문한 매제 봉수(신하균), 그리고 SNS와 사랑에 빠진 봉수의 아내 미영(송지효) 앞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제니(이엘)가 나타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꼬이는 상황을 다룬 코미디. 사랑을 해도, 결혼을 해도 외로운 철부지 어른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다룬다.

‘바람 바람 바람’은 체코 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2011)의 리메이크 영화다. 유럽 영화가 원작이기에 국내 정서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불륜을 소재로 코미디를 만들다 보니 ‘불륜 미화’로 비춰질 위험성도 있다. “처음엔 안 한다고 했다. 제안 받고 영화를 봤는데 그런 쿨함이 우리나라 정서와 안 맞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 영화를 해야 하는지 답이 전혀 안 나왔다. 그런데 지겹게 끈질기게 들러붙더라. ‘한 번 더 보라’고 해서 더 봤지만 전사도 거의 없고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계속 붙더라. 파국까진 아니어도 해피엔딩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짊어질 벌을 어느 정도 줘야 한단 생각에 바꾸고 싶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해 각색할 때 (원작과) 달라졌다. 부담은 됐지만 재미도 있을 것 같아서 결국 하게 된 거다. 사실 언제 또 이런 걸 해보겠나. 무작정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소재에 의해 반감을 살 가능성이 있음에도 결과적으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결말을 낸다. “해피엔딩이라 생각 안 한다. 조금 약하다 느낄 수 있지만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큰 벌을 줬다고 생각한다. 식사 장면이 있는데,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유럽 예술 영화 같다. 아무 말 없이 밥만 먹느냐?’는 말이 있었다. 식사란 게 꼭 필요한 행위잖나. 옆 사람과 몇 번씩은 해야 한다. ‘평생 그 불편함을 갖고 매일 해야 하는 그 행위를 하거라’하고 던져준 거다. 내 입장에서 해피엔딩은 아니었고 씁쓸한 결말이었다. 내 선에선 인물에게 던진 가장 큰 벌이라 생각한다. 해석은 보는 사람 몫인데 일단 난 아닌 걸로.”

‘불륜’이란 소재도 그렇지만 제니 역시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캐릭터다. “원작의 경우 그 인물의 감정, 전사에 대한 설명이 없고 납득이 좀 안됐다. ‘웃고 끝내면 되는 건가?’ 했다. 각색하며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해서 이 고생을 하나?’ 싶더라. 내가 설득이 안 되더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2주 넘게 ‘멘붕’이었다. 제니가 가장 어려웠다. 한국 영화로 넘어오며 약간 판타지적 요소도 있는 것 같고. 영화에서 충분히 설명할만한 할애 시간이 적었다. 너무 드러내도 안 되고 약간 신비로움도 필요하고 구차한 설명은 촌스러울 수도 있었다. 결론은 제니란 캐릭터를 모르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다. 그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캐릭터였던 것 같다. 그 과정 중에 무언가 하나는 좀 표현해주고 싶었다. 제니가 멍이 가시지 않은 (자신의) 포트레이트를 자기 방에 걸어 놨다. 거기서 제니에 대해 그런 설정 하나라도 표현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판타지, 동화적인 인물이지만 제니도 사람이고 구성적으로 외로움, 상처 같은 것이 있다. 셀프 포트레이트가 상황의 정당성을 주려는 건 아니고 유추할 수 있도록 설정한 정도다. 접근하고 풀어내기 어려운 캐릭터다.

이성민을 ‘바람둥이’ 역할로 캐스팅했다. 캐스팅에 대해 만족하나?석근 캐릭터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바람둥이 캐릭터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했다. 생김새는 분장, 의상 등을 통해 설정할 수 있기에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성민이라는 배우가 가진, 신뢰와 장난기가 공존하는 목소리가 있다. 전작에서 보여준 대사 톤 등도 리듬감 있고 좋았다. 석근 캐릭터가 먼저라기보다 배우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신하균도. 미팅을 통해 처음 만났는데 그가 봉수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이분이 가만히 있으면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눈빛이 있다가도 가만히 먼 곳을 바라보거나 하더라.”



촬영 초반, 배우들이 감독의 디렉션을 이해하지 못했다는데.초반에 시각적인 건 크게 없이 인물 대사 위주인 것으로 생각했다. 내겐 정말 중요한 게 대사 톤이나 리액션이다. 이번뿐 아니라 항상 그랬는데 베테랑 배우들이라 상황에 맞는 정확한 연기를 했다. 내가 요구한 ‘다른 지점’은, 예측 가능한 게 싫었기에 조금은 벗어난 대사 톤과 리액션이었다. 예측에서 조금 벗어난 것들을 요구하다 보니 처음엔 약간 ‘왜 이런 상황에서 이런 걸 하라고 하지?’하는 반응이었지만 금방 받아들이더라. 나중엔 내가 별로 디렉션 한 것도 없었다.”

현장에서 ‘오케이’는 쉽게 안 하는 편인가.그렇진 않다. 시원하지 않을 뿐. 반복해 하는걸 싫어해 빨리 찍는 편에 속한다. 시원하게 ‘오케이’ 해줘야 하는데 성격상 리액션이 약하다. 이번 현장 쉴 수가 없었다. 욕만 바가지로 먹고 끝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 현장에서 눈치챌만한 사람은 챘겠지만 굉장히 예민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짜증 내거나 화내는 건 아니고 혼자 술 마시고 벽에 머리 칠 정도로 자괴감이 들었다. 연출적으로 새로운, 다른 지점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만족할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정신적으로 좀 힘들었다. 마음에 드는 컷이 나왔음에도 다음 것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찍은 것에 대해 후회는 크게 하지 않는 편이다.”

전작도 그렇고 계속해서 코미디를 연출하는데 어렵지 않나.(어려움은) 당연히 가져가는 거다. 더군다나 부정적 소재를 택했을 때 더 그렇다. 여태껏 인간의 부정적 측면을 다루는 것에 관심을 뒀다. ‘스물’도 상영관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웃음이 나오는 포인트도 다르더라. (웃음) 불발로 끝났을 때 온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무섭다.” 그럼에도 코미디를 고집하는 이유는? “일단 좋아한다. 호러는 아예 못 본다. 잔인한 걸 잘 못 본다. 피를 몇 번 연속해서 보면 피곤하고 몸이 뻣뻣해질 정도다. 호러 시놉을 쓴 적이 있는 데 정말 무섭더라. 온종일 괴로웠다. ‘사람을 어떻게 죽일까?’하고 종일 생각했다. 사람이 피폐해지더라. 나와 안 맞았다. 일단 내가 잘 하는 게 코미디 쪽이다. 잘 하는 걸 견고하게 만들 때라 생각한다. 당분간 코미디를 계속하지 않을까 싶다.”

‘스물’(2015)에 이어 ‘바람 바람 바람’도 각본을 쓰고 연출도 했다. 각본은 오롯이 혼자 쓰나? 일단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준이 될 때까지는 혼자 쓴다. 재미없을 것 같아도 넣어보기도 한다. 웃음이 안 나올 것 같으면 걷어내면 되니까. 대사는 내 머릿속에서 나오기도 하고 술자리 등에서 재미있는 게 나오거나 하면 메모하기도 한다. 여태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영상미가 어마어마하기 보다 주변에 있을법한 사람, 생활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했기에 ‘말맛’이 있는 대사가 필요하고 중요했다. 정보전달에 필요한 대사를 써놓고 어떻게 재미있게 만들지 생각해 세공하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

캐릭터의 대사와 말투를 들었을 때 ‘이병헌 감독 영화’라는 느낌이 드는데 특별히 요구하는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초반에 디렉션을 주기도 한다. 템포, 리듬, 호흡이 정말 중요하다. 대사가 참 많잖나. 이 긴 대사들에 조금 영화적 속도감을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너무 지루하잖나. 내가 좋아하는 톤이 있다. 기술적 문제다. 김수현 김은숙 드라마가 아니라면 평소 그런 속도감을 갖고 못할 거다. 우리한테도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적 장치라 봐도 된다.”



이번 영화에서 반응이 별로라 빠진 대사도 있나? ‘스물’ 때 편집하며 많이 걷어내고 버렸는데 그게 너무 싫더라. ‘이번엔 그러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시나리오 단계에서 과감히 뺄 건 뺐다. ‘내가 찍은 건 다 쓰겠다’는 생각으로 철저히 계산하고 들어가고자 했다. 많이 뺀 건 없는데 하나 뺀 것이, 석근의 초반 베드신이다. 초반에 캐릭터에 대해 충분히 설명이 안 된 상태에서 석근과 택시를 탄 손님의 시네접촉은 내가 좀 실수한 것 같다. 어느 정도 인물이 설득력을 갖춘 상태가 아니라면 저렴한 코미디로 느껴질 수 있다. 반성하고 있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2주 정도 쉬었다고 들었다. 제니(이엘) 때문이다. 원작의 설정을 차용하고 개연성 문제를 생각했다. 나부터 설득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 편집하면서도 끝까지 괴롭히더라.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는데 나는 1밀리미터 고쳤는데 1미터를 가버리고 편집도 갑자기 슬픈 멜로가 되기도 했다.”

영화의 배경을 제주도로 설정한 이유는 뭔가. 여러 이유가 있었다. 인물이 몇 안 되는데 그들을 고립된 공간, 육로 퇴로가 없는 섬에 몰아넣고 포커스를 맞추고 싶었다. 정서적으로 약간 멀게 느끼도록, 이국적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 가장 하고 싶었던 건, 제주도의 겨울 이미지를 보여주는 거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제주도의 유채꽃 핀 따뜻한 날씨 이면에 아주 평범한 풍경도 있잖나. 보통 제주도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집 앞에서 볼만한, 쓰레기도 있고 그런 동네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가 차가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주도의) 겨울 이미지를 담은 영화를 못 본 것 같다. 그런데 촬영이 밀리면서 봄에 찍게 됐다. 제주도는 별로 안 찍었다. 한 달 정도 가서 찍었는데 누군가 ‘그럴 거면 왜 제주도엘 갔느냐?’고 하더라. 한 달. 봉수 레스토랑 장면은 부산에서 촬영했다. 원작 이야기를 하자면, 주방장이 바뀌는 정도였는데 내가 생각했을 때 봉수는 환경적 변화가 분명하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중국집으로 바꿨다.”

‘불륜을 정당화 한다’는 평가도 일부 나왔다. 관객이 어떤 시각으로 이 영화를 봐줬으면 하는지 궁금하다. “온전한 사람이라면 불륜을 미화하기 위해 영화를 제작 하겠나. 영화를 보고 해석하고 느끼는 건 보는 사람 몫이다. 내 의도가 어쨌든 보는 이가 그렇게 느꼈으면 그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태생적으로 그런 영화다. 불륜보다, 사람을 생각하면 이 영화에서 노인이나 꼬마의 조롱 섞인 시선도 있잖나. 불륜에만 포커스가 맞춰지지 않았으면 한다.”

촬영 때와 사회적 분위기·시각이 달라졌다. 당구장 장면 등은 위험 부담이 좀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당연히 생각 안 할 순 없다. 수위 조절도 숙제였다. 당구장 신을 없앨까도 생각했다. 하나의 임팩트가 필요했다. 당구장이라는 공간이 거의 남자로 채워진 공간인데 그 안에 제니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집어넣어 주고 싶었다. 나름 원작대비 수위조절을 했다. 원작에서 노출도 좀 있고 (노출의) 이유가 없다. 남자들의 시선을 받는 컷을 뺄지 고민하기도 했는데 너무 의식한 것 같았다. 노출 여부를 떠나 매력적인 여자를 안 쳐다보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스물’ ‘바람 바람 바람’에 이어 나올 차기작 ‘극한직업’도 코미디다. 웹드라마 ‘긍정이 체질’(2016)을 포함해 작품에서 특유의 개성이 느껴진다. 자신만의 고정된 느낌을 갖고 가고 싶은가. 상업 영화 데뷔작인 ‘스물’에 온전히 다 쏟았다. 느낌은 (이어가길) 바라는 것 같다. 이번에 ‘연출을 계속해도 되나?’할 정도로 자괴감이 들었다. 아슬아슬하고 불안했는데 최소한 모두가 욕하는 작품은 만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뭔가 하나를 해낸 느낌이다. 지금은 더 애착이 간다. 이 진심이 부디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