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TALK] ‘원죄’, 혜정이 내린 최후의 심판 ‘사함 받지 못한 죄’
- 입력 2018. 04.25. 16:46:42
-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원죄’(감독 문신구)는 종교 영화의 정형에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한다. 이러한 충실성이 답답한 현실을 그리고 있음에도 심장을 옥죄거나 긴장감을 높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예측 가능하게 전개되는 스토리는 딸 혜정으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 생생한 현실로 되살아난다.
영화 '원죄'
혜정(이현주)은 소아마비 질환으로 장애인이 된 상문(백승철)의 딸이자 뇌전증, 즉 간질병을 앓고 있는 자신을 장애인 아버지 옆에 보호자로 남겨두고 도망간 매춘부 엄마의 딸이다. 엄마에게 버려진 순간부터 세상을 원망할 여유조차 뺏겨 버린 혜정은 어느 순간부터 상문을 아빠가 아닌 ‘그 사람’으로 지칭한다.
혜정이 상문에 대해 말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그 사람’이라는 표현은 이 영화가 여타 종교 영화와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혜정은 밥상 앞에 앉아 소설 출간을 포기하지 못하는 상문을 타박하고 집주인이 일하는 곳까지 찾아와 월세를 독촉한다고 투덜거린다. 혜정의 넋두리를 불편해하는 상문에게 자신만 믿으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호기롭게 다독이기까지 한다.
사전에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들었음에도 혜정이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학생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15살 중학생 혜정 역할을 맡은 이현주는 어디를 봐도 중학생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10대의 치기가 표정 곳곳에 배어있다. 이현주는 이 같은 자신의 외모와 신체적 특징에 연극무대에서 체득된 발성으로 일반적인 중학생이 아닌 극 중에서 신부와 동네 아저씨들의 말처럼 ‘중학생답지 않은 보통내기가 아닌’ 독기를 표현했다.
혜정은 자신을 도우려는 에스더(김산옥)를 경계하지만, 한편으로 수녀 에스더가 장애인인 그 사람과 자신을 분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한다. 그러나 에스더는 애초부터 혜정의 기대를 충족할 수 없었다. 에스더는 과거 자신의 트라우마에 갇혀 혜정과 상문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몬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혜정이 상문을 찾는 에스더를 비난하면서도 상문이 있는 곳을 알려준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혜정은 어느 순간부터 상문을 아버지가 아닌 또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그렇게 대했다. 그렇다고 상문을 아버지가 아닌 남자로 생각하지 않았고 이는 상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관계는 모호했지만 에스더는 그들의 관계를 남녀로 인식했고 그 지점에서 종교 교리와 인간의 논리 사이를 관통한 극복할 수 없는 오류가 드러났다.
혜정은 상문에게는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는 매춘부 아내를 투영하는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상문에게 혜정의 존재는 딸도 여자도 아닌 그래서 원망할 수 없고 저주할 수도 없는 존재다. 혜정은 상문에게 증오하면서도 맞설 수 없는 없는 신과 같은 존재다. 그러기에 상문의 최후를 결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심판자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장면 장면이 마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듯 관객들이 의미를 애써 부여하지 않는다면 무심코 넘어가게 된다. 그렇다고 한 장면 한 장면에 의도적으로 의미를 짜내려 한다면 상영시간 102분이 102일보다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원죄’는 불편하면 불편한 채로 이해할 수 없다면 그냥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보면 그뿐 이다. 영화 엔딩자막이 올라가고 일상으로 돌아가 그렇게 몇 시간을 흘려보내다 자신도 모르게 멈칫하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의 느낌과 저릿함을 끌어안기만 하면 된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원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