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퍼즐] 개그프로그램,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서
입력 2018. 04.30. 11:26:23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개그프로그램이 ‘위기’를 맞고 있다. ‘개그콘서트’(KBS2, 이하 ‘개콘’), ‘코미디 빅 리그’(tvN, 이하 ‘코빅’) 등 달랑 2개뿐인 개그프로그램마저 폐지설이 나돌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시청자로부터 외면 받아서이다. 시청률이 엉망진창이다. 한때 20%대를 유지하던 ‘개콘’의 시청률은 올해 4월 들어 6%대로 떨어지더니 지난주에는 5%대까지 밀려났다. ‘코빅’은 더 심각하다. 2~3%대에서 맴돌고 있다.

문제는 낮은 시청률에만 있지 않다. 시청률과 함께 프로그램의 인기 척도가 되는 ‘TV 화제성’에서도 성적이 불량하다. 매주 ‘TV 화제성 주간리포트’를 발표하고 있는 ‘굿데이터’ 집계에 따르면 지난주 ‘개콘’과 ‘코빅’은 ‘비드라마 화제성 순위’에서 모두 20위권 안에 들지 못했다. ‘재미’가 없으면 ‘화제’에라도 올라야 할 텐데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있는 셈이다. 방송국 안에서조차 “이제 그만 막을 내려야 하지 않겠냐?”는 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때 젊은 시청자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예능프로그램을 이끌던 개그프로그램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한마디로 ‘웃음’이 없어서이다. 코미디에 ‘웃음’ 실종이라니, 전문가의 표현을 빌자면 “요즘 개그프로그램 웃기고 있네”이다. 문화평론가인 한국외국어대 김정겸 겸임교수(철학과)는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억지웃음을 강요하다보니 시청자들이 ‘웃다’가 아니라 ‘웃기네’이거나 ‘웃기지 마’라는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라고 진단한다.

“‘웃기다’는 ‘웃다’의 사동형이다. ‘웃기다’의 주어는 다소 불만스러운 인물이나 행위이다. 자동사인 ‘웃다’로는 그런 대상과의 관계를 나타내지 못하므로 ‘웃기다’가 따로 필요하다. 요사이에는 ‘웃기다’의 활용형 ‘웃기네’와 ‘웃기지 마’가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나타낼 때 널리 쓰인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요즘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의 시각은 불만 그 자체가 된다. 웃음을 뜻하는 한자 ‘소(笑)’인데 개그프로그램은 ‘미소(微笑)’, ‘홍소(哄笑)’, ‘대소(大笑)’, ‘폭소(爆笑)’가 아니고 불만을 나타내는 ‘조소(嘲笑)’, ‘비소(誹笑)’, ‘냉소(冷笑)’란 지적이다.

‘즐거움’ 자체여야 할 개그프로그램이 조소, 비소, 냉소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코미디작가의 부재가 먼저 꼽힌다. 출연 개그맨의 애드리브가 어떤 장르보다 우선하지만, 그 바탕은 작가의 대본이다. 프로그램마다 3~5명의 작가가 투입돼 있지만 즐거움을 줄 만한 소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야 우수한 작가도 발굴되는데, 침체된 현실에서는 우수한 작가들이 이 분야 투입을 꺼려한다. 오히려 개그맨에게 현장에서 끌려가는 실정이다.

개그스타의 부재도 한몫을 한다. 지난날 예능프로그램의 인기 상위권을 점령했던 개그스타들이 개그 프로그램을 외면하고 전업(?)에 나선 때문이다. 분명 직업을 개그맨이라고 밝혔던 재능인들이 인기를 얻고 나면 ‘방송인’이란 애매모호한 직업인으로 변신한다. 유재석, 이휘재, 박명수, 이혁재, 박수홍, 조세호, 박미선, 송은이, 정준하 등 한때 개그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이 예능프로그램의 진행자이거나 패널로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 그들의 공백을 메울 다음 주자들을 발굴 육성하지 못한 책임은 순전히 제작진의 책임이다.

개그프로그램의 소재와 표현 방식도 문제점을 드러낸다. 다른 분야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여전히 저질스런 대사가 판을 치고, 출연자의 행동도 꼴불견이다. 저녁식사 시간대에 방송되는 ‘코빅’은 매회 배설과 관련된 대사가 쏟아져 듣기 거북하다. 화장실이 등장하고, 배설 표정과 대사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개콘’의 ‘밥 잘 사주는 예뻤던 누나’ 코너에서는 여성 출연자가 “물 빼러 간다”는 부적절한 대사를 툭 던진다. ‘방귀’ 정도의 표현은 일상화 된 느낌이다.

막말도 문제다. 방청객을 상대로 짧은 말을 내뱉는다. 29일 방송분 ‘오지라퍼’ 코너에서는 방청객에게 ‘쓰레기자*’이라고 막말을 던지더니, ‘이별여행사’에서는 ‘*새끼’란 멘트까지 등장했다. 정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진행이다. 심심하면 남성 출연자들이 상의를 벗거나 풀어헤치는 장면도 볼썽사납다. 일부 코너에서 마구 내뱉고 뿜어대는 막말과 연기는 즐거움은 고사하고 시청자의 마음을 할퀴려는 생떼 수준이다. 먹이를 놓친 야수의 울부짖음처럼 들린다. 지혜도 익살도 풍자도 없다.

해결책은 없는가. 'Out of Gag'랄까. 개그 밖에서 개그를 봐야한다. 벗어나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게 인생이듯이 말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웃기기’ 속에서만 바라보는 개그는 진정한 개그가 아닐 수도 있다.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게 개그이다. 희극인 뿐 아니라 모든 연기자의 스승인 찰리 채플린은 평생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때로는 그만의 특유의 몸짓 안에 자신을 숨겼고 때로는 그 세상을 대놓고 희롱하기도 했지만, 그의 개그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다음 세대가 기댈 수 있는 희극의 이상적인 모델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북 임실 예원대학 교내에는 ‘살살이’로 불리던 코미디언 고 서영춘(1928~1986)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예원대학은 한국전쟁 뒤 피폐한 시대와 70∼80년대 자유로운 감정표현도 힘들었던 당시 따뜻한 웃음을 안겨준 서 선생을 기리기 위해 반신상을 제작, 지난 2000년에 제막식을 가졌다. 김재화 시인은 이 비문에 “… 님이 계셔서 / 따분하고 고달플 때 / 꿈과 힘 솟았고 / 그리하여 그 눈물방울 / 웃음꽃 되었더이다. / 님이 다녀가셔서 / 이 세상 / 살만한 곳이라고 여기는 사람 / 한결 많아졌더이다.”라고 썼다. 후학들이 잘 새겨 들을만하다.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사진=KBS2 '개그 콘서트', tvN '코미디 빅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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