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슬러’ 유해진이 그린 살림왕, 그리고 아버지 [인터뷰]
- 입력 2018. 05.11. 11:46:32
-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잡초처럼 꿋꿋이 성장해서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레슬러’야 힘내라”
배우 유해진의 말처럼 ‘레슬러’는 극장가에 잡초처럼 피어났다. 마블의 대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압도적인 상영관 수와 화제성으로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레슬러’는 나름의 소박한 매력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며 선전을 보이고 있다. 꿋꿋이 살아남아 많은 이들과 작품을 나누고 싶은 유해진의 바람이 이뤄진 듯 하다.
‘1987’ 이후 반 년 만에 ‘레슬러’로 스크린에 돌아온 유해진은 극중 과거 레슬링 국가대표였지만 이제는 체육관을 운영하며 홀로 아들 뒷바라지에 전념하는 귀보 역을 맡았다. 아내를 일찍 떠나보내고 20살 아들 성웅(김민재)과 함께 알콩달콩 살아가는 귀보는 요리, 청소, 빨래 뭐 하나 빠지지 않는 ‘프로 살림러’다.
다 큰 아들을 둔 아빠 역은 처음이었지만, 실제로도 집안일에 능숙한 자타공인 ‘살림왕’인 그에게 귀보는 그리 먼 캐릭터가 아니었다. 여기에 헛웃음이 새어나올 만큼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 매사에 유쾌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귀보의 매력은 실제 우리가 아는 유해진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다.
“(귀보 캐릭터가) 특별한 경험을 해야지 되는 연기는 아니었다. 그냥 그 상황을 느끼려고 했다. 아들이 있다는 설정만 다른 거지 생활은 제 생활과 똑같다. 저도 직접 빨래하고 밥 하고 청소를 하니까. 밥을 못 버리고 서서 식사하고 이런 것들이 저한테는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그렇게(리얼하게) 보신 것 같다”
특히 유해진은 특유의 자연스러운 애드리브로 ‘레슬러’의 웃음 포인트를 제대로 살렸다. 미라(진경)에게 서로 호르몬을 바꾸자고 한다던가, 한껏 꾸미고 온 가영(이성경)을 보며 ‘설국열차’의 틸다 트윈튼을 언급하는 등 많은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했던 귀보의 대사들은 대부분 유해진의 애드리브에서 탄생한 명대사들이다.
“그런 대사들은 대부분 제가 (애드리브로) 한 것 같다. 제가 그 나이대가 돼서 그런가보다. 제 또래끼리 우스갯소리로 ‘예전 같지 않아. 호르몬이 바뀌나봐’그런 애기를 하니까 그걸 섞어서 ‘호르몬 나올 때 연락해. 서로 바꾸자’ 이렇게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설국열차’ 대사는 그렇게 준비하고 나온 가영이한테 미안하기도 해지만 그래야지 오히려 귀보 같은 거다. 걔가 꾸민 걸 알고 ‘어 예쁘다’ 라고 하는 것보단 편하게 툭 얘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부자(父子) 연기를 통해 많은 감정을 나눴던 김민재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워낙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후배인 만큼 유해진에게는 김민재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자신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오는 김민재 덕에 두 사람은 훨씬 수월하게 관계를 쌓아갈 수 있었다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후배일 테니까 ‘선배라고 어려워만 하면 안 될텐데’라는 고민은 있었다. 좀 서로 친해야 되는 역할인데 간극이 좁혀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민재가 되게 잘 했다. 촬영할 때도 그렇고 평상시에도 잘 다가오더라. 예의를 지키면서 그렇게 하니까 너무 듬직했고 ‘내가 어떻게 맞춰야 되지’ 하는 고민이 없었다. 그런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었다. 회식 때 술을 먹고 현장에서 작품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졌다”
‘레슬러’는 소소하게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코믹 영화이지만, 그 안에서 해프닝처럼 그려진 귀보와 가영의 러브라인이 논란을 낳았다. 20살 여성이 친구의 아버지를 좋아한다는 설정에 불편함을 느낀 대중들이 많았던 것. 유해진은 이에 대해 조금은 다른 쪽으로 초점을 맞춰주길 바란다며 관객들을 설득했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짝사랑 얘기라고 생각한다. 가영이 귀보를 좋아하는 것도 짝사랑이고 귀보의 어머니(나문희)가 자식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것도 다 짝사랑이다. 가영이 한테는 그 마음이 소중한 마음일지 모르겠지만 귀보 입장에서는 ‘다치지 않고 잘 넘겨야 할 텐데’ 하는 입장이었을 거다. 어제 일반시사를 다녀오신 분이 관객 분들도 유쾌하게 보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초점이 아니라 해프닝으로 그려진 거다”
‘레슬러’는 귀보와 성웅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려지는 가족 영화다. 두 사람이 겪는 갈등은 자식을 둔 부모와, 그 자식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상황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서툴기만 한 이들의 모습이 공감을 자아낸다. 유해진은 ‘레슬러’를 통해 답을 찾기 보다는 잊고 있었던 가족들과의 관계를 한 번쯤 생각해보길 바란다며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대신 전했다.
“한 번쯤 생각하자는 것 같다. 나를 찾는 것도 중요하고 다 중요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한 번쯤 생각하는 거다.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 이런 시절을 겪지 않나. 자식은 부모님한테 반항하고 속을 썩이고, 부모님은 또 한 번쯤 자식이 자기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시간이 있었을 거다. 우리 영화가 답을 주는 건 아니다. 그냥 ‘이런 예도 있으니 한 번쯤 돌이켜 보는 건 어때요?’하는 영화다”
[김다운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