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퍼즐] 같은 ‘실수’ 다른 ‘사과’, MBC의 진솔함 YG의 뻔뻔함
입력 2018. 05.14. 10:01:35

양현석, MBC 대표이사 최승호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실수’와 ‘사과’는 짝패다. ‘실수’에 여지없이 따라붙는 것이 바로 ‘사과’다. ‘실수’를 하면 즉각적이든 뜸을 들이든 대개 ‘공식 사과문’이 발표된다. 방송연예계가 ‘짝패 소동’을 빚고 있다. ‘미투운동’의 가해자들이 내놓은 사과문은 셀 수 없이 많고, 이와는 별개의 실수를 두고 공영방송국과 국내 최대의 연예기획사도 잇따라 사과문을 내놓고 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뻔한 속담을 들먹이지 않아도 ‘사과’의 힘은 크다. 인문학자 마가렛 리 런백은 “사과는 사랑스런 향기다. 사과는 아주 어색한 순간을 우아한 선물로 바꾼다.”라고 했다. 마음을 담은 진심 어린 사과,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리는 사과는 용서와 화해의 여지를 제공하지만, 변명으로 일관한 사과, 하나마나한 사과는 오히려 분노를 부른다.

최근 공영방송인 MBC와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는 각각 시청자들을 상대로 ‘실수’를 저질렀다. 프로그램을 잘못 진행했기 때문이다. MBC는 방영중인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작시’)의 방송 내용이, YG는 방영이 끝난 JTBC 오디션 프로그램 ‘믹스나인’의 사후 조치가 문제가 됐다. MBC와 YG는 ‘실수’를 인정하고 각각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그 방법과 내용에는 상당한 차이가 보인다.

‘전작시’는 지난 5일 방송분에서 개그우먼 이영자의 어묵 먹방을 뉴스 형식으로 내보내는 중에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는 뉴스 장면을 인용했다. 해당 장면에서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는 남자 앵커와 여자 앵커의 장면이 인용됐다. 방송 후, 극우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에서 모욕적인 단어로 사용하는 어묵이 이 장면과 연관됐다는 게 의도적이고 불쾌했다며 거센 비난이 일었다.

사건이 불거지자 MBC는 “긴급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이번 사안을 철저히 조사하겠다. 관련자의 책임을 묻고 유사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을 강구하겠다.”며 방송사 차원의 ‘사과’를 여러 차례 전했다. MBC의 수장인 최승호 사장도 두 차례나 사과문을 냈다.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님께 직접 사과하고 철저한 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충격을 받은 이영자에게도 사과의 말을 전했다. MBC는 조사위원회가 다각도의 조사를 진행 중이며, 결과는 나오는 대로 언론사 등에 가감 없이 전하고 있다. MBC의 ‘사과’에 진솔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믹스나인’은 양현석이 이끄는 YG와 '프로듀스 101' 시즌1을 만든 케이블 채널 엠넷 출신의 한동철 PD가 의기투합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10월 시작한 '믹스나인'은 양현석이 처음으로 타 기획사의 연습생들을 프로듀싱하는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았다. 전국 기획사를 찾아다니며 연습생을 발굴했고, 남자 9인조 팀과 여자 9인조 팀의 성별 대결을 통해 1위 남자팀이 데뷔조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방송 내내 양현석의 유아독존 식 독설만 남기고 1% 내외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올해 1월 종영했다. 그렇더라도 데뷔 약속은 지켜져야 할 텐데 느닷없이 “없었던 일로 하자”며 YG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지난 3일 YG는 보도자료를 통해 “결과에 실망하신 모든 분께 한없이 죄송스럽고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지만 그 내용은 대체로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데뷔조 멤버들의 소속사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다. 보도자료에는 “무한책임을 느낀다”라고 했지만 “돈 안되는 그룹을 이끌 생각이 없다”는 속내가 그대로 내비치는 내용이다. 보도자료 발표 이후 여러 날이 지났지만 무한책임에 대한 후속 조치는 감감하고, 수장인 양현석 역시 책임자로서 별다른 사과 표명이 없는 상황이다. YG의 이같은 ‘사과’는 뻔뻔함의 민낯 그대로이다.

세상사는 항상 잘하는 사람도 없고 항상 옳은 사람도 없다.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쁘다. 그의 오만과 교만이 누군가를 향해 있을 때 누군가는 반드시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믹스나인’의 경우 피해자는 이제 20살 전후의 청년들이다. 젊음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그들과 팬들은 이 하나마나한 사과로 대형기획사의 갑질에 대한 분노의 크기만 커졌다. 이 분노는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다.

MBC와 YG의 ‘실수’와 ‘사과’를 비교해 보면 같은 ‘실수’라도 ‘사과’는 다르다. ‘사과의 기술’이 다른 것인가. ‘사과’도 ‘좋은 사과’와 ‘나쁜 사과’로 구분되는지 궁금하다. ‘실수’의 경중을 떠나 어떤 사과는 피해자를 진정시키고 여론을 잠재우지만(좋은 사과), 어떤 사과는 오히려 분노를 부른다(나쁜 사과). 대표 사례가 MBC와 YG의 차이다. 방송사 사장까지 나서서 시청자에게 머리 숙여 사죄한 MBC는 용서의 여지로 이어지겠지만, YG의 사과는 두고두고 언론과 대중의 뭇매를 피하기 어렵지 않을까. 이 차이는 무엇일까. 좋은 잘못, 나쁜 잘못은 없지만 분명 좋은 사과와 나쁜 사과는 있다.

언론정보학에서 규정한 ‘좋은 사과’에는 5R이 있어야 한다. 5R이란 잘못의 확인(Recognition), 책임감의 인정(responsibility), 양심의 가책 표현(remorse), 원상복구를 위한 배상 제시(restitution), 재발 방지의 다짐(repetition)이다. 5R은 어디까지나 이론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과의 진정성’이다. 진정성이 느껴지기 위해서는 ‘공감’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용서의 심리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즉 상대방의 분노와 상처를 떠올리고 공감해야 진심어린 사과가 나온다. 5R을 MBC와 YG의 경우에 대입해보자. 어느 쪽이 ‘좋은 사과’인가.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사진= 권광일 기자, 티브이데일리 제공]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