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전종서 "소속사 찾는데 2년, 찍어내는 게 싫었다" [인터뷰②]
입력 2018. 05.23. 17:58:24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회사 알아보는 데에 2년 정도 걸렸어요."

23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전종서는 무려 2년 동안 안 만나본 회사가 없을 정도로 많은 회사와 접촉해 지금의 소속사를 찾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가치관과 맞는 회사를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전종서를 만나 '버닝'(감독 이창동, 제작 파인하우스필름·나우필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 강렬한 이야기를 다룬다.

"가치관이 비슷하고 대화가 잘 됐으면 했다. 그게 잘 돼야 같은 곳을 지향할 수 있다. 멘토 역할을 해줄 조력자가 필요했다. '이런 사람이면 있는 그대로의 날 표용할 수 있겠다'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없더라. 지쳐있을 때 이 회사를 만나 계약하게 됐다. 필요한 시기였다. 더 일찍 만났어도 내겐 좋지 않았겠다 싶다. 좋은 타이밍에 만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회사를 찾아 헤맨 그녀가 지닌 가치관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찍어내는 게 싫다. 뚜껑만 다른 플라스틱 용기처럼. 열어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신인 배우들이 그렇게 자꾸 소비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기회도 없고. 난 그렇게 날 어떤 제도권 안에 가둬두려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크다. 항상 그랬다. 학교를 가도, 어떤 집단에 속해있든. 그걸 다르게 얘기하면 머리가 닫혀있다고 생각한다.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즉 날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나 자체를 봐주는 사람을 찾았다. 그게 우리 회사 사람들과 닮아있다."

그녀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친척이 있는 캐나다에서 보내고 국내로 돌아와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에 입학했지만 대학에서 이렇다 할 가르침을 얻지 못했다는 그녀는 연기를 배울 연기학원을 찾았고 지금도 다니고 있다.

"학교는 입학은 했는데 거의 안 다녔다. 1년 다녔는데 출석률도 저조하고 제적 상태다. 학교에서 뭘 가르치려 하는 건지,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이 사람들에게 뭘 알려 주고 싶어 하는지가 확실하게 안 보이더라. 그래서 나가서 내게 연기를 알려줄 수 있는 분을 만났다. 그분에게 연기를 배웠다. 학원이 학교였다."

학원에서도 배운 것이 있듯, 촬영 현장에서도 배운 점이 있었을 터다. 이창동 감독이 학원이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가르침을 주지는 않았을까.

"내가 다니는 학원에서도 그렇다시피 내가 어떤 아이인지에 대해 자꾸 알려주신다. 학원에서는 '연기는 알려주는 게 아니기에 연기를 알려줄 순 없다'며 객관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꾸 발견해 알려준다. 감독님은 촬영 당시 내게 '믿는다'고 하셨다. 믿고 맡겨주신 것 같다. 정말 배운 게 많다. 나 같은 작은 사람도 지나치지 않는 분이다. 나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 배우들이 그런 환경에서 연기했고 그런 데서 오는 배움이 정말 컸다. 감독님이 오디션을 봤을 때다. 감독님이라고 하면 되게 어려워하게 되는데 이 감독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 아빠 같고 한 어른이자 좋은 선생님 같았다. '난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일이 있었고 이땐 행복했어요'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 말을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그런걸 다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분이다. 물론 영화를 위해서였겠지만 그 캐릭터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나라는 아이 자체에 대해 끊임없이 이해하려 하고 인간적으로 궁금해하려 했다. 그 부분에 있어 가치를 높게 생각해 준 부분이 살며 처음 받아보는 거였다. 정중하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그윽한 그런 면이 있다. 모든 배우가 다 감독님을 좋아한다."

전종서에게 배우를 꿈꾼 계기와 시기를 묻자 딱히 계기는 없었단다. 단지, 영화 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고.

"정말 많이 본다. 지금도 그렇지만. 연기 배우는 곳에 자연스럽게 갔고. 이유는 모르겠는데 관심이 많았다. 처음 영화 입문한 게 초등학교 1학년 때 '해리포터'를 통해서다. 그때 영화 보는 재미를 알아가며 점점 다양한 걸 접했다. 능동적으로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고등학교 때다."

그녀의 지인은 '버닝'을 보고 그녀에게 솔직한 반응을 내놨다. 그녀는 지인의 반응이 실제 관객의 반응과 비슷하다며 웃었다.

"내게 솔직히 '재미없다'고도 한다. '무슨 얘기하는 건데?' '그래서 뭔데?' 하더라. 그 말도 난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이해한다. 반대로 '정말 좋았다' '한대 얻어맞은 기분' '공감됐고 계속 생각날 것 같다'는 반응도 있었다. 실제 관객들이 극과 극으로 반응하는데 이해하고 존중한다."

이제 막 '버닝'으로 데뷔한 그녀에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고 묻자 "배우를 계속 안 할수도 있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현재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불과 한 반년 전까지만 해도 기대를 하지도 않았고. 목적지를 지향하다 보면 분명히 어떤 형태로든 타격을 받을 것 같다. 내 인생을 믿는다.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당장 선택해야 하는 것들에는 현명하게 하고 싶다. 그게 식사 메뉴든 뭐든. 그런데 내가 계속 (연기를) 한다면 찍어내는 연기를 하고 싶진 않다.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그걸 순수하게 내뿜을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잖나. 받아들이는 걸 내뱉는데 있어 한 번 필터룰 거치니 오해가 생기는데 그 경계를 허무는 방법을 내 안에 계속 갖고 싶다. 이 시대에 내가 필요한 배우였으면 좋겠다. 어떤 걸 대변할 수 있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대단한 영화나 역할을 한다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을 상대로 하더라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영화를 정말 많이 보며,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녀에게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은 메시지를 준 영화를 물었다.

"영화는 다 그런 것 같다. 어떤 영화가 특정하게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기보다 천만 영화든 상업 영화든 예술이든, 주류든 비주류든, 각자 하고 싶어 하는 영화가 있고 그게 분명하게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6년 '아가씨'의 김태리가 그랬듯, 전종서는 데뷔 영화 '버닝'으로 칸에 입성했다. 첫 작품을 통해 칸 레드카펫을 밟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 기분은 어떤지 물었다.

"처음엔 겁먹고 싫었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이 '버닝'을 알리는 과정이잖나? 그 생각을 하니 이 영화가 내게 준 메시지를 10명, 아니 5명이라도 가져갔으면 좋겠다 싶더라. 그러기 위해 우리가 영화를 만든 거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더 말하고 싶고 더 나서고 싶고 그렇다."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에 답하던 그녀는 칸 영화제에서는 당당해진 모습을 보였다.

"난 되레 그렇게 대중적인 분위기에서는 스스로 강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칸으로 출발하기 전날 다 같이 밥을 먹었는데 그때 많이 울었다. '이 사람들과의 여정이 끝났다'는 생각에 그랬다. 각자 어떤 위치에서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알기에 그 모든 것이 끝났단 사실이 좋으면서도 슬펐고 아쉬우면서도 벌써 그리웠다. 다들 같은 감정이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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